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데이식스-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듣고 오셨습니다. 오늘 코너는 오지라퍼인 제가 여러분의 대나무 숲이 되어드리는 '속마음은 오지라퍼를 타고'인데요. 어딘가 터놓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저를 찾아주세요. 오늘은 또 어떤 분이 저를 찾아 주셨을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에 살고 있는 30대 초반 직장인입니다. 정확히는 요즘 다시 사춘기를 겪고 있는 30대요. 남들은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줄 몰라요. 겉보기엔 탄탄대로의 어른의 길을 걸어왔거든요. 열심히 공부해 나름대로 평판이 좋은 대학을 갔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번듯한 직장에 들어왔고요. 직장인이 되고 나선 해외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서핑에 가죽공예에 하고 싶은 것들도 하고요. 솔직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 제가 적당히 행복한 어른이라 생각했어요. 가끔 힘들긴 해도 돈도 벌 만큼 벌고 있고, 제 삶에 재미와 책임 둘 다 놓치지 않고 균형을 잘 잡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 제 인생이 끝도 없는 과제처럼 느껴졌거든요.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냥 사회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주변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서서히 주변의 시선에 결혼이 현실적으로 다가왔거든요. '몇 년 만난 사람도 있잖아, 직장도 안정되어 있고, 결혼하기 적절한 시기지 않아?'라는 그 말들이 어느 순간 제게 오는 안부가 되었어요. 물론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죠. 어릴 적에는 막연히 적당한 나이에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고, 또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결혼하기에 모난 사람도 아니고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도 저랑 결혼하는 걸 자연스레 생각하는 것 같고요.
근데 이게 점점 현실로 다가오니 느낌이 확 달라요. 내가 이 정해진 틀을 따르면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결혼을 하면 또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난 중년이 되어 있을 것만 같고, 결국 나는 사라질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갑갑한 거예요.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구요. 물론 결혼을 해서 잘 사는 친구들도 있고, 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지만 전 잘 모르겠어요. 결혼이 현실로 다가올수록 저와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세상에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데도 무엇이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몇 년 전처럼 적당히 행복만 하면 되는데 제가 너무 많은 행복을 바라고 있는 걸까요? 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어떤 결정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까요?
네, 505505님이 보내주신 사연 잘 들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터놓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야기를 나누어주셔서 감사해요. 음,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으면, 절제하고 책임질 수 있으면 어른이라고 말하곤 하죠. 근데 저는 해야 할 일을 받아들이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바로 현실과 낭만이 공존하는 사람이요. 물론 제가 말하는 현실은 사회의 틀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나의 삶과 결정에 책임을 지는 형태라는 거예요.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정을 한 나를 존중하고 그 결과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 말이죠.
그러니 505505님은 어떤 선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아 물론 저는 505505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든 응원할 거예요. 자신의 삶에 대해 제일 오래 고민한 건 바로 505505님일 테니까요. 그저 505505님 선택의 끝에 부디 현실의 무게를 버틸 무언가가 있길 바랄 뿐이에요. 현실 속에서 삶의 만족을 느낄 무언가가 있으면 분명히 행복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505505님이 오늘 밤은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잠드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탠딩 에그-little star(https://youtu.be/dI8NZsjRyGk?si=rNpjw05DeKdE863h)' 곡 띄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