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강 Mar 14. 2023

두오모 성당에서 르네상스를 만나다.

무려 피렌체하고도 두오모 성당에서 미사를 보다니...

어디를 가나 많은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이탈리아였지만 피렌체를 찾아간 날은 하필 공휴일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뿐만이 아니라 공휴일을 맞아 피렌체를 찾은 이탈리아 사람들까지 피렌체는 정말로 와글와글이었다. 왜 안 그렇겠나, 꽃의 도시 피렌체를 모르고는 이탈리아를, 르네상스를 말할 수 없으니...


전날 찾아든 숙소는 아주 오래된 집을 여관으로 개조한듯한 곳이었는데 그 유명한 두오모 성당에서 오분 거리에 있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 근처의 카페에서 크로와상 하나에 진한 커피 한잔씩을 하고는 르네상스를 만나러 나갔다.


건물들 사이의 좁은 길을, 그나마도 공사하느라 이리저리 막아놓은 곳을 빠져나오니 바로 눈앞에 두오모 성당, 그러니까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압도적인 모습으로 서있었다.



"와아!!!"소리가 절로 나는 그 크기와 아름다움, 초록과 연분홍색의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는 벽면들, 종탑과 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휴일인데다 제대로 티켓팅이 되어있지 않아 대성당 내부는 둘러볼 수 없었다.

그다음 날도 연휴여서 대성당 내부 관람은 불가능하단다. 하지만 두오모 박물관은 티켓팅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그날은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성당의 외부만 둘러본 뒤 장미정원에 올라가 피렌체 시내를 조망하기로 했다. 장미정원은 피렌체 시내보다 조금 올라간 언덕 위에 있었다. 그곳에 올라 석양에 물든 피렌체를 내려다보면  코시모 데 메디치와 그의 손자 로렌조 데 메디치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곳에 르네상스의 불꽃을 피워 올렸는지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장미 정원은 두오모 광장에서 이리저리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는 사람들 뒤를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도달해 있었다. 여름이 아니어서 많은 꽃들이 피어있지는 않았지만 마침 저물어가기 시작하는 석양빛은 피렌체를 빛의 도시로 물들이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과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단테가 살며 예술과 학문의 열정을 원 없이 펼쳐내던 곳, 피렌체를...



우리는 다시 장미정원에서 내려와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있는 아르노 강변의 다리를 건넜다. 석양으로 채색된 하늘과 다리는 그 모습 그대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젖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보고 첫눈에 가슴속에 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신곡에 묘사된 것처럼 지고지순한 모습으로...


우리도 르네상스시대의 그들처럼 석양빛에 물들으며 다시 두오모성당을 볼 수 있는  광장으로 갔다. 

낮의 두오모와 저녁 무렵의 두오모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햇빛 속의 두오모가 아름답고 화려했다면 불빛 속의 두오모는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내일은 그런 두오모성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두오모 박물관을 통해 둘러볼 예정이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박물관 관람 시간보다 훨씬 일찍 두오모 광장으로 갔다. 휴일이라 성당 내부는 볼 수 없을지라도 좀 더 오래 그곳에 머물고 싶어서였다. 아들과 함께 천천히 성당 둘레를 걸으며 보고 있자니 분명 '휴일 관람 불가'라고 그랬는데 문 한편이 열렸다 닫히며 한두 사람씩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뭐지? 관람이 안된다고 했는데?, 그러면 혹시?? 미사??

그랬다. 사람들이 두오모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위해 들어가고 있는 거였다.

순간 아들과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우리도 미사 드리러 가는 마리아와 바오로예요."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오, 아름다워라!!"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나는 천장화와 스테인드 글라스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사진 촬영은 안된단다.

괜찮았다. 무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내가 미사를 본다는데 사진이 문제겠는가.

구부정한 노년의 신부님이 집전하는 이태리어 미사. 

전례의 순서는 한국식 미사의 전례와 다를 바 없으나, 아뿔싸, 코로나 이후 거의 3년 동안 미사 참례를 안 했더니 한국말 기도송도 기억을 못 하겠네... 겨우 영광송만 따라 하며 미사를 따라갔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지막한 신부님의 목소리가 돔 천장과 내부의 넓은 공간에 부딪혀 아름다운 공명을 만들어냈다. 

신부님의 이탈리아어 강론을 한마디도 못 알아들으면 어떠랴, 하느님께 바쳐지는 전례 속에서 나는 평화와 '신앙의 신비'로 넘쳐흘렀다.


미사후 몰래 찍은 성당 내부의 모습


성당안에서 올려다 본 천장화


가끔 이런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갖게 되는 게 여행의 특별한 기쁨이리라.

나는 두고두고 두오모 성당에서의 아름다운 이태리어 미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음은 두오모 박물관을 구경할 차례였다.

들어가는 입구가 마치 작은 관광안내소 같은 그곳은 두오모 성당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상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본 두오모 성당은 크게 성당건물과 그 위의 돔, 그리고 종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본 성당건물은 원래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있던 자리에 1296년에 지어지기 시작했다는데 아놀로 디 캄비오에 의해 설계되어 1418년에 돔을 제외한 성당 건물이 완성되었단다.

피렌체의 상징이기도 한 성당의 돔은 브루넬레스키가 로마에 유학해 판테온을 연구한 뒤, 아이디어를 얻어 설계하고 8만 장의 벽돌로 지었다고 하는데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에 혁신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84.7m의 종탑은 조토 디 본도네가 설계하여 1334년에 짓기 시작하였으나 조토의 죽음, 흑사병으로 지연되었다가 1395년에 완성되었단다. (나무위키 참조)

박물관에는 이런 건축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해 주는 전시물들과 원래 있던 성당의 흔적들, 청동문들과 성당안팎을 장식하던 조각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날은 온종일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시간을 썼야 했다. 그만큼 하나하나가 다 놀라웠다.

고대 로마를 둘러볼 때 느꼈던 경외감과는 조금 다른, 이를테면 로마의 판테온이 현대를 사는 나하고는 무관하게 느껴졌다면 두오모성당의 돔과 건축물들은 거기서부터 현대의 건축물들이 이어져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랬다. 피렌체의 르네상스는 현대 서양문명의 출발점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단테의 생가나 우피치 미술관등 르네상스를 꽃피운 거장들의 흔적은 둘러보지 못했다.

나는 두오모 성당 하나만으로도 르네상스의 위력에 압도되어 이틀간 그 주변만 맴돌았다.

언젠가 신이 허락한다면 르네상스의 그들을 만나러 다시 와보고 싶다. 


아들과의 이탈리아 여행이 모두 끝났다. 

서구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와보고 싶었던 이탈리아였고 그런 내 소망은 충분히 이루어졌다.

모든 여행의 끝엔 또 다른 여행이 꿈꿔지기 마련이다.

아마도 나의 다음 유럽 여행에서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이 기준선이 될 것 같다.

서양 문명의 토대, 르네상스의 발원지, 이곳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웃한 유럽나라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 여행기를 마무리하며 5월에 계획되어 있는 독일 여행이 기다려지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완성으로 남은 베네치아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