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의 눈으로 본 역사를 뒤바꾼 거래들
영업은 여러 가지 형태의 방식으로 분류된다. B2B, B2C 같이 영업대상이 누구냐로 구분할 수도 있고 영업대상의 접점에 따라 low-end, high-end 영업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최종 end user를 컨택하는 게 누구냐에 따라 Direct, Indirect 영업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 중 세 번째 구분인 직접영업이냐 제휴영업 이냐는 실제로 영업조직을 가지고 있는 많은 회사에서 팀으로 혹은 부서로 분별하여 실행하는 영업방식이다. 직접영업이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고 제휴영업은 첫 번째로, 내가 만든 제품을 협력사를 두어 팔게 하거나 두 번째로, 더 큰 고객을 확보하기 위하여 혹은 더 큰 시장의 경쟁자를 뛰어넘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약한 두 회사가 협약을 맺어 기술을 공유하기도 하고 영업에 힘을 합치기도 하는 형태를 말한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제휴영업의 형태이고 두 번째는 예컨대 애플을 상대하기 위한 삼성과 구글의 제휴나 노태우를 상대하기 위한 김대중 김영삼 단일화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첫 번째든 두 번째든 공통점은 이것이다. 서로 다른 회사 또는 조직이 더 큰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는 것. 내 회사가, 우리 회사의 제품이 더 성장하고 잘 팔리기 위해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징검다리일 수도 있고 때로는 살아남기 위한 유일무이의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
이게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일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밀려들어오는 창칼을 든 주적에 맞설 객관적인 전력이 부족할 때 살기 위해서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하는 데 만약 그 누군가가 간을 보는 중이라면? 그 누군가가 나와 같은 심정으로 우리와의 제휴를 우리만큼 원한다면 특별히 노력이 필요치 않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그 제휴를 성사시킬 히어로가 반드시 등장해야만 한다.
오늘 이글에서 그 어려운 것을 성사시킨 역사적인 영웅을 확인한다. 삼국지의 촉오 동맹을 성사시킨 촉나라의 재사 제갈공명이 바로 그이다.
워낙 유명한 역사적 사건의 에피라 많이 들 알고 있겠지만 가볍게 설명하자면 위세를 떨치던 조조의 위나라로 인해 촉나라의 유비가 풍전등화에 놓인 그때, 손권의 오나라와의 제휴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판단한 제갈공명은 단신으로 오나라를 설득하기 위해 제휴상대를 찾아간다.
오나라에게도 조조의 위나라는 버거운 상대였기에 많은 오나라의 신하들은 투항을 생각하고 있었고 뒤에 얘기하겠지만 그 투항의 이유에 본인들의 안위와 영락을 취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 설득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제휴에 부정적인 그들을 제갈공명은 어떻게 설득하고 극복해 내었을까? 그리고 그 역사적 딜은 현재의 제휴영업에 어떤 교훈이 될 수 있을까? 당시 제갈공명이 오나라의 신하들과 나누었던 논쟁을 통해 그리고 그걸 실제로 경험했던 보안솔루션 업계 제휴미팅으로의 투영을 통해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이 대화는 이문열 작가가 평역한 삼국지를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제갈공명 (토론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예를 갖춰 인사한다.)
영업사원 (자리에 앉기 전 상대회사의 사람들과 명함을 교환하고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오나라 장소] 유예주 께서는 선생을 얻고자 삼고초려까지 하셨다는데 선생을 얻고 나서 오히려 세가 기울고 이처럼 위기에 빠진 것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제갈공명] 주군께서 지금 곤궁한 것은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양에서 조조에게 쫓길 때도 주군은 충분히 상황을 극복하고 후일을 도모하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따르는 백성을 외면하지 못해 위험을 자초하시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백성을 위하는 게 우선이거늘 그 큰 대의와 잠깐의 위기와 곤궁을 비교해서야 되겠습니까?
[제휴상대회사 임원] 지금 F사는 새로운 솔루션 출시 후 오히려 매출이 급감하고 있는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기존 제품에 대한 영업을 강화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영업사원] 당장의 숫자와 편안함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시장은 급변하고 있고 경쟁도 치열합니다. 회사가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이 현재에만 안주한다면 시장에서 외면받고 무너지는 건 한순간일 겁니다. 끊임없이 연구개발을 통해 제품을 출시하고 업그레이드하고 만약 필요하다면 이렇게 제휴를 통해서 시너지를 내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나라 우번] 지금 조조는 군사가 백만이고 장수만 해도 천명이 넘는다고 하오. 공명께서 이런 조조를 이기겠다고 하시는 건 당랑거철의 만용이 아닙니까?
