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남긴 아쉬움
아침 일찍 로마 외곽의 호텔에서 출발한 우리들은 네다섯 시간만에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베네치아행 기차는 좌석이 있었기 망정이지 상당히 복잡했다. 세상의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나 말고도 많은가보다. 아니면 여행의 후반부에 접어든 내가 슬슬 지치기 시작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까지 묵었던 호텔중에서 가장 럭셔리했던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아들과 난 버스를 타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향했다.
베네치아는 해상도시답게 물길을 따라 건축물들이 늘어서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하지만 어떻게??? 라는 질문이 좁은 골목길을 걷고, 물길을 따라 지나다니는 곤돌라를 보면서 계속 들었다.
베네치아는 로마인들이 이민족들의 침략을 피해 현재의 베네치아가 위치해 있는 해안가로 도망쳐오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단다. 그곳은 해안가의 습지로 단단한 돌 건축물을 지어 올리기에는 부적합한 땅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 수많은 원형 경기장과 신전, 그리고 길들을 만들어낸 로마인들이 아닌가!
그들은 석호의 진흙바닥에 4미터 길이의 오리나무 기둥들을 박아넣고 점토를 부어넣어 단단하게 굳혔다.
그리고 그 위에 석회암 판들을 깔아 건물의 기초가 되게했단다. ( 위키백과 참조 )
그렇게 그들은 118개의 작은 섬들을 400개 이상의 다리로 연결해 그처럼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 하나라는 베네치아의 골목에서 나는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져갔다.
연일 이어지는 여행에 지치기 시작한거다. 무엇보다도 별거아닌 어깨의 짐도 양 어깨를 내리 누르고, 내 나이의 절반밖에 안되는 젊은이와 보폭을 맞추자니 힘에 부쳤다. 게다가 그날은 서두르는 탓에 아침도 거의 먹지않은채 일정을 시작한 터였다.
지친 여행자에게 아름다운 풍광은 감흥이 작을수밖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살피느라 저 가보고싶은 곳을 포기하기로 한 아들은 나에게 숙소로 돌아가자고했다.
나 역시도 아쉬웠지만 지금은 쉬는게 필요했다.
게다가 그날 저녁은 특별한 만남과 정찬이 예정되어있지않던가.
하지만 터덜터덜 호텔로 돌아가던 우리는 그만 별거아닌 대화로 서로 기분을 왕창 상하게하고말았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해서 오늘 못봤으니 나는 내일 혼자라도 새벽에 일어나서 다시 와볼거야."
"네가? 너 새벽에 못 일어나."
"내가 일어날지 못일어날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욧!!"
둘다 피곤과 짜증이 잔뜩 배어있는 날선 말투로 주고받은 탓에 그만 둘다 기분이 상하고만거다.
지금 이 기분으로는 저녁식사고 뭐고 그냥 다 취소하고 쉬고싶을뿐이었다. 아들의 친구를 만난다는데 나이든 내가 굳이 같이 갈것도 없을것같았다.
그렇게 너 혼자 다녀오라는 말을 내뱉고 누워 곰곰 생각해보니 상황이 몹시 불편했다.
한국에서 연수차 베네치아로 온 아들의 대학 선배. 미국에서 같은 대학의, 같은 fraternity 브라더였던 선배와의 만남에 엄마라는 사람이 벌레씹은 표정으로 나가기도 그렇고 아들과 기분이 상했다고 안나가기도 그렇고..
나는 이럴때를 위해 연습한 심호흡 명상을 침대에 누운채 십여분을 했다.
그러자 들어지는 자각.
지치고 피곤해서 생긴 일이라는 것, 감정에 사로잡혀 고집을 부리다가는 여행 전체를 망치고말거라는 깨달음과 여행으로 아들과의 사이가 틀어지는것을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애써 마음을 추스리기로했다.
"그래, 같이 가자, 같이 가기로 했으니 가야지..., 준비해온 드레스와 구두도 있는데..."
그렇게 우리는 호텔을 나서서 다시 기차를 타고 인근 도시로 아들 친구와의 특별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지금도 베네치아 하면 두가지가 떠오른다.
길거리 상점에서 산 그림엽서보다도 아름다웠던 도시의 모습과 아들과 대판 싸울뻔하다가 가까스로 수습하고 아들 친구와 저녁을 같이하며 화해했던 일이다.
두칼레 궁전이나 산 마르코 대성당같은 곳을 보지못하고 좁은 운하를 따라 베네치아 골목만 누비다가 온것도 아쉽지만 베네치아까지 가서 아들과 다툰것이 지금 생각해도 여간 부끄러운게 아니다.
애써 엄마와의 여행을 준비한것도 아들이고, 청년의 에너지와 열정을 못따라간것도 내탓이지 아들탓이 아니지않나. 그럼에도 아들에게 화살을 내쏘아버린 나의 부족함이 베네치아 여행을 미완성으로 남겨버렸다.
우리가 찾아갔던 베네치아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있었다. 타고갔던 버스도 만원이었고 광장과 골목길에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1600년대부터 홍수로 인한 재해 복구 비용을 충당하기위해 특별 세금을 걷고있다는 베네치아는 지금 조금씩 가라앉고있다한다.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인한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그 속도를 가속화할지 모르겠다.
며칠전 신문에서는 가뭄과 조수탓으로 베네치아 물길들이 진흙바닥을 드러낼 정도가 되어 곤돌라 운행을 전면 중지했단다. 새삼 내가 놓친 시간들이 아쉽다.
미완성인채 떠나야했던 베네치아 여행을 내 생애 언젠가는 완성할수있을까?
환경변화의 위기를 잘 견뎌내며 베네치아가 오래도록 아름답게 남아있기를, 그래서 나의 베네치아 여행이 언젠가는 완성될수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