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이 태어나자 시작된 야뇨증

남동생을 둔 너와 나의 잔인한 운명

by 유강


꿈속에서 나는 오줌이 많이 마렵다.

두 다리를 꼬며 종종거리다가 오줌을 누기 위해 집 밖에 있던 변소나 뒷마당 같은 곳으로 뛰어들어간다.

허겁지겁 옷을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시원하고 오줌을 눈다.

엄청 참았었기 때문에 오줌을 누는 순간 시원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 시원함이 몇 초 진행이 되는 순간 나는 밑이 축축하게 젖어오는 또 다른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렇게 나는 꿈을 깨고, 동시에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도 나는 오줌을 또 싸고 말았다.

대략 이렇다. 오줌싸개의 진실이란 것은.




나는 오줌싸개였다. 그것도 초등학교 1-2학년이 되도록 그 잔인한 운명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나는 내가 언제부터 오줌을 쌌는지 기억하질 못한다. 다만 오줌을 싼 뒤 받아야 했던 구박과 어린 나이에 깊이 새겨진 내면의 상처만이 기억될 뿐이다.


그런 내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오줌싸개에서 벗어났다.

서서히 차오르는 자의식과 사려 깊은 부모의 세심한 배려에 의한 극복이었으면 오죽 좋았겠나.

하지만 슬프게도 나의 오줌싸개 극복은 그렇지 못했다.


그날도 나는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엄마 눈치를 살피며 풀이 죽어있었다.

엄마는 예의 잔소리를 늘어놓더니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 오란다. 그것도 쌀 까부는 키를 뒤집어쓰고서.

그전에도 가끔 소금을 얻으러 가기는 했지만 키까지 쓰고 가라니... 더 창피했다. 그래도 할 수 없는 일.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나와 길 건너의 이웃집에 갔다. 그리고 말했다. "소금 좀 주세요"

마침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던 아주머니는(작은엄마였었나?) 활짝 웃으면서 나를 맞았다. 그러마고 하시면서.

하지만 돌아온 것은, 눈앞에 불이 번쩍!! 바로 소금 대신 넙적한 밥주걱의 빰 싸대기였다.

조금은 창피하고 조금은 멋쩍게 서서 소금을 기다리고 있다가 눈에 불이 번쩍 나게 밥주걱에 맞은 느낌은,,, 뭐랄까, 갑자기 세상이 확 깨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나는 놀라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 날부터 어린 나는 물을 안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줌은 물을 먹으니까 나오는 것이니까.

어쨌든 그 충격적인 사건 이후 나는 단박에 야뇨증에서 벗어났다.

야뇨증에서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하도 물을 안 마시려고 해서 어릴 때 토끼 새끼 같다는 둥, 염소 새끼 같다는둥하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자라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고 너무나도 폭력적인 처방이었다.




사실 나는 넷째 딸이다. 내 밑으로 2년 터울의 남동생이 있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몰고 계시던 지프차의 핸들이 덜덜 떨렸다고 하셨고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목놓아 울었다고 들었다.

넷째까지 딸을 낳은 엄마는 2년 동안 온갖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작은 은장도를 허리춤에 품고 다니셨고 집 대들보 밑에는 무당이 건네준 부적을 파묻기도 했단다.


그렇게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태어났다.

내 기억속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모른다. 사진을 보았을수도있고, 실제로 보았을수도 있고.) 한귀퉁이에는 엄마와 남동생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남아있다.

둘이 같이 맞추어 입은 하얀 오버코트, 활짝 웃는 엄마품에 안긴 어린 남동생의 모습.

남동생은 집안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드디어 아들을 낳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는 위로 네 딸들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밑의 남동생을 봐야 했던 세 살배기 어린 나는 어땠을까?

두 살 터울의 남동생에게 온 식구들의 사랑과 관심을 빼앗겨버린 어린 나는 그 '박탈'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아마도 내 야뇨증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큰아이 5살 적에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사실 큰 아이는 보통의 경우보다 빨리 기저귀를 뗐었다. 일찍 화장실 훈련을 한탓도 있지만 첫 아이라 많은 관심 속에 별문제 없이 기저귀를 졸업하고 어린이집을 잘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태어나고 어느 날부터 오줌을 싸기 시작하는 거다.

처음에는 한두 번 실수하는 것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네 가족만 살던 때보다도 시댁으로 들어간 때부터는 점점 더 심해져갔다.

아이가 커가는 몸만큼 오줌 싸는 정도와 빈도도 늘어갔다.

걱정이 되어 병원과 한의원을 데리고 가도 별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한 번은 하룻밤 사이에 세 번이나 지도를 그린 적이 있었다. 무려 세번씩이나!!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늘 있는 일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갈아 눕힌 이부자리가 또 젖었으니 수건을 겹쳐서 덧깔고, 그런데 하룻밤 사이 벌어진 세 번째에는 이부자리를 또 갈면서 나도 모르게 녀석의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고 있었다.


"너,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응???"

그러다 문득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지금 누가 누구를 혼내고 있는 거란 말이냐?, 너도 어릴 때 그랬던 것 기억 안 나냐??"

"아하하하, 그래 나도 너처럼 오줌싸개였지... "




멀쩡하게 오줌을 잘 가리던 아이가 오줌을 싸는 것, 그것도 많은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더 심해지는 아이의 야뇨증을 나는 '남동생의 출현'으로 해석했다.

5년 동안 저에게만 쏟아지던 관심과 사랑이 어느 날부터 '낯선 남동생'에게로 향하고 저는 무대 밖으로 밀려났다고 느꼈을 때 아이는 '오줌싸개'라는 '퇴행'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겪어내기로 했다.

밤마다 오줌을 싸는 아이의 마음을 다둑여주기로 했다.

오줌을 싸면 이부자리를 갈아주고 수건을 덧깔아주고, 풀 죽어있는 아이에게 "괜찮다."라고 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더 이상 기죽지 않아 보였다.

아참, 나도 너처럼 오줌싸개였다는 말도 해주었던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물을 덜 먹이고 수박 먹이지 말고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수건도 넉넉하게 준비하고.


그렇게 나는 우리 엄마 같은 특단의 조치가 아닌 그냥 '인내심'으로 이겨내 보기로 했다.

결국은 스스로 새로 태어난 남동생을 형제로 받아들이고, 부모로부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되돌아올 수 있는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딸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줌싸개를 극복했다.

내가 겪었던 것 같은 끔찍한 경험 없이, 물 많이 먹는 습관도 유지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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