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줄게.

이 세상에 오로지 나만 기억하는 너희들의 옛날이야기

by 유강

어느 느긋한 오후, 아니면 밥을 먹은 뒤 가졌던 우리들의 한가한 저녁시간.

거실 바닥에서 뒹굴뒹굴 놀다가 너희 둘은 내 무릎을 하나씩 베고는 너희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이야기해달라고 나에게 조른다.

이미 며칠 전에도 해준 똑같은 이야기를 나는 다시 풀어놓기 시작한다.

오늘은 너희들이 태어나던 날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묘사하며 들려준다.

"저녁을 먹고 났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어..."로 시작하는 큰아이 태어나던 이야기는 "네가 태어났는데 너무 커서 콧잔등에 상처가 났지. 안 그래도 다른 아기들보다 1킬로가 더 큰데 코에 뻘건 상처까지 있으니 아기 산적 같았어.하하하"라는 작은아이의 출생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귀 기울여 듣던 둘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흡족한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고 누운 채 나를 올려다본다.




그래, 너희 둘은 그렇게 나에게로 찾아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첫째 네가 딸인 줄 알았단다.

물론 작은애 너도 아들인 줄 알았지. 어떻게 알았느냐고?

모르겠어. 그냥 나는 그럴 것이라고 느꼈어. 그렇게 나는 너희들을 만나게 될 것으로 이미 알고 있었지.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벌써 삼십 년이 넘어가고 있구나.


큰애 너는 이미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고 작은애 너도 열심히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는 너희들도 우리처럼 너희만의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을 바라보며 살겠지.

문득 어른으로 커버린, 이제는 내 곁을 떠나 살고 있는 너희들을 생각하며 더 늦기 전에 너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예전, 내 무릎을 베고 누워 태어나던 날 이야기를 조르던 너희들에게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처럼.


앞으로 너희들에게 해줄 이야기는 너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다.

어쩌면 나를 위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어.

나에게 찾아온 너희들을 키우면서 나는 놀랄 만큼 달라지고 커졌거든.

조그만 일에도 삐죽거리고 토라지고 화를 내던 나는 너희를 키우는 동안 조금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지고 참을성이 많아졌구나.

농부들은 씨앗이 비와 햇빛으로 싹을 틔우고 꽃과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 하늘의 존재를 느끼지만 나는 내 품에 들어와 커가는 너희들을 보면서 하늘의 섭리를 느꼈다.

그러니까 너희는 하늘이 나를 키우고 살리기 위해 보내준 선물이었던거지.


너희들을 키우면서 가졌던 모든 경험들, 행복했던 시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이 힘들고 아팠던 경험들까지도 지금 생각해보니 다시없을 특별한 경험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들려줄게.

얼마간은 흐려지고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을 거야. 같은 경험도 엄마인 나와 어린 너희들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골똘히 생각해가며 사실대로 쓰도록 노력하려고해.

엄마의 실수를 빠뜨리거나 미화하는 일이 없도록 애쓰면서 말이지.


내가 이 글들을 쓰는 동안 우리 모두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게 될 거야.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삶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고 우리가 대지 위에 우뚝 서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보자.

어쩌면 나의 이 이야기들이 언젠가 갖게 될 너희들의 아이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딸, 너는 동해바다가 넘실대는 대왕암의 일출 속에서 나에게 깃들었다.


그때 아빠는 울산에서 근무를 하고 있고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5년여를 사귀다가 결혼을 했는데 아빠는 결혼한 지 일 년도 안돼 울산 근무를 자청해 울산에 내려가 있었다.(결혼 6개월 차에 직장인인 신부는 어떻게 하라고?!)

그때만 해도 매주 일요일 휴무가 아니고 격주 휴무여서 아빠는 격주로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는데 삼월의 어느 날 나는 매번 올라오는 아빠 대신 내가 내려가기로 했었다.

아침 일찍 머리손질을 하고 출근해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울산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지.

한참을 달려 내려간 울산 버스 터미널에는 친구의 낡은 차를 몰고 마중 나온 아빠가 활짝 웃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렇게 시작된 1박 2일의 바닷가 여행.

