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쉬는 시간마다 소년은 오래된 교사의 뒷문을 열고 나간다. 쉬는 시간이건 수업이 모두 파한 뒤건 그곳엔 아무도 없다. 소년은 거기에 나 만의 해시계를 만들어 놓는다. 땅을 파고 기다란 막대기를 꽂고, 빗물이 튀지 않게 깔아 둔 자갈을 모아 튼튼히 세웠다. 매 수업 시간이 끝날 때마다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그림자의 끝에 몇 시 인지 적어놓았다. 비가 오거나 먹구름에 흐린 날씨만 아니면 이제 언제든 시계가 없어도 시간을 알 수 있다. 그래봐야 쉬는 시간은 변함이 없어서 언제나 같은 시간이었지만, 소년은 항상 그곳에서 그림자의 끝을 뚫어지게 보면서 종소리가 들릴 때까지 일어서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 나가보면 막대기는 넘어져 있어서 다시 세웠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새 지구의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년은 쉬는 시간마다 나와선 다시 선을 그어 절기에 맞는 새 시간을 표시했다.
어느 날 학교에 야구부가 생긴다고 했다. 부원을 뽑는 안내문이 붙었다. 눈길이 갔다. 축구부원이었지만 소년체전에 나가는 강원도 대표를 뽑는 군 예선전에서 떨어져서 운동을 안 나간 지 한참 되었던 터다. 안내문 아랫 자락에 보니 글러브, 유니폼, 신발은 모두 개별 부담이란다. 엄마 얼굴이 생각났다. 새벽 운동 힘들어한다고 예선전에서 지기를 빌었다고, 시합이 끝나고 후에 엄마는 말했다. 몇 번을 읽어보다가 해시계가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지막 시간을 표시한 선에서 그림자는 이미 많이 멀어져 있었다.
주말에 동네로 이삿짐 차가 들어왔다.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보통은 구경을 가서 인사도 하고 새 친구를 탐색하기도 했으나 선생님 댁이라니 아무도 선뜻 나서질 못하고 멀리서 쳐다보기만 한다. 그 집 선생님은 풍채가 좋았고 해태타이거즈 김응룡 감독을 닮았는데 성은 박 씨였다. 운동장에서 야구부 연습하는 걸 구경하다 보면 굵은 목소리로 누구누구를 부르면서 야구공을 머리 위로 던져놓고는 기다란 배트로 정확하게 수비수 앞으로 쳐서 날렸다. 야구부에는 축구부 했던 애들이 거의 다 들어갔다. 누나는 야구부 애들이 입고 다니는 야구복이 멋져 보인다며 우리 막내도 시킬 걸 그랬단다.
친구들은 선생님 댁에도 갔다 왔다고 했다. 춘천서 사 오신 야구 장비를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보내서 갔다가 사모님께 간식을 얻어오기도 했다. 어느 날엔가도 심부름을 갔는데 그 집 여자애가 발가벗고 목욕하는 걸 보기도 했다고 키득거렸다. 우리보다 두 학년 아래라고 했다. 야구부가 생기고 프로야구도 출범하면서 학교에는 야구가 대유행이었다. 점심시간엔 운동장을 쪼개서 반 대항 시합도 했고, 주말엔 옆동네랑 시합을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유행은 사그라졌다. 글러브가 있는 애들이나 어울릴 수 있었고 야구부 애들은 이제 같이 놀아주지 않았다.
중학교에 올라갔고 이제는 해시계도 만들지 않았다. 친구들도 이제 야구는 관심이 없었고 주말에 서울에 가면 무슨 책을 사 올 수 있다며 돈을 주면 사다 주기도 했다. 세운상가 뒷골목 아저씨들에게서 산다고 했는데 그 골목 초입에는 항상 깡패들이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중학교는 이상하게 거의 기억이 없다. 입대 전 휴학하고 집에 내려온 형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무슨 악보 복사하여 묶은 책자를 들고 가서 노래를 불렀는데 아침이슬이나 흑인영가에 가사를 붙인 슬픈 가락이었다. 밤에는 내 시험준비를 도와줬다. 덕분에 전교 5등 안에 들어 선생님들 눈에 들었지만 형이 군대 가자 마자 성적은 점점 내려갔다. 그 이후는 학교나 집에서, 동네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이 중학교 3년이 지나갔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 그 애가 이사 온 지 5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집에 가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