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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Aug 18. 2022

이젠 그만 내려놓고 싶다는 뜻일까?

병고에 지친 할아버지의 선택


할아버지의 오한이 또 시작되었다.

가족과 함께 각종 검사와 비뇨기과 진료및 시술을 받느라 하루 종일 외출했던 것이 무리가 되었던가보다.

한여름에 패딩점퍼까지 입고도 와들와들 떨고 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몇 숟가락 떠먹은 뒤 쓰러지듯 침대에 눕는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우리가 응급실에 가실 것을 권하지만 와들와들 떠는 중에도 가봐야 소용없다는 말로 우리의 권유를 일축한다. 

할아버지 말씀도 맞는 말이다. 입소 후 처음 그 모습을 본 우리는 너무 놀라 할아버지의 의견을 물을 새도 없이 911에 전화를 걸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응급실에서만 만 하루를 지내고 별다른 조치 없이 다시 돌아왔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채.


하지만 이번의 오한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만 하루 동안 떠는 증세를 보이며 주무시고 나면 회복되던 것과는 달리 오한은 없어졌지만 예전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셨다. 그만큼 더 쇠약해졌다는 소리일 것이다.


할아버지는 만성 신부전 환자이다.

노년기 초기에 시작된 신장병은 끝내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해야 하는 중증으로 진행되었다. 

주치의 진료 중에 투석으로 부풀고 변형된 할아버지 팔의 혈관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돌리고 말았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또 다른 병고가 찾아왔다.

비뇨기과적 장기에 물혹이 생긴 거다. 

오래전 수술 치료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고 했는데 또다시 재발을 했나보다.

그 물혹은 할아버지 몸속 수분 배출 시스템의 고장 때문인지 나날이 커져 어느 순간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까지 커지고 말았다.

엉거주춤 걸으며 불편을 호소하는 할아버지의 요청으로 가족과 우리들이 분담해서 병원 진료를 시작했다.

비뇨기과 의사를 만나 치료방법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수술을 해달라고 간청했다.


보통 수술 일정이 잡히면 주치의가 수술 전 진료를 하고 필요하면 다른 전문의의 소견을 요청한다.

처음부터 할아버지의 심장에서 판막 이상 소견이 있으니 심장전문의를 만나라고 조언하던 주치의는 반드시 심장 닥터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 심장 닥터가 오케이를 해야만 마취과 의사가 마취를 해줄 거란다.

할아버지 상태가 전신마취를 감당하기에는 무리일 거라고 판단한 주치의의 우려를 애써 외면한채 할아버지는 심장의를 만나고 심장 초음파와 CT촬영을 했다.

결과는?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태'라는 소견이 나왔다. 수술 중 심장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단다.

심장 문제로 아예 수술 기회조차 갖지 못한 할아버지를 위해 비뇨기과 의사는 물혹의 물만 빼내는 시술을 했다. 무려 1리터의 물이 제거되었다. 몸에 멜론만 한 공 하나를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것에 비하면 한결 좋아진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도 진작 이렇게라도 할 것을 하며 오랜만에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며칠 뒤 우리는 아들로부터 당황스러운 메시지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여전히 수술을 원하셔서 잡혀있던 수술 일정을 취소하지 않았노라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진작 이렇게라도 해야지라고 하던 할아버지가 왜 여전히 수술을 원하는 것일까?

물혹 자체를 제거하지 않으면 또다시 물이 찰 것을 우려하는 것일까?

심장 전문의가 너무 위험하다는 경고를 애써 무시하고싶은신걸까?

그때 문득 언젠가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힘들어 하면서 죽으나 수술대 위에서 죽으나 매한가지지..."


나는 일주일에 세 번 온몸의 피를 빼내고 다시 집어넣는 투석이 얼마나 힘겨운지 잘 알지 못한다.

망가진 신장과 두툼하게 부풀어 오르는 발등을 쳐다보면서도 싱겁디 싱거운 음식에는 욕지기가 나서 먹지 못하는 그 힘겨움을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게다가 오한과 극심한 피로로 쓰러져 누워있는 자신에게 횡설수설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치매 아내의 존재가 얼마나 좌절스럽고 막막할지 짐작도 못하겠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이 모든 고통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싶은 것일까?

더 이상 고통이 없는, 더 이상 힘겹지 않은 저 세상에서의 휴식을 하고 싶으신 걸까?

'high risk'라는 의사들의 소견을 'rest in peace'라고 읽고 싶은 것은 아닐까?


언젠가 보았던 다큐멘터리에서 100살이 넘은 노인이 평화로운 안락사를 선택한 뒤, 눈물을 흘리는 자녀들을 바라보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희들에게는 이 세상이 여전히 아름답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단다. 평화롭게 쉬고 싶구나."

쇠약해진 '노인의 삶'에 힘든 '병고'까지 짐 지워진다면 '이젠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일까....


아직 할아버지 본인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늠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래도 끝까지 견디며 살아내야 한다는 마음이 시시각각으로 할아버지의 노쇠한 일상을 뒤흔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우리가 할  수있는 일은 며칠 뒤 비뇨기과 의사를 만나 무슨 말을 하실지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시길 기원한다. 

불과 몇일 또는 몇주가 남아있을지라도 아침저녁으로 바뀌기 시작한 바람결과 햇살을 조금더 즐기고, 아내와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시길, 그래서 삶의 마지막 시간들이 조금더 의미있고 평안한 시간들로 채워지길 소망한다.

더불어 삶의 두려운 결정 위에 그가 믿는 신의 돌보심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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