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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ul 29. 2020

내가 잘못한 거야?

모든 게 내 불찰인 것만 같았다.


Assisted Living Facility는 널싱홈과 홈케어의 중간쯤에 있는 노인케어 프로그램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한데 종종 널싱홈 같지 않다고, 또는 가족처럼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듣기 일수이다. 일종의 딜레마이다. 특히 노인들에게 의료적 문제가 발생하면 그 딜레마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나를 긴장시킨다.
 상주 간호원이 없어서 입원을 시키게 된 것 같아 그것도 내 탓이라 여겨지고, 가족처럼 하루 24시간 입원실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진다. 
이민 초기의 심리적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은 채, 다소 보수적인 성격인 내가 자초한 성격적, 주관적 딜레마였다.
 이런 딜레마는 쇠약해져 있는 내 멘털을 사정없이 뒤흔들어놓았다.

 

입소인원이 하나둘씩 늘면서 이전에 없었던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것처럼, 미국에서의 시설운영과 노인 돌봄도 처음인지라 모든 게 어려운 시절이었다.

갑자기 열이 올라 Urgent Care로 모시고 가야 하는 일도, 이층으로 올라갈 때  사용하는 stair-lift가 고장이 나서 일주일 이상 애를 먹는 일도 있었다. 

병약한 어르신들을 돌보는데 어찌 바람 잘 날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일들은 대개 예상 가능한 일들이고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면 되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 조용하고 얌전하신 할머니 한분.

늘 하던 대로 저녁을 잘 드시고 방으로 들어간 할머니방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무슨 일이지?"하고 화들짝 놀라 들어가 보니 할머니가 바닥에  떨어져 엎드려있고 옆으로 돌린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깜짝 놀라서 부르는 소리에도 할머니는 웅얼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인 걸까? 하루 종일 별일 없이 잘 지내셨고 저녁식사도 잘했는데...


낙상은 사고 중에서도 큰 사고, 당황한  우리는 서둘러 911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상으로 할머니의 상태가 어떤지를 설명하고, 또 한편으로는 할머니의 기본정보가 들어있는 서류들을 복사하면서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불과 5분여의 시간이 무겁고 더디게 흘러갔다.

 

매번 경험하는 일이지만 미국의 911 응급구조대는 정말 요란 뻑적스럽게 출동한다. 

안 그래도 당황하고 놀란 가슴이 앰뷸런스의 앵앵거리는 소리에 더 쿵당쿵당 뛰기 시작한다. 

게다가 전화 한 통에 그 근처에 있는 소방차와 응급차들이 몽땅 집결했다. 그날은 네대의 소방차와 응급차가 함께 몰려왔다가 서둘러 할머니를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저녁식사 후, 느닷없이  벌어진 상황에 덩달아 안절부절못하는 어르신들을 하나하나 진정시키고 나니 이미 내 저녁밥 시간은 한참 지나있고 입안은 바짝 말라있었다.


입소 어르신들 중 누군가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고 나면 그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은 가족에게 연락하는 일. 내가 해야 할 일중에서도 가장 하기 힘든 일이다.

따님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병원에 방문해서 follow-up 해줄 것을 부탁드렸다.


따님은 평소에도 어머니에 대해 극진했던 분이다.

할머니는 따님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오셨고 오로지 따님의 공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양보했던 분이었기에 따님 또한 그 어머니를 각별하게 생각했다. 

그런 분에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응급실행은 아마도 충격이었겠지. 

병원에 도착한 딸은 엄마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실신에 대해 알고 싶었을 것이다.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실래요?" 

"약이 바뀐 것은 없었나요?"

" 요즈음 무슨 조짐이 있었나요?"

" 왜 그러시었는지 짐작 가는 것은 없으신가요?"

" 엄마가 평소 심장이 안 좋기는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등등등...


전화상으로 꼬치꼬치 캐묻듯이 물어오는 가족의 질문에 허둥지둥 답을 하면서 나는 마치 내가 케어를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당황스러움과 자책감에 빠져 들었다. 


거실을 서성이며 가족과 삼십여분 이상 전화통화를 하는 동안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벌떡거리며 뛰는 느낌이 몰아닥쳤다.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낯설고 힘든 느낌이었다. 
전화를 끝낸 나는, 얼굴이 달아오른 채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서성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황해하던 그때의 내가 측은하기까지 하다.

노인들의 의료적인 문제는 늘 일어나는 일이고, 널싱홈조차 환자가 생기면 병원 응급실로 이송하고 있다.

게다가 느닷없이 부모가 입원했다는 소리에 당황하지 않을 가족이 얼마나 되겠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노인분들의 입퇴원 문제로 흔들리지 않는다. 요즘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조차도.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모든 것이 마치 내 불찰인 것만 같았다. 내 성격 탓이었다.

머릿속과 내 손 안에는 관련된 모든 규정과 지침이 있었지만, 압도되어 유연성을 잃은 나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민이라는 낯선 환경에서의 새로운 시도는 보수적인 성격의 나를 점점 경직되고 환경에 압도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멘털은 점점 허물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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