이야기를 들어준다는데 돈을 내라니, 이게 삥이 아니고 뭔가?
누군가가 "당신의 자녀교육 원칙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그만큼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나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귀 기울여주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전업 직장인에 대학원 공부까지 하고 있던 나로선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삼십 대에 접어든 지금도 나의 역할에는 변함이 없지만 뭔가가 변했다. 어릴적 아이들은 자신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아우성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자신들의 일상을 부모인 우리들에게 공유해주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가끔 사람관계의 일, 또는 직장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하소연이나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없지않으나 대부분은 '부모에 대한 도리' 차원에서 전화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부모로서 고맙고 기특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들 대화의 주-객체가 바뀌어있음을 느끼고 다시한번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느낀다.
며칠 전 아들과 통화 중이었다.
매일 저녁, 안부 전화를 하는 딸과는 달리 이삼일에 한번 정도로 전화하는 아들이 이번엔 우는 소리를 한다.
세탁소에 옷수선을 맡겼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나왔단다. 왜 안그렇겠나, 아들이 사는곳은 물가 비싸기로 악명높은 워싱턴 디시이다.
그러면서 무려 3백 불을 지원해 달란다.
옷수선비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물론 그렇다. 사실은 내게 맡겼던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처리를 못해주다가 아들집 근처에서 수선하라고 되돌려준 것들이었다. 그러면서 미안한 마음에 수선비는 내가 대신 내주겠노라고 말했었다. 그래도 그렇지, 삼백불이라니...
"아무리 워싱턴 디시라도 그렇지, 무슨 수선비가 그렇게도 비싸냐??"
"그게요,, 음,,,수선비도 있고요, 지난번 여행을 다녀와서 이번 달 생활비가 조금 쪼들려서요.."
급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 렌트비로 나가고 있는 아들은 이따금씩 부족한 생활비를 보태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한다. 그럴때면 남편은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송금을 해준다.
조금 치사스럽게 "갚을 때는 10배인 건 알고 있겠지?"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
나중에 그 모든 빚들 열배로 뻥튀겨 되돌려 받으면 집 한 채는 사고도 남을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지난번 면접 본 것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
아들은 그동안의 모든 공부를 끝내고 내년부터는 정식 직장인으로 일을 하게 된다. 지금은 그 첫 일자리를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곳만도 서너 곳이 되니 아마도 네댓 군데에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러다니는 기색이다.
거의 모든 일상사를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딸과는 달리 아들 녀석은 이따금씩 전화해서 저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아쉬운 소리만 했지 취직과 관련한 중요한 근황은 뒷전이었다.
드디어 첫 직장을 구한다는데 안 궁금할 부모가 어디 있겠나? 그래서 물은 거였다.
"아직 잘 몰라요. 아마도 두어 주쯤 지나면 컨트랙 하자고 뭔가를 보내오겠지요, 그러면 그때 보고 결정할 거예요."
"그래?, 그러면 너,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모두 이야기 해야해. 알았지?, 아들이 어디서 일하려고 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 그런 중요한 일들은 부모랑 의논하면서 결정하는거야."
"흠,, 엄마,, 그럼 그렇게 모두 이야기 해 드릴테니까 백불만 더 보태주시면 안되요? (계면쩍은 웃음소리)"
"뭐시라???, 너 이녀석!!!, 핫핫핫핫..."
아들의 궁색한 딜에 우리도 저도 한바탕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이야기 해드린다"는 아들의 말에 새삼 우리들 관계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어떤 곳을 선택하면 좋을지 우리의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아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거다.
생각해보니 저희들 이야기 들어달라고 우리들 뒤꽁무니 쫒아다닐때가 그래도 좋았다.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너희들 어떻게 살고있니?" 궁금해하며 전화를 기다리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아직 '삥'을 뜯길 기회가 있는게 다행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