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내려놔.
오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
사무실 문이 덜컹 열리며 네 살 아들이 뛰어들어온다.
1층에 있는 어린이집의 원장에게 "제발 6시 넘어서 올려 보내 달라."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오늘도 6시 전이다.
아이의 등장은 늘 다른 직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이다.
녀석의 등장은 우리들에게 퇴근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것이니까.
하지만 엄마이며 동시에 중간관리자인 나는 좌불안석이다. 옆방의 상관이 어떻게 생각할지 눈치가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나에게 쏜살같이 뛰어와 오늘 만든 종이비행기를 보여준다.
마음 한 구석 불편하지만 아이에게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해준다.
그리고 얼른 녀석을 안아 들고 구석의 빈 의자에 앉힌다.
"엄마 일 끝날 때까지 조용히 그림 그리고 있어."
십 분이나 지났을까 녀석은 다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사무실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주며 다닌다.
모두들 "00아, 너 정말 잘 그렸구나!!" "멋진데!!" 칭찬을 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왜 안 그렇겠나!!, 아들은 우리 모두의 퇴근시간을 알리는 전령이며 동시에 누구에게나 친밀한 아이였으니..
큰아이 5살 때 작은 아이를 낳았다.
타고나길 순둥이여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쁨을 많이 받았다.
큰아이처럼 죽기 살기로 울어대던 신생아 시기도 없이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았다.
분명 큰아이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두 번째 아이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남자아이라서 그랬을까?
아들이 돌이 될 즈음 우리 가족은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얼마 뒤엔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고 또 얼마 뒤엔 내가 다시 직장을 알아보며 시댁으로 들어갔다.
시댁엔 노인분만 네 분이 계셨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증조할머니 그리고 이모할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현역으로 사업을 하고 계셔서 살림의 큰 그림만 감당을 하셨고 손주들 돌봄은 8-90대의 노 할머니 두 분의 담당하셨다.
친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아들은 장손이었고 두 노 할머니들에게는 더없이 귀하고 사랑스러운 손주였다.
게다가 아들의 타고난 기질조차 다정다감하다 보니 네 분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지나칠 정도였다.
그렇게 아들은 '사랑을 많이 받는 아이'로 자라났다.
'사랑받는(다른 말로 '인정받는') 아이'는 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데 익숙했다.
네 분의 조부모들은 아이 주변을 둘러싸고 언제든지 아이에게 '인정을 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밥을 잘 먹어도 이쁘고, 잘 놀아도 이쁘고, 하물며 똥을 잘 눠도 이뻤다.
게다가 개구쟁이 누나의 존재는 아들을 더 편애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아이는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다.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은 내가 손만 뻗으면 있었으니까.
아이가 바라본 세상은 긍정으로 가득 차고 친밀함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은 언제든 '선의와 호의'로 내게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름 행복한 시절은 초등학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아이가 미국에서 마주한 세상은 이전의 세상과 많이 달랐다.
더 이상 사람들은 낯선 어린 이민자에게 우호적이지만 않았고 심지어 긍정으로 가득 찼던 자존감에 낯선 감정과 불편한 생각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민자, 동양인, 동양인 남자아이, 액센트,...
이 불편한 생각들과 감정들은 극복해야 했다. 긍정으로 가득 찼던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에게 새롭게 붙여진 라벨을 떼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저절로 잘하게 되리라 낙관하던 공부는 ' 똑똑한 학생이라는 타인의 인정'으로 바꿔놓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저절로 우호와 지지를 받으리라 생각하던 친구관계는 '나서서 다가가는' 적극적 대인관계로 바꾸어야 했다.
딸이 본인이 설정한 '이상적 자신'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갔다면 아들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얻기 위해 자신을 추동했다.
성취동기의 배경이야 어떻든 아들은 청소년 청년기를 거치며 자신이 설정한 삶의 목표들을 이루어나갔다.
학교에서 가장 '인간성 좋은 졸업생'으로 뽑히는 성과도 있었고 준비 없이 도전했다가 무릎만 다치는 자전거 대륙횡단의 뼈아픈 실패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늘 "남이 아닌 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가족이 있었다.
이젠 아들은 어른이 되어 우리들에게서 독립을 했다.
룸메이트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족이 아닌 남과 함께 살아나가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아직도 수련 중인 직장생활에서도 동료와 선배, 가르치는 선생님들과의 관계 속에서 제 역할을 배우며 '빵을 버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타인으로부터의 거절 또는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그 거절의 두려움은 "나는 모든 이들로부터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 허용'의 부족에서 기인하는듯하다.
어린 시절 아이는 넘치는 인정 자극 속에서 부정을 내포하고 있는 피드백을 이해하고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키워내지 못했다.
타인으로부터의 피드백에는 수많은 다른 요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자신을 점검한다.
그 점검은 "왜 저 사람은 나에게 친절하지 않을까?, 나를 좋아하지 않는가? 내가 실수한 것인가?"로 해석되면서 불안을 증폭시킨다.
그럴 때마다 아들에게 환기시킨다.
의사소통의 객관적 사실을 먼저 주목하라고.
의사소통에 담겨있는 감정적 메시지가 부정적일지라도 그 부정적 피드백은 너의 '행함'에 있지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고.
타인의 부정적 피드백이 네 '존재'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임을 기억하라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인정이 없어도 너는 너 자신으로 이미 충분하다는것을 기억하라고.
그냥, "너는 너, 그대로 괜찮다."는 것을 늘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