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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eon May 16. 2020

성수동 반지하에서 자가격리하기

    교환학생을 떠났던 덴마크에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나는, 성수동 고모네의 반지하 셋방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집이 정말로 그리워서 그곳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집에서 격리를 하다 엄마 아빠에게 코로나를 옮기면 큰일이라 고민하던 차에 들어온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이 방을 세를 주지 않고 비워 뒀냐고 물었더니, 요즘 이런 반지하 방은 외국인노동자들만 간간이 들어오는데,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는 들어올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복잡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친구와 자취를 하기 위해 투룸을 보러 다녔던 때가 떠올랐다. 비좁은 원룸보다는 좀 더 넓게 살고 월세도 절약해 보자는 생각에 우리는 학교 근처의 부동산들을 돌아다녔는데, 우리의 빠듯한 예산에 맞는 투룸은 대부분 좀 오래된 건물의 반지하였다. 분명 방도 꽤 넓고 월세도 쌌지만, 대부분은 들어가자마자 ‘아, 별로 여기 살고 싶지 않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수동의 이 방에 몇달째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건, 이제 돈 없는 청년들이나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열악한 반지하에 살면서까지 서울 한가운데를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을 살아내고 잠드는 공간은 사람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그래도 화창한 5월에 2주간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방이었다. 창문과 담장이 조금은 떨어져 있어 그 사이로 햇빛이 들었고, 5월인데 벌써 초여름처럼 덥다는 날씨도 반지하의 실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반지하 최대의 적인 습기를 불러오는 비가 오지 않아서 상당히 쾌적했다.



    성수동에서 이뤄낸 최대의 업적은 독서였다. 2주간 자유를 반납한 데 대한 보상심리가 발동했는지, 교보문고에서 두 번에 걸쳐 10만원어치의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읽었다. 어쩌면 군대에 있을 때 그렇게들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 불가피하게 자유를 빼앗겼지만, 주어진 시간이라도 낭비하지 않아야겠다는 압박이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2주를 버텨냈다. 물론 책만으로 온전히 텅 비어있는 시간표를 채울 수는 없었지만, 그 2주동안 이곳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덴마크의 수업과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남는 시간을 채우고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도중에 성동구에서 손소독제와 마스크, 격리 지침 등을 담은 종이가방을 문 앞에 두고 갔는데, 거기에 담긴 배려에 미소가 지어졌다. 매일의 삶이 쉽지 않더라도, 그곳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이, 모두의 일상이 회복되기를, 운동장이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소란하기를 차분히 기다린다. 그리고 그때까지 우리가 이 시간을 잘 버텨내기를, 너의 안녕이 나의 안녕이라고 생각하며 서로에게 힘을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종류의 따뜻함이었다. 



    격리의 시작과 끝에 아주 잠시나마 바깥 공기를 맛볼 일이 있었는데, 바로 검사를 위해 보건소에 가는 날이었다. 가는 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어서, 엄마가 뒷좌석을 비닐로 두른 차를 끌고 나를 데리러 왔다. 성동구보건소 앞에 내려서 진료소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골목길의, 특별할 것 없는 5월의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게 느껴지던지. 한국의 봄은 덴마크보다 빨리 여물었고, 그 초록 사이로 부서지는 햇빛의 파편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따뜻함과 아름다움은 늘 주위에 있다. 이를 잊지 않는다면 자가격리 동안 얻은 가장 소중한 생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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