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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천 Aug 19. 2021

4. 친구 만나러 헤이그

[100일 여행] 브뤼셀 → 헤이그, 2015년 8월 15일

헤이그(Hague)에 가기 위해 브뤼셀(Brussels)에서 열차를 갈아탔다
'스머프'와 '탱탱'으로 유명한 만화의 도시 브뤼셀(스머프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역 안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룩셈부르크를 출발해 브뤼셀을 거쳐 헤이그에 도착했다. 헤이그는 하루 종일 부슬비가 내렸다.


모르는 사람들과 문화에 치여 괜히 의기소침했던 하루. 일본 유학 시절 처음 돈코츠 라멘 가게 아르바이트하던 때처럼, 어울리지 않는 곳에 불쑥 나타나 겉도는 불청객이 된 느낌이었다. 괜히 혼자 따로 노는 것 같아, 이러다가 100일 내내 외롭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하루였다.

Den Haag = Hague

호스텔 예약에 무슨 착오가 있었던 건지 여성 전용 도미토리 룸에 묵게 되었다. 유럽 호스텔에서는 남녀 혼숙이 보통이라, 프랑크푸르트의 호스텔에서 맞이했던 여행 첫날밤은 참 어색했었다. 아직 그 어색함도 다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자리를 안내해주러 같이 들어갔던 호스트가 사정을 설명하자, 다 같이 클럽이라도 가려는 건지 화려하게 차려입고 있던 여자 투숙객 열댓 명이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나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인사했지만, 다들 웃음보가 터졌던 걸 보니 당황한 게 표정에 다 드러났었나 보다.


다행이라면 다행히도 각 자리마다 커튼을 칠 수 있어서, 호스트가 이것도 재미있는 추억이 될 거라는 말을 남기고 나가자마자 자리 안에 들어와 커튼을 친 채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있다. 졸업파티(였던가? 하도 경황이 없어서 호스트의 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했다)에 같이 가려고 한 방을 잡고 모인 사람들이라 오전에는 다 나가고 없을 거고, 내일 다시 '평범한' 혼숙 룸으로 바꿔준다고 하니 하룻밤만 버텨봐야겠다.


내일은 네덜란드 친구 A를 만나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으로 가기 전에 헤이그에 들른 이유도 A 때문이다. 그녀는 한참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에 환상 같은 걸 가지고 있던 시절, SNS를 통해 알게 된 외국인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온라인 친구 치고는 제법 오래 연락이 끊기지 않아서, 가끔 메신저로 잡담을 나누거나 SNS 게시물에 서로 코멘트를 달아주거나 하며 몇 년 정도 알고 지내왔다. 100일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니까 자기가 살고 있는 헤이그도 꼭 들르라길래 그러기로 했다.


일본에서 살 때 믹시(일본에서 제일 많이 쓰던 SNS다) 친구로 알게 되어 실제로 만났던 N처럼 막상 만나고 나면 괜히 어색해질까 걱정이다. 지치고 우울해지다 보니 별게 다 걱정이다. 커튼 저 편의 소녀들은 밤늦은 시간에도 아직 뭐가 그리 신나는지 지치지도 않고 떠들썩한데.


상대 쪽에서 별로 불편해하지도 않는 것 같던데, 나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나가서 편하게 있으면서 네덜란드 말이야 잘 모르지만 서로 서툴게라도 이야기도 하고 그러면 새로운 여행 친구가 생길지도 모르는 건데. 최소한 오늘 밤 잠들기 전까지 편하게 지낼 수는 있을 텐데. 일기를 쓰다 말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좋은 추억을 만들 기회를 날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놈의 소심함은 언제쯤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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