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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업본부장 한상봉 Oct 20. 2023

서희는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었을까?

영업사원의 눈으로 본, 역사를 뒤바꾼 거래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특히 액션이나 테러 관련 영화를 보면 꼭 나오는 장면이 있다. 서로 원하는 걸 협상하고 악수를 하며 번갈아 또는 동시에 하는 말. "딜". 우리말로 치면 거래성사 혹은 거래합의 정도일 텐데 한쪽이 무조건 받거나 한쪽이 무조건 주는 경우에는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루종일 무언가를 "딜"을 하며 지낸다. 버스를 태워주는 조건으로 돈을 내고, 밥을 먹는 대신 그만큼의 돈을 내서 딜을 하고 아이가 밥을 먹게 하기 위해서 유튜브를 보여주는 딜을 하기도 한다.(밥을 먹는 조건으로 유튜브를 걸다니 다시 아기가 되고 싶다) 이런 작은 거래와 딜을 통해서 사건이 생기고 사고가 터지며 역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딜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되는 거래가 있다. 영업의 차원으로 보면 그야말로 대박 수주일 텐데 역사적으로 그런 거래들은 무수히 많다. 


교과서에서는 젊잖은 표현으로 반만년 역사 최고의 외교성과로, 최고의 외교관으로 강동 6주 반환과 서희를 얘기하지만 결국 그 사건은 거래를 할 줄 알았던 최고의 협상 전문가의 쾌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모든 주변의 상황과 협상 대상자의 진의를 꿰뚫고, 적이 꼼짝할 수 없는 명분을 내세워 실리를 챙기는, 지금으로 치면 에이스 영업사원의 극적인 뒤집기 수주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대화로 서로의 간을 보고, 얼마나 많은 협상을 통해 위협을 하기도 했다가 위협을 당해 무서워하는 척을 하기도 했을까? 바로 이 타이밍이다 싶을 때 던지고 반응을 기다리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상대의 공격을 받고 밤새 고민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더 깊게 거래를 이해하고 더 넓게 상황을 판단하고 더 크게 원하는 걸 얻고자 했던 한마디로 더 거래의 전문가였던 서희에게 역사는 메달을 수여했다. 이제 그 메달을 어떻게 목에 걸었는지, 그리고 그 메달로 얼마나 우리 조상들의 삶이 바뀌는 역사가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1. 격에 맞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다.


북한 관련 뉴스 중 무슨 회담을 하게 되는 걸 보면 늘 우리 측은 누가 나가고 북한 측은 누가 테이블에 앉는지가 나름 중요한 문제가 된다. 남한에서 국방부 장관이 나서면 북한은 적어도 인민무력부장이 마주 앉아야 하는 식이다.


거란은 협상을 시작하기 전부터 고려 측 대표를 무시하려고 했다. 거란 측 대표인 소손녕은 우리 측 대표인 서희에게 처음 만난 자리에서 뜰에 엎드려 절하기를 요구한다. 딜을 하기 위해 만나는 자리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굽신거림?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서희는 생각했을 것이다. 상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게다가 실제 협상과는 관련 없는 부차적인 일로 기를 꺾으려 할 때 딜을 하는 사람은 상대가 예상치 못할 수준의 반발을 하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서희는 아예 자리에서 물러나 그냥 숙소에서 누워 잠을 자버렸다고 한다. 굳이 타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상대에게 명확히 알려준 것이다. 얼마나 당당하고 또렷한 태도인가? 어쩌면 이 첫 싸움에서 이미 거란은 고려에 패배한 것일 지도 모른다. 


가끔 회사끼리의 미팅을 진행할 때도 비슷한 경우를 겪을 때가 많다. 왜 업무미팅 전에 서로 명함을 주고받는지 아는가? 나중을 위해 연락처를 주고받는 의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회사이름 밑에 박혀있는 부서와 직급을 서로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 만난 자리에서 어느 정도까지가 결정되어질 수 있고 어느 정도까지를 내보여도 되는 지를 서로 확인하고 인정하는 일종의 의식인 것이다. 


이제 고려와 거란은 동등한 자격으로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스타일을 한번 구긴 소손녕은 '실제 협상에서 이득을 취하면 되지 뭐'라는 정신승리를 하면서 더 집요하게 협상에 임할 것이다. 하지만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서희는 작전을 다 수립하고 수없이 많은 리허설까지 마친 베테랑 딜러이다.



2. 난 니가 지난 싸움에 처한 상황을 알고 있다.