울산 시내에서 얼마간 차를 달려 외곽으로 나가면 평범한 바닷가가 나온다.

사실 그곳은 평범한 바닷가가 아니다. 신라 문무왕의 대왕암이 있는 바닷가.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이 묻혀 용이되어 깃들어있는 곳. 감은사를 드나들던 해룡의 정기가 스며있던 곳.

텔레비전에서 본 요즘의 모습이 아닌 말 그대로 한적한 시골 바닷가의 삼월 첫째 날.

우리는 털털거리는 낡은 차를 몰고 대왕암이 바라다 보이는 어촌의 한 시골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찾아 나선 대왕암과 일출.

그날은 구름이 끼어 기대했던 장엄한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바닷가의 검은 바위에 올라 세찬 바람과 함께 맞았던 아침은 내 삶에 진한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나의 삶은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너는 나에게 찾아왔다.

격주말 부부를 작심하고 대학원 등록까지 해놓은 상태에서 예견치 못하게 찾아온 너는 나의 삶을 낯선 방향으로 이끌고 갔다.

너무 심한 입덧은 더 이상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게 했고 급기야 나는 한 달 출산휴가를 무급으로 처리하겠다는 의리 없는 직장을 걷어차 버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임신 후반부, 너와 몸으로 하는 대화.

낯선 너의 존재에 놀란 몸은 심한 입덧, 부종, 임신 소양증으로 몸살을 앓았다.


드디어 11월 21일.

저녁을 먹은 뒤 시작된 진통. 온 가족이 처음 겪는 일이라 다 같이 허둥대는 가운데 할머니의 친구분이 운영한다는 병원에 도착했다. 남들은 두려움과 긴장에 휩싸인다는데 나는 그동안의 몸살이 너무 힘들었던지 네가 세상으로 나오려고 한다는 사실에 오히려 반가움과 가느다란 기쁨을 느꼈다.

이어진 진통. 난생처음 겪는 고통에 짓눌리면서도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도 몸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에 맞추어 힘이 주어지는 것일까??"

그 와중에 나는 신체의 신비, 출산의 신비에 조금 놀란다.

이어지는 마지막 진통과 출산.

"아이고, 요 녀석 봐라. 나오면서 오줌을 다 누네."

너는 태어나 의사의 손에 들려 옮겨지는 동안 시원하게 오줌을 눈다.

너무 힘이 들어 눈을 뜨지 못한 채 출산을 하느라 너의 그 기운찬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영 아쉽다.

네가 자라면서 화통하게 웃어제낄때면 문득 태어나면서 보여주었다는 당찬 네 모습이 상상이 된다.


너의 삼칠일은 특별했다.

증조할머니는 앙증맞은 떡시루를 준비하고 매 칠일마다 팥시루떡을 쪄서 네 머리맡에 놓고 삼신님께 치성을 드렸다. "심신님께 비나이다. 우리 아기 무병장수하게 해 주시오~잉."

네가 그동안 큰 병치레 없이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상할머니의 치성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너는 완전한 평안이 있던 태중에서 나온 것이 못마땅했는지 석 달이 넘도록 울어재꼈다.

그것도 밤이면 밤마다.

"며늘아, 야야, 얘가 뭐 잘못된 거 아니냐? 왜 이렇게 울어댄다냐?"

할머니와 나는 밤마다 울어대는 너를 안고 어르느라 꼬박 밤을 새우고는 했다.

낮에는 어떻게 했느냐고?

늦게 대학을 다니던 이모가 산모 간병을 자처하고 나섰었지.

밤새 너와 씨름하느라 지친 우리는 오줌 기저귀와 젖병이 널브러진 구석에 쓰러져 잠이 들고 이모는 그 젖병과 기저귀들을 들고나가 다시 새것처럼 빨고 씻고 삶아주었다. 이모는 네가 태어난 해의 겨울방학을 온전히 너를 돌보느라 써버렸지. 평생 독신으로 살고 있는 이모가 처음 겪는 아기 돌보기였을 것이다.

그렇게 너는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들 삶의 리듬에 맞추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네가 밤과 낮에 적응해나가던 즈음 너와 나는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딸, 우리 집의 새 식구가 된 것을 환영한다.




