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의 소화불량, 하루 만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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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동안 나를 괴롭히는 소화불량을 이겨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 봤다.
병원에 가는 게 일상이 됐다. 약을 처방받는 건 밥 먹는 것처럼 익숙해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진료실에서 마주한 의사 선생님은, “이젠 거의 만성처럼 보이네요.”라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을 부정하고 싶던 나는 내과가 아닌 한의원을 찾았고, 약침도 맞아보고 한약도 지어 보았다. 그러나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명한 가정의학과 검사를 겨우겨우 예약했다. 원인 불명 각종 질환의 근원을 찾는 것에 도움이 된단다. 이 방법마저 안 통한다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의학과에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가정의학과 검사를 며칠 앞둔 금요일, 미리 잡아놓은 1박 2일 춘천 북스테이 여행이 있었다. 가장 친하고 편한 세 명의 친구들과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몇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린 일정이었다. 그런데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점점 불편해졌다. 소화불량 증상 때문에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어쩌지? 음식을 먹고 배가 아프거나 속이 울렁거리면 어쩌지? 온갖 걱정과 불안이 몰려왔다. 솔직히 여행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귀중한 시간을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춘천으로 떠나는 날, 오전까지도 속이 너무 안 좋았다. 한약 때문에 끊었던 내과 약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처방받아두었다. 친구와 춘천으로 가는 길 동안에도 속이 울렁거려서 저녁은 어떻게 먹어야 하나 막막했다. 당시 한약을 먹느라 약 한 달 동안 밀가루,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았던 시기라 외식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나 하나 때문에 같이 여행 온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우리는 춘천 닭갈비 집에 가기로 했고, 나는 사이드 메뉴인 밥과 찌개를 먹기로 했다.
오랜만의 여행. 들뜬 마음으로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닭갈비 집에 도착했다. 사장님이 굉장히 친절하셔서 직접 고기를 다 구워주셨고 심지어 한 점씩 먹어보라며 각자 앞접시에 정성스레 놓아주시기까지 했다. 그 상황에서 굳이 사장님께 고기를 못 먹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고, 괜히 분위기를 깰까 두려워, 그냥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고기를 입에 넣었다.
한 달 만에 먹는 고기는, 정말이지 너무 맛있었다.
‘아프면 약 먹지 뭐’라는 심정으로 조금씩 고기를 먹어봤는데 어라? 생각보다 괜찮았다.
마음속의 묵직한 돌을 내려놓듯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어딘가 이상했고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왜 괜찮지?’
분명 오전까지만 해도, 춘천으로 오는 길에서만 해도 속이 너무 울렁거리고 힘들었는데 정말 기적 같은 변화였다. 용기를 얻어 평소에 상상도 못 했던 콜라도 몇 모금 마셨다. 역시나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북스테이 숙소로 이동했다.
마음의 짐을 훌훌 던져버리고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친구들과 책도 읽고,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으면서 오랜만에 옛 일상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당시 밀가루를 안 먹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먹으려고 쌀 디저트를 포장해 갔었다. 책을 읽으면서 하나 둘 먹기 시작했는데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었음에도 속이 괜찮았다.
이때부터 점점 ‘아 이거 신경성이었구나!’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 조식으로 나온 토스트, 브런치로 먹은 샌드위치와 파스타. 약 한 달 만에 먹은 밀가루가 문제없이 소화됐다.
6개월 동안 나를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들던, 그 끔찍한 소화불량이 그렇게 끝이 났다. 내가 치료된 시간은 어쩌면 몇 분, 아니 몇 초의 찰나였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익숙한 상식이다. 그렇지만 그 상식을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하면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당장 내 눈앞의 신체적 증상을 치료하기에 급급했다.
나는 이제 이전보다 더 빨리 의심한다. 이게 내 몸의 신호인지 마음의 신호인지.
물론 단번에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신체적 증상에 가려 보이지 않는 불안과 걱정을 차분히 살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내 마음과 손을 맞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