거란은 강한 나라다. 성장하는 나라이고 그 당시에는 거칠 것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고려정도는 그냥 동네 강아지 걷어차듯 원하면 언제든 굴복시킬 수 있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 나라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에게 굴복을 요구하는 오늘의 주제인 협상에 임하기 전 거란은 뜻밖의 경험을 한다. 안융진이라는 고려의 땅을 공격했는데 방심한 탓인지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다. 수없는 승리와 패배가 존재하는 게 나라 간의 전투라 그로 인해 크게 국력의 손실을 입지는 않았겠지만 절대 질 리가 없다는 상대에게 어퍼컷을 허용한 챔피언은 순간 당황하고 놀랄 수는 있는 법이다.


가끔 회사규모나 레퍼런스의 차이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회사에 영업사이트를 빼앗기는 경우가 있다. 그 사이트 수주를 하나 놓친다고 회사가 기울어지는 건 아니지만 제대로 된 영업사원이라면 오너라면 실주의 이유와 원인을 찾는 데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거란이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서희에게는 그리고 그 당시 고려왕이었던 성종에게는 자그마한 자신감의 불씨가 되었을 수는 있다. 서로 드러내놓고 얘기하진 않았을 테지만 아마 서희는 마음속으로 계속 외치면서 협상을 했을 것이다. "난 니가 지난 싸움에 처참하게 패한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난 니가 진짜로 이 협상에서 원하는 게 뭔질 알고 있다." 이제 서희가 협상과 거래의 대가라는 걸 증명해 주는 마지막 이유로 들어가 보자



3. 강하기만 한 자는 준비된 자를 이길 수 없다.


고려는 이름부터 고구려랑 닮았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이, 태국이 한 개의 글자가 같다고 해서 같은 나라라고 우기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럼 무엇이 필요하지? 옛날 고구려가 다스리던 일부의 땅에 살고 있으니 그걸 우겨볼까? 그것도 논리적이지 못하다. 왜냐면 거란도 옛날 고구려가 차지했던 땅에 현재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희는 결정적인 한방, 하지만 다소 속임수에 가까운 페인트 멘트를 준비한다. 현재 고려의 수도는 개경이지만 소손녕에게는 서경이 고려의 수도라고 일갈한다. 서경은 옛 고구려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영업을 하다 보면 가끔 고객사가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거나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허세처럼 얘기할 때가 있다. 사기까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가진 역량이나 능력을 다소 과장하여 고객사에 어필하는 경우이다. 아직 정식으로 계약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회사의 고객사인 것처럼 얘기 한다거나 거의 형식적인 형태의 MOU를 맺고 있는 큰 회사를 전략적으로, 업무적으로 밀접하게 제휴하고 있는 것처럼 회사소개서에 넣어두는 경우 말이다.


서경은 그 당시 고려가 통제가능한 곳이었다. 나름 두 번째로 큰 도시(?)였고 별궁도 존재하니 충분히 거란에게 어필이 되었을 것이다. 니들이 고구려의 땅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명분을 내세워?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해라. 심지어 우리는 고구려의 수도가 우리 땅에 있는 나라다. 니들 명분대로라면 오히려 니들이 차지하고 있는 강동 6주를 우리한테 돌려줘야 맞지 않나?


서희는 거래를 시작하기 전에 여기까지 봤을 것이다. 그는 위대한 협상가요 거래자였으니까. 그런 위대한 거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고려는 항복의 위기에서 오히려 넓은 땅을 더 얻게 되는 나라가 되었다. 고려는 서희 보유국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서희는 거란이 협상에 임하는 고려를 압박하는 진짜 이유도 이미 파악을 마쳤다. 고려를 굴복시키겠다는 뜻보다는 그 당시 거란의 주적이었던 송과 고려가 연합하는 것, 즉 고려가 송나라에만 조공을 하는 상황을 불편하게 여기는 거라는 걸 말이다. 그 진짜 이유를 알았기에 강동 6주를 돌려달라는 요구를 당당하게 할 두 번째 명분을 꺼내 놓는다. 즉 거란과 고려사이에 살고 있는 여진족을 몰아내 달라고 그리고 그 땅을 우리에게 달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는 땅을 얻고 거란은 고려와 송나라가 연합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딜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 딜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안다.


한 사람의 능력과 통찰과 상황판단능력은 한 회사를 구할 수도 있다. 아무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영업에 뛰어들어 사이트를 얻어내고 그 기반으로 계속 수주를 이어간다. 범인들이 볼 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그 사람만의 혹은 그 회사만의 판단시스템을 가동하여 승산 있는 싸움으로 만들어 간다.


서희가 보여준 거래자로서의 당당한 자부심과 상대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 그리고 치밀한 사전준비는 오늘을 사는 영업사원, 아니 매일같이 거래를 하며 사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역사를 통해 오늘을 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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