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기성취와 육아 사이에서 빚어진 엄마의 부재
금요일 늦은 오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간단하게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고속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내가 짐을 꾸리고 있는 모습을 이제 두 살이 된 네가 멀뚱이 쳐다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너는 두 팔을 벌리고 나에게 안겨온다.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너를 두 팔로 안아 들고 꼭 껴안는다.
그리고 다시 너를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가방의 지퍼를 닫는다.
내가 준비를 마치자 시어머니는 업는 포대기까지 가져다 너를 둘러업는다.
나는 다시 한번 어머니 등에 업힌 너에게 얼굴을 비비고는 얼른 돌아서 현관문을 나선다.
이미 내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고 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매주 이렇게 집을 나서며 나는 눈물바람을 한다.
어머니와 어머니 등에 업힌 너는 나를 따라 골목 어귀까지 따라 나왔다가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동네를 배회한다.
어느덧 칭얼거림은 잦아들고 할머니 등에서 잠이 든 너는 집으로 들어와 할머니방에 눕혀진다.
그렇게 나는 매주 눈물바람을 하며 서울과 울산을 오가고 있었다.
네가 태어나고 젖먹이일 때까지는 옆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매일매일 시간 맞춰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업어서 재우고 네가 자는 사이 기저귀들을 빨아 널고, 해거름에 빨랫줄의 기저귀를 걷어 개켜 넣는 일상들로 채워진 하루.
그렇게 내 하루는 아기를 키우는데 모두 다 쓰이고 있었다.
그렇게 2년여를 보내고 어느 날, 문득 내가 대학원생이었던 것이 생각나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네가 잠든 햇살 좋은 어느 시간, "너, 지금 뭐 하고 있니?"라는 내 안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거다.
명절이나 연휴, 상경할 때마다 만나거나 듣게 된 친구들의 소식은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 우울과 부족감은 아기의 존재와 남편의 위로로는 해결되지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심을 하고 서울-울산간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려 3학기 동안.
주로 목요일, 금요일에 있는 수업을 위해 나는 화요일이면 상경을 하고 수업을 마치는 금요일이나 토요일 울산으로 내려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아기를 서울에 남겨놓고 남편과 둘이서 지내는 주말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마치 그 기간이 없었던 것처럼.
반면 아기와 서울에서 함께 지낸 주중 며칠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침 일찍 가방을 챙겨 등교를 하면 어머니는 아기를 둘러업고 나를 배웅을 해주셨다. 아기가 나와 떨어지는 것을 무척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면 나는 다시 아기 곁으로 돌아올 예정이니 나의 발걸음은 그다지 무겁지 않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온전히 아기와 함께 한다. 아기를 씻기고 먹이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낮동안 함께해주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아기에게 사랑과 관심을 집중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은 내가 다시 울산으로 내려가야 하는 주말이면 다시 눈물바람이 되었다.
아기도 울고, 나도 울고.
아이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느 날, 아이는 하루 24시간을 엄마와 함께 지내던 일상이 깨어졌음을 느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엄마가 없다.
울어도 보고 떼를 써봐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하다. 울다가 지친 아이는 얼러주는 할머니에게 안긴다.
밤이 되어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엄마가 사라진 것일까?
엄마가 보고 싶다.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엄마는 내 곁에 없다. 슬프다.
오늘도 하루 종일 엄마가 안 보인다. 이젠 엄마를 포기해야 할까 보다. 엄마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아, 엄마가 나타났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엄마는 달려와 나를 번쩍 안아 든다. 엄마다!!
엄마는 아이에게 밥을 먹여준다. 졸음이 오는 아이를 가만히 안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자다가 깨어나 두리번거리니 엄마가 내 옆에 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안심이다. 엄마가 내 옆에 있다.
엊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엄마가 집에 있다. 특히 무서운 밤이 되면 엄마는 나를 꼭 안아준다.
그런데 엄마가 오늘 또 없어졌다.
할머니가 나를 업고 한참 얼러준다. 날이 캄캄해지도록 엄마는 오지 않는다.
또 엄마가 내 곁에서 사라졌다.
아,,,,엄마는 어디로 간것일까?, 엄마도, 이 세상도 믿을게 못되는구나.
왜 엄마는 어떤 때는 넘치도록 나를 안아주다가 왜 또 어떤 때는 없어지는 걸까?
믿을 수 없는 세상에 나를 온전히 내맡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얻을 수 있을 때 (또는 기회가 있을 때) 지금 모두 갖겠다.(또는 모두 하겠다.)!!!
내가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아이에게 주었던 양육환경은 정말로 불안정한 거였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존재와 부재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부재가 주는 '전무한 엄마의 사랑'과 서울에 올라와 아이에게 쏟아붓는 '압축된 넘치는 사랑'은 아이에게 "이 세상은 정말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는 혼란과 믿음을 갖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혼란과 믿음은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것 같다.
어느 심리학 이론에서 말하는 'Brilliant Skeptic (명석한 회의론자)'의 모습으로.
아이는 무엇이든 내가 지금 가지거나 할 수 있을 때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만큼 가지려고(하려고)했다.
아이에게 '나중'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이므로. 믿을수없는 세상은 '나중'을 보장해주지않으므로.
언젠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의 작은 가방 안에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봄꽃들로 한가득이었다.
깜짝 놀라 웬 꽃들인지 물어보는 나에게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유치원에서 집에 오는 길가에 피어있던 꽃들을 모두 따 가지고 왔노라 이야기했었다.
재차 "왜?"라고 묻는 나에게 아이는 "너무 예뻐서."라고 말했다.
아이가 어린 시절 보였던 이런 모습은 꽃에서, 색종이로, 필기구로, 문제집으로, 책으로, 공부로 이어졌다.
한번 무엇인가가 마음에 들어오면 끝장을 보려고 했다.
일주일간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른 중고등학생때의 아이는 바로 그날 달력을 펼쳐놓고 다음 시험일정에 맞추어 공부 일정을 짜곤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라고 물으면
"지금 갖고 싶으니까요(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아이는 대답했다.
삶에는, 모든 성격에는 pain & joy가 있다.
젊은 나의 성취욕구로 인해 왜곡된 양육환경은 아이에게 강박적 성격을 갖게 한 것 같다.
그 강박은 아이를 성취지향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어떤 성취에도 아이는 부족감을 느끼는듯하다.
나는 아이가 제가 이루어놓은 멋진 성취를 앞에 두고도 충분히 기꺼워하지 못할 때 늘 마음이 아프다.
이제는 충분히 흡족해해도 좋으련만 아이는 제 앞에 놓인 성과보다 그 위에 펼쳐져있는 또 다른 과업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제 얼마 뒤면 아이는 스스로의 가족을 이루고 자녀를 갖게 될 것이다.
그 시절의 나처럼 '자신의 개인적 삶'과 '엄마로서의 삶'에서 갈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가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늦었지만 학위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직업적 삶을 임신과 출산, 육아로 지연시킬지언정 손에서 놓지않고 꾸준히 이어가리라 믿는다.
하지만 내가 그러느라 아이를 불충분한 양육 환경에 놓이게 한 어리석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성취는 조금 늦어져도 크게 문제될것이 없지만 아이에게 충분한 관심과 돌봄이 주어져야 하는 '결정적 시기'는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딸, 미안하다.
젊은 날의 내가 했던 선택이 너에게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을 남겨주었다면, 어른이 된 이제는 네 안에 너만의 새로운 우물을 파면 어떨까?
네가 목마름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 한 모금씩 들이키며 "이만하면 충분하다.!"라고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자긍과 자족의 우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