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강 Dec 11. 2023

우리, 희망을 가져도 될까?

'서울의 봄'을 본 뒤 갖는 분노와 좌절, 그리고 희망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영화를 함께 본 친구 부부와 차 한잔도 못하고 서둘러 나서는 길이다.

퇴근시간의 정체를 우려한 탓이기도 했지만 오래간만에 본 영화, '서울의 봄' 감상을 나눌 수 있을만한 평상심이 아니다. 차 시동을 걸고 출발한 남편은 방금 보고 나온 영화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고 주말에 계획하고 있는 캠핑 이야기로 부산하다. "어디로 갈까?, 그동안 준비한 차박 설비를 이번에 시험해 보는 거야. 낯선 곳보다는 잘 알고 있는 데가 좋지 않을까?.." 점점 정체로 속도가 떨어져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은 캠핑 이야기며 일 이야기를 두서없이 해댄다.

그러다가 내뱉는 말..

"가슴이 아직도 쿵쾅거려서.. 이렇게라도 떠들지 않으며 더 쿵쾅거릴거 같아서.."라고 한다.



 

이번 '서울의 봄' 영화 관람은 버지니아에 사는 친구 부부의 초대로 이루어졌다.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 같이 보자고하니 만사 제치고 약속을 잡았다. 그들은 우리 부부의 오랜 동지다.

무슨 동지냐고?

그들과 우리는 '사람 사는 세상 워싱턴'(이하 사사세)에서 만났다. 조국의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는 우리들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한자리에 모였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열심히 모임을 하고 피켓도 들고 하면서 가까워졌다. 하지만 열심히 참여하던 사사세도 박근혜가 당선되는 절망적 상황에 사분오열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뉜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색깔대로 조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힘을 보탰다.


우리 부부가 선택한 것은 후원이었다. ( 이름하여 WOW! 사사세 - 후원모임 와우사 )

처음엔 우리 부부 둘이서 소박하게 작정을 하고 "딱 십 년만 하자, 그렇게 십 년을 하다 보면 뭔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힘을 보태주었다. 그때 가장 먼저 우리와 함께 해준 사람들이 바로 친구 부부였다. 우리들은 일인당 십 불씩 매달 돈을 모아 노무현 재단, 4.16 연대, 환경운동연합, 더 탐사, 시민언론 민들레 등에 후원금을 보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바로 서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사실 미국에서 한국으로 후원금을 보내기는 쉽지 않다. 매번 적지 않은 수수료를 내야 하고 한 곳이 아닌 네댓 군데에 개개인이 송금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는 그 역할을 우리가 맡기로 했다.

선뜻 나서지 못하는 친구와 동지들에게 후원으로의 동참을 권유하고 우리들의 마음과 작은 정성을 모아 한국으로 보냈다. 

그렇게 매달 보낸 것이 무려 100회 차를 맞았다. 8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아직 십 년을 채우려면 2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이 남았지만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할 때라 생각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몇 년씩 동참해주기도 했지만 친구부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함께 해주었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과의 간만의 식사와 영화관람은 소풍 앞둔 아이처럼 기대되는 거였지만 영화'서울의 봄'은 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악의 세력, 신군부의 성공한 쿠데타를 목도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무거웠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가슴아픈 우리의 역사였던 것을.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분노의 한숨과 눈물, 그리고 심장의 쿵쾅거림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서울의 봄'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 '적당히 착한 사람들'( 시민언론 민들레, 김종대 칼럼 인용 )의 무능이 악의 세력에 얼마나 유용한지를, 그리고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 같은 분들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용기 있게 정의의 편에 설 수 있는가를.

소시민인 내가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일이란 어떤 것일까를.

어쩌면 지난 8년간 주변의 사람들에게 후원을 안내하고 동참을 권하고 함께 하고자 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용기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은...


동지들에게는 100회 차 후원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했지만 우리 부부는 약속했던 십 년을 채울 심산이다.

십 년을 다 채웠는데도 아무런 변화를 감지할 수 없다면???

그러면 다시 우리가 정의의 편에 용기 있게 서기 위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보아야겠지.


잠시 맛보았던 '서울의 봄'을 다시 맞이하기 위해서...


( * 아래는 후원 모임, 와우사를 마무리 하며 회원들에게 보낸 감사편지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들에게 삥을 뜯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