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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an 28. 2023

수도교와 아피아 가도를 찾아가다.

물의 길을 따라, 사람의 길을 따라

사실 이날은 폼페이를 찾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출발하는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하루 일정이 온전히 비게 되었다.

로마야 어딜 가나 유적지이니 전날처럼 로마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도 되었지만 우리는 수도교와 아피아 가도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둘 다, 길이다. 하나는 물의 길이고 또 하나는 '길의 여왕'으로 불리는 아피아 가도다.

둘 다 로마시내를 벗어난 외곽에 있어서 전철을 타고 찾아가야 했고 두 지역을 연결하는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 걸어야 했다. 예정에 없던 트래킹을 하게 생겼다. 

트래킹이라... 아들과 나의 컨디션은 트래킹을 하기에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출발 전부터 항생제와 지사제를 먹고 있던 아들도 그랬지만 수도교를 찾아가기에 앞서 브런치로 먹은 음식들에 나는 탈이 단단히 나있었다. 

봉골레 스파게티가 너무 기름졌었던가보다. 화장실을 세 번씩이나 드나들다 겨우 약을 먹고 진정이 된 나는 영 자신이 없었다. 

여행에서는 이렇게 늘 예상치 못했던 불상사가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숙소로 돌아갈 수도 없지 않나. 이미 폼페이를 포기한 마당에 수도교와 아피아 가도조차 포기할 수는 없었다.



Roman Aqueduct 중 하나인 아피아 수도교 ( Aqua Appia )는 기원전 312년 로마의 감찰관이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가 로마인구가 늘어나면서 물의 사용량이 늘어나자 이를 감당하기 위해 수도망을 건설했다고 한다.( 나무위키 참조 ) 

국가 운영에 치수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먼저 질 좋은 수원을 꼼꼼하게 선택하고 끌어들이고, 저수조를 거쳐 불순물을 걸러낸 다음 공공용, 황제용, 개인용으로 나누어 물을 공급하고 농업용으로 사용했단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좋은 식수원을 마련해 공공 음용대를 통해 시민들에게 좋은 물을 공짜로 제공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로마의 물공급 체계는 현대와 견주어 손색이 없는 수도설비였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수도교는 이곳 말고도 정복지 여러 곳에 있다는데 특히 스페인 세고비아의 수도교가 웅장하고 무척 아름답다 하니 그곳도 언젠가는 꼭 가봐야겠다.



수도교의 크기와 길이에 놀라워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렀다.

다음 행선지인 아피아 가도는 아피아 수도교에서 멀지는 않았지만 직접 가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었다.

그러니 부득불 걸을 수밖에 없다. 전화기의 구글맵을 보면서 걷다 보니 여간 위험한 게 아니었다.

보도도 없고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고 주변의 풍경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직접 연결되는 버스도 없고 걷기로 작정하고 나섰으니 끝까지 걸어야지... 그나마 약의 도움으로 걸을만한 컨디션인 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아피아 가도는 BC312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단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의 진원지인 아피아 가도는 로마시내로부터 이탈리아 남부, 그리고 동쪽 항구도시 브린디스에 이른다고 한다.

아피아 가도에 들어서서 양쪽으로 이어져있는 길을 바라본다. 

길바닥엔 단단해 보이는 검은색 돌들이 촘촘히 박혀있는데 허물어진 한쪽 귀퉁이의 돌을 보니 사다리꼴 육면체 모양의 좁은 밑부분이 흙바닥에 박혀있었다. 현대의 보도블록과 같은 방식인데 더 작은 돌들이 더 깊게 깔려있는 셈이었다. 6-7미터 폭의 도로를 그런 방식으로 일일이 돌들을 이어 깔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로마의 군사들과 말들이 걸어가고 전쟁포로들이 노예의 삶을 시작하던 그 길.

그 길 때문에 물류가 이루어지고 그 물류로 제국이 만들어지고 그 길로 인해 수많은 역사가 써지게 했던 길.

그뿐 아니라 베드로가 로마를 떠나 도망치다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로마로 되돌아가던 길도 바로 아피아 가도였으며 사도 바울이 자신의 굳은 믿음을 전하러 로마로 향하던 길도 아피아 가도였다.


우리는 짧은 일정으로 아피아 가도를 찾아갔을 뿐 그 길을 따라 걷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피아 가도를 순례하다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도미네 쿼바디스 ( Chiesa del Domine quo vadis ) 교회와 같은 역사적 장소들을 만날 수 있단다. 이곳 순례길도 언젠가는 걸어야 할 길로 목록에 적어두기로 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정부에서 아피아 가도를 순례길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니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걸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가족 곁으로 돌아오던 로마병사처럼, 믿음을 전하려던 사도 바울처럼 걸을수있는..


그날은 무려 8마일 이상을 걸어 옛길을 찾아가고 그 옛길을 걸었다.

물의 길을 따라 걸었고 2000여 년 전 사람들의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그 길들을 만들고 그 길들을 걸으며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해가 뜨면서 시작한 하루의 삶이 해가 지면서 끝났을 그들의 삶이나 지금 나의 삶이나 다른 게 무엇일까.

그저 그날 묵묵히 걸었던 우리처럼 그들도 그렇게 묵묵히 하루하루 한평생을 살다 갔겠지.

이렇게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그들 삶의 흔적을 남겨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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