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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Aug 16. 2023

제발 그것 좀 뜯지 마세요.

뜯고 접고 개키면서 되풀이되는 삶의 순간들. 

아침 새벽, 두두둑.. 하고 천장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 시설관리 책임자인 남편은 새벽잠귀에도 후다닥 일어나 불을 켜고 무슨 일인지 둘러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위 천장에서 또 물이 새고 있다.

남편은 부랴부랴 떨어진 물을 닦고 물받이를 갖다 놓고 동시에 나는 잠옷을 입은채 후다닥 위층으로 뛰어 올라간다.

역시나 위층 화장실에서 Y 할머니가 온통 물바다를 만들어놨다.

세면대에는 기저귀 속에서 나온 젤리 같은 것들이 배수구멍 주변에 그득 고여있고 할머니는 그것들을 손으로 휘젓고 있다. 그리고 할머니의 허리춤에는 다 뜯겨 비닐만 남은 기저귀가 허리띠처럼 둘러져있다.


할머니 평생의 직업은 세탁소의 옷수선인이었다.

젊은 날 이민을 와서 남편과 세탁소를 운영하며 옷 수선일로 돈을 벌었다.

손재주 야물고 부지런했던 그들은 세탁소를 하면서 자녀들을 전문 직업인으로 키웠고 한때는 부러운 것 없이 잘 살았다. 그렇게 한평생을 잘 살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누구나 거쳐야 하는 노년의 삶이 앞에 놓여 있었다.

세탁소에서 사용하는 케미컬 때문인지 만성 신장병을 앓았던 할아버지와는 달리 Y 할머니 노년의 삶은 치매라는 불청객이 접수를 해버렸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모든 전형적 증상을 다 보이고 있는 할머니의 증상은 묘하게도 젊은 날 자신이 해왔던 직업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선 Y 할머니는 신문을 가지고 잘 논다.

한국신문을 유심히 살피다가 마지막 지면에 몰려있는 구인구직란과 사업체 매매란을 열독 한다. 세탁소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둥 어느 지역의 세탁소가 매물로 나왔다는 둥 세탁업과 관련된 지면을 읽어 내려가며 진심 어린 관심과 아쉬운 미련을 드러낸다.

"여기서 사람 구하네. 전화 한번 해볼까??"

"세탁소 매물 나왔는데, 이 지역은 장사가 잘되는 곳이야. 비싸겠다.."등등...


그다음의 할머니 애용품은 바로 네모난 식탁 휴지이다.

Y 할머니는 빨간색 바구니에 담겨 식사 시에 사용하도록 놓아둔 식탁 휴지 킬러다.

식탁 차리느라 바빠서 대충 뭉터기로 놓아둔 휴지도 한 번의 식사후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사라진 휴지들은 할머니의 주머니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맷부리의 접힌 부분과 양말 속, 기저귀 속에서 곱게 접힌 채 우수수 쏟아져 나오기 일쑤다. 할머니가 그 휴지로 무엇을 하느냐고?

한 장씩 꺼내 정교하게 자르고 손톱으로 밀어가며 접기도 한다. 마치 옷단의 시접을 접는 것처럼 말이다.


신문지나 식탁휴지는 주변을 어지럽힐 뿐 큰 불편은 없다. 아니 어떤 때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할머니를 자리에 앉히고 신문지를 가져다주거나 식탁휴지를 가지고 놀도록 넉넉히 앞에 놓아주기도 한다. 

문제는 기저귀이다.

거동에 불편이 없는 할머니는 화장실 출입을 스스로 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하시도록 놔두면 사고가 나고 만다. 종이 기저귀도 '뜯을 거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종이 기저귀의 비닐 부분과 펄프(솜)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쉽게 뜯어진다. 게다가 패드 부분이 오줌으로 젖어있으면 할머니에게는 '당연히 뜯어내야 할 부분'이 되고 만다. 그날도 새벽에 일어난 할머니가 오줌에 젖어 뭉쳐있는 부분을 뜯어내어 펄프와 젤을 세면대에서 씻어내려 하다가 생긴 사고였다. 


사실 우리가 Y 할머니에게 "기저귀 좀 뜯지 마시라"라고 하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할머니가 기저귀를 뜯어대고 휴지를 정확하게 맞추어 접고 손으로 자르는 것은 그저 평생에 걸쳐 해온 '자신의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중한 일상이며 삶의 가치였던 '수선 일'을 지금도 하고 있을 뿐인데 돌보고 있는 내가 "뜯지 마시라"라고 하는 잔소리가 들어 먹힐 리가 없다. 

내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할머니는 억울해하며 더 큰소리로 항변을 하곤 한다.


오늘도 손에 잡히는 방석마다 솜을 빼내고 지퍼의 실밥을 뜯고 있는 Y할머니에게서 수년 전 돌아가신 떡집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미국까지 와서 자신의 힘으로 떡집을 일궈 성공하신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 있어 떡 만드는 일은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마지막 즈음, 침대에 누워 '떡시루에 팥고물을 골고루 흩뿌리고 한 귀퉁이를 떼어 입에 넣고 맛을 보는 모습'의 망상을 보이시던 할머니. 

그 떡집 할머니처럼 Y 할머니는 오늘도 수선해야 할 옷가지들을 뜯고, 실밥을 뜯어내고, 시접을 접고 가지런히 매만지고 있을 뿐이다. 오랜 일상이 머릿속에 새겨진 대로, 그저 평생 해왔던 그대로...


해답 없는 글을 쓰다 보니 노년이 되었을 때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이 인다.

그들만큼 전심으로 몰입했던 '일'이 나에게 있었던가?

그것만 생각하면 즐거움과 기쁨이 일었던 '좋아하던'일이 있었던가?

호불호를 떠나 숙명처럼 여기며 묵묵히 해오던 '무엇'이 있었던가?

쉽게 대답을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곰곰 생각하다보니 안타까운 마음뿐 아니라 아직 나에겐 시간이 남아있지 않냐는 독백이 동시에 인다.

더 늦기전에 하루하루가 뇌에 기록되고 쌓여 훗날 자아가 손상되어도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재현될 '그 일'을 찾아야겠다.

늙은 나를 돌보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으면서도 내 삶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 무엇'말이다.

오늘도 나는 그들에게서 내일의 내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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