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
고교 시절, 야자를 하고 나면 괜히 읍내에 있는 ‘서울서점’엘 들렀다. 읍내라고 해봐야 시장 입구와 닿아있는 시외버스터미널부터 헌병대 사거리까지 왕복 2차선의 도로와 상가가 다였지만, 서울서점 앞에는 학교에서 묻혀 온 무거운 공기를 집에 가기 전에 털어내려는 애들, 멀리 떨어져 있는 남고 여고 만남의 기회, 민통선 안으로 학생을 실어 나르는 시내버스 막차 등이 뒤섞여 있었기에 제법 붐비기까지 했다.
20여분 떠들고 사람 구경하다가 헤어지면 바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시장에 사는 애들 말고는 다들 큰길에 닿아있는 골목길로 사라져들 갔다. 우리 동네는 나 혼자였기에 15분은 걸어갔는데 중간에 정미소 담장 옆으로 100여 미터를 걸어야 했다. 시골이었지만 동네 골목이 어두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유독 정미소 뒷길만 가로등이 없고 칠흑같이 깜깜했다.
처음엔 사람이 두려웠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을라치면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좁은 길이어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소위 일진이나 깡패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그 시간에 외지고 한적한 그 골목에 있을 까닭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그렇다고 동물이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대상이 흐릿해졌다. 그렇지만 분명히 두려움은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한 의문이 커지기 시작했다. 도서관 만들 형편이 안 되는 촌이었고 인터넷은 개념조차 없던 세상이었다.
일단 나를 해칠 수 있는 것들부터 따져봤더니 대부분은 피할 수 있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깡패나 질병은 그들의 영향반경을 피해 가면 됐다. 설사 된통 당했다 하더라도 상처는 치료하면 되고, 웬만한 질병은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나 젊은 면역력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거대한 하얀 공이 짓눌러 말을 꺼내기도 힘들게 하던 꿈은 지금도 때때로 반복되지만 깨어나면 그만이다. 식은땀을 흘렸을 지 언정 그게 아침 이후의 일상에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다. 둥근 모양인지 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물체와 함께 있던 주변의 상황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이 때론 안타깝기는 했지만 현실에서 재현될 일은 없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여 주변인들이 아무도 내가 다른 ‘나‘라는 것을 모르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한 적도 있다. 한참 지나 그것이 평형이론 또는 멀티유니버스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실제로 나에게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히말라야의 요기가 마음을 소란스럽게 하던 집착의 대상을 하나씩 지워가듯이, 두려운 것이지만 내 존재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하는 것들을 생각해 내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안개는 걷혔지만 더 나아갈 수는 없었다. 그 끝에 죽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 GPT가 그려낸 정미소 뒷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