아들, 너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어 우리 가족을 완성시켰다.


사실, 난 네가 태어나기 전 한 번의 유산을 겪었다.

남편 외에는 마음 부칠 사람 없는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사는 일은 젊은 나에겐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한 번씩 서울 나들이를 하며 만나는 친구들은 대학원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계속하며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전업주부로 살던 나는 그 속앓이를 병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병이 내 심신을 녹초로 만들었을 때 길 잃은 천사가 내 안에 깃들었다.

의사는 내 건강상태가 도저히 태아를 품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한 아기 천사를 보내고 나는 그 씻기 어려운 죄를 품고 종교에 귀의하고 있었다.

죄의 고백과 회개가 하늘에 닿았는지 몸과 마음이 많이 회복되었을 때 너는 나를 찾아왔다.

너와 내가 임신으로 널브러져 있을 때 성당의 친구들은 교대로 찾아와 나와 너에게 한 끼니를 먹여주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네가 누나보다 영성에 민감한 것은 그 때문 인지도 모르겠다.

만삭이 되어 레지오 모임에 참석하고 함께 기도를 하는 소리를 태중의 너는 들었을 것이다.


누나 때의 시행착오를 감안해서 너는 울산 집에서 낳기로 했다.

진통이 시작되고 누나를 고모에게로 보내고 나는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누나는 세상에 태어난 다음날 아빠를 만날 수 있었지만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누나가 태어난 날은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네가 태어난 날은 누나가 그렇게 보고 싶더라.

왜 그랬을까? 너로 인해 겪게 될 누나의 박탈감이 예견되어서였을까?

4.15Kg으로 태어난 너는 누나처럼 잔병치레 없이 잘 자라주었다.


네가 한 달이 지났을 즈음이었을까?

너 역시 입술이 파래지도록 막무가내로 울어대자 나는 버릇을 고쳐보겠다고 건넌방에 너를 데려다 놓고 문을 닫은 적이 있었지. 우유도 먹었고 기저귀도 갈아주었고 울 이유가 없는 네가 그렇게 울어대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었다. 그러다 겨우 생각해낸 게 울다 지칠 때까지 울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생각이었다.

5분, 10분, 15분...

5살짜리 누나가 어쩔 줄 몰라하며 네가 있는 방 문에 귀를 기울이다가 내게 와서 아기를 안아주면 안 되느냐고 애절한 눈빛으로 부탁을 하더구나. 안된다고,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내가 고집을 부렸구나.

30분이 되어갈 즈음, 누나가 금방 눈물이 쏟아질것같은 표정으로 제 방의 칠판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더구나.

"엄마, 제발 부탁이에요. 아기를 울리지 마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나는 내 고집으로 너도 누나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리고 너를 방에서 데리고 나왔다.


누나와 너는 정말 많이 다르다.

가끔씩 어떻게 한 부모에게서 저렇게 다른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너 역시도 자라면서 너와 너무 다른 누나로 인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화를 많이 내기도 했지.

언젠가 너와 누나가 심한 갈등을 빚을 때 네가 누나에 대해 심하게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누나에게 직접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너와 누나의 다툼에 가슴이 아팠다.

그러면서 5살 누나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동생을 안아달라고 애원하던 모습이 떠오르더구나.

그렇게 너는 몇 번의 허물을 벗어가며 점점 든든한 아들로, 멋진 남동생으로, 사려 깊은 손주로 자랐다.


너는 나와 아빠로 만들어진 가족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어주었다.

각자 저만의 색깔로 세 가지 색이 유리되어있을 때 너라는 색깔이 채워져서 우리는 우리 가족만의 조화로운 색깔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딸, 아들, 너희들이 우리 가족이 되어주어 고맙다.



( 이제 어른이 된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써보려고합니다. 가장 먼저는 내 젊은 날을 기억하기위함이지만 아이들에게도 저희들 어린시절의 기록이라는 선물이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시또 모르겠네요. 저의 경험이 현재 아이를 키우고있는 부모님들에게 작은 팁이 될수있을런지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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