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단골식당 아주머니의 추억

상춘재

by 여섯

출장길에 오랜만에 찾은 단골식당은 여전히 붐비고 있었다. 연초 가족과 함께 찾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젊은 사장님이 편한 옷차림에 머리띠를 하고 그 분주한 홀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주문을 받고 테이블을 살피고 계산을 했다. 연초에는 말끔한 셔츠 차림에 명품 신발을 신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2년 2월, 오랜 시간 강도 높은 업무로 심신은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아내와 네 살배기 아들의 일상도 나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기만 하던 그때, 제주도로 전보발령이 났다.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었다. 마침 제주도는 회사의 지역별 거점 중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내는 곳이었다. 이사를 하고는 바로 제주에 스며들었다. 동료들과 마시는 노지 소주 빨간 거의 매력에, 육지서는 먹어본 적이 없는 한치 물회, 객주리 조림, 멜젓, 몸국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사리 장마의 끝자락이었나, 며칠 만에 해가 나자 선배는 제대병원 앞에 가면 아주 건강한 식당이 있다며 차를 향했다. 작은 뒷방 좌식 테이블에는 청와대에서 3명의 대통령을 모셨다는 주인장의 멍게비빔밥과 산야초 장아찌를 비롯한 채소 위주의 찬, 비린 맛은 찾아볼 수 없는 추탕 뚝배기가 나왔다. 밥이며 국이며 반찬까지 싹싹 비우고는 그 주말에 바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다시 찾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아들 녀석을 아주 예뻐해 주셨다. 할머니가 손주 대하듯이 아들을 대해 주시니 우리 부부는 ‘울 아들이 서울서도 먹어주더니 제주에서도 통한다’며 즐거워했다. 몇 차례 식당을 드나들며 얼굴이 익은 후에, 아주머니는 아들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아들이 딱 저만할 때 생각이 많이 난다며, 지금은 사춘기여서 엄마 말도 잘 안 들어 서운하고 걱정된다, 옛날에 쬐끄만 아가였을 때 이런 일도 있었고 저런 일도 있었다며 아예 식탁에 함께 앉았던 기억도 있다. 3년간 우리 아이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주머니네 아들은 거의 사촌지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시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서도 1년에 서너 번은 제주를 찾았고,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비빔밥만 시켜도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었고, 영업시간이 지났어도 전화를 하면 불을 켜고 기다려주시던 아주머니 덕에 맛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가게가 선흘로 이전을 하고, 폭증하는 제주콘텐츠 속에서 맛집에 한두 시간 기다림은 기본인 시절이 되었으나, 우리는 눈인사 만으로도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동안 아들은 군대를 다녀왔고, 언젠가 아주머니는 우리 가족 앞에 아들을 데려와서는 잘 기억하라고 단속까지 하셨다.

아주머니는 벌써부터 손목에 여러 장의 파스를 붙이고 일을 하셨다. 홀서빙부터 주문과 계산까지 도맡았지만 식당을 찾았을 때 한 번도 얼굴을 못 뵌 적은 없었다. 다시 제대병원 앞 그 자리에 건물을 올리고 문을 연 후 갔더니 아주머니는 안 계시고 아들이 대신 식당 일을 돌보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이 ‘여사장님이 아프시대’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아들에겐 묻지도 못했다.

새로운 세대답게 아들은 포탈에 식당의 정보를 자주 올렸는데, 작년 6월엔 어머니 건강이 안 좋으셔서 며칠 문을 닫는다고 했고, 11월 말에는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과 함께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맛있는 음식으로 손님들을 모시겠다는 다짐의 글이 올랐다. 우리 세 식구는 육지 멀리 있었으나, 아주머니의 명복을 빌며 지난 시간을 추억했다.

그리고, 올 초 식당을 다시 찾았을 때 어머니의 뒤를 이어 깔끔한 옷차림으로 식당을 지키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음식은 변함이 없었고 손님은 여전히 붐비고 있었는데, 문득 우리 가족이 다시 오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까닭이 아주머니가 안 계셔서만은 아니었다. 9월 출장을 준비하면서 후배들에게 나만의 제주 맛집지도에 있는 건강한 식당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도 한동안 못 갈 줄 알았는데, 출장 마치고 공항 가기 전 점심에 들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른 점심으로 식당에 온 손님들이 물결처럼 빠져나가자 잠깐의 짬이 생긴 것 같았다. 힘들게 일하는데 휴식시간을 뺏어 미안했으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났고, 아프시다는 소식을 보고 진심으로 회복하시길 빌었는데 안타깝다고 위로했다.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아들도 생각이 났는지 ‘어머니께서 누구네 한번 안 오나, 보고 싶다’라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고 했을 때는 눈앞이 뜨거워졌다.

택시를 부르고 문을 나섰는데 아들이 따라 나와서는 명함을 주면서, 다음에 가족이 여행 왔을 때 전화 주시면 편하게 드실 수 있게 자리를 준비해주겠다고 한다.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아주머니의 팔에 붙였던 여러 장의 파스와 아들의 옷차림 변화와 머리띠가 겹쳐 생각이 났고, 꼬맹이 손님의 얼굴에서 이제는 훌쩍 자란 아들과의 옛 추억을 끄집어내 보려 애쓰던 ‘엄마’의 눈빛도 기억이 났다.

다음 가족여행 때는 민폐를 피하기 위해 손님이 많지 않을 시간에 찾아가, 아들을 형님에게 인사시키고 새로 메뉴에 추가된 솥밥을 먹어보려 한다.


* 최제이, Sangctuary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