[제갈공명] 조조의 군세가 강한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촉나라는 그에 비해 턱없이 약하지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맞서 싸울 것이냐 투항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우리 촉나라는 대의를 위해 그리고 명분을 위해 각오를 다지고 싸울 의지를 보이는데 오나라는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고 맞서 싸울 능력이 되는 데도 투항할 생각부터 하면서 싸워보지도 않고 이미 지고 있는데 누가 더 백성의 비웃음을 사겠습니까?
[제휴상대회사 임원] M사는 이미 시장점유율도 높고 레퍼런스도 많아 경쟁이 되겠습니까? 더구나 2위인 우리 보다도 귀사는 훨씬 점유율이 낮은 3위인데 왜 우리가 귀사와 제휴관계를 맺어야 합니까?
[영업사원] 만약 그 시장을 포기하면 M사는 귀사가 우위를 가지고 있는 다른 시장도 넘볼 겁니다. 하지만 귀사는 단독으로 M사의 시장을 뺏어올 힘도 의지도 없지 않습니까? 저희와 제휴하셔서 저희 솔루션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귀사의 장점을 녹여 M사의 시장을 뺏어 옵시다. 귀사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귀사 솔루션과의 기능 융합을 통한 고객설득포인트를 오랫동안 고민해 왔고 가능하다는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닌 눈으로 보이는 기능의 향상을 통해 시장을 같이 가져옵시다.
[오나라 엄준] 공명께서는 도대체 어떤 경전을 공부하셨길래 이리도 오만하시오?
[제갈공명] 책장이나 뒤적이고 남의 글귀나 따서 아는 척하는 건 썩은 선비나 하는 일이니 어찌 대의를 품고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겠소. 나라를 일으킨 많은 선대의 선배들은 온 세상을 바르게 이끌었으나 평생 무슨 경전을 공부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소이다. 내 이미 경전에는 없는 천하삼분지계로 천하를 편안케 하고자 하니 겁먹지들 말고 함께 조조와 맞섭시다.
[제휴상대회사 임원] 제휴에 따른 분석을 하긴 한 겁니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영업사원] 언제까지 책상에 앉아서 분석만 해서는 답이 나오질 않을 것 같아 찾아뵌 것입니다. 분석 중요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분석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 이미 M사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닙니까? 더 이상 실기하지 말고 함께 시장을 개척해 나갔으면 합니다. 제휴에 따른 효과와 예상 영업계획, 매출계획은 따로 준비된 것이 있으니 같이 검토해 보았으면 합니다.
대비를 위해 말투나 뉘앙스가 좀 과장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실제로 이런 제휴 노력을 통해 거의 6개나 되는 동종업계의 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협의회를 만들어 시장에 대한 공동대처를 한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다소 불법적인 영업행태(타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등)를 보인 1위 업체에 대해 협의회 차원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하였고 큰 프로젝트는 협력을 통해 지분을 나누어 수주한 적도 있다. 이때의 경험은 나중에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제갈공명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우리에게 제휴영업에 대한 스킬을 전수해 주었다. 절대 강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2위와 3위가 연합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휴 상대 오너의 진짜 마음을 간파해야 함도 가르쳐 주었다.(당시 오나라의 손권은 조조와 싸우고 싶었으나 자기 신하들의 의중을 알고 싶어 했다) 또한 무작정의 우기기 설득이 아니라 승산이 있는 싸움임을 오랜 고민으로 논리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에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오나라의 대신들과의 논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노숙이라는 상대방 소속의 사람이지만 날 이해해 주고 응원해 줄 수 있는 다른 편이지만 내편 같은 너를 미리 확보해 둠으로써 결정적인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2008년도에도 제휴를 맺고자 했던 회사의 영업대표들과 좋은 친분을 쌓아둔 상태였고 그분들이 적극적으로 그 회사 내부에서 지지를 표했기 때문에 제휴가 가능할 수 있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제갈공명의 촉오동맹은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격파하고 그 당시 중국의 역사를 새로 바꾸었다. 만약 그때 제갈공명이라는 걸출한 딜러가 없었다면, 혈혈단신으로 내로라하는 최고의 논객들을 상대할 용기를 가진 그가 없었다면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를 일이다. 역사는 역시 용기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딜력을 통해 발전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