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

[짧은 이야기 : 소설 2분 남짓]

by 손글송글


온몸이 아픈가? 아닌가? 뒷목이 뜨거운 건 알겠다.


누구보다 잘난 성공을 바란 적이 없다.

살다 보니 밑바닥도 치고 온몸에 힘을 주어 다시 일어섰다. 내겐 이쁜 딸이 있으니까.


이혼은 나에게 무너진 세상이었다. 아니, 이혼보다 남편의 외도와 혼외자, 이혼을 요구하며 폭력을 쓰던 남편이 내 무너진 세상이었다.


신용불량자가 되도록 일이란 건 질기도록 안 풀렸다.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빚을 갚고 친지들 친구들에게 또 빚을 내어 시골로 내려왔다. 무연고 시골에서의 재개는 희망이라는 무거운 목걸이를 걸고 뛰어다니는 고됨, 그야말로 가진 건 몸뿐인 생활이었다.

우리는 쪽파수확, 양파수확, 매실, 단감... 닥치는 대로 주어지는 논밭의 일감을 다 받아 가며 열심히도 웃으며 일했다. 시골에 온 젊은 부부에게 정을 주신 어르신들은 농사에서 손을 놓거나 놓는 중이었다. 어르신들의 자식들은 도시에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내려오긴 일렀던 건지, 올 생각이 없었는지 우리가 농사일을 계속 늘릴 수 있었다.


차근차근 모아 빚도 갚아가며 중고트랙터부터 장만했다. 본격적인 논농사일에 투입되기 시작한 거다. 1년 뒤 이양기와 콤바인을 8년 할부 저리로 새 제품을 샀다. 봄 벼파종부터 늦가을 벼수확, 거기에 벼판매는 쌀값의 높고 낮음은 둘째로 재미있었다. 돈이 들어왔다. 농가주택을 싼 값에 사 쓰기 편하게 고치고, 해마다 매매로 나오는 논을 사는 일은 콧노래가 나는 기막힌 재미였다. 젊은 사람이 귀했던 농촌으로 귀농한 것이 복권당첨 같은 결과였다. 10여 년이 고되지만 즐겁기만 했다.

오십 줄에 들어가 옷도, 차도 번듯하게 누리며 살게 되니... 이 사단이 생긴 거다.


혼외자, 남편의 아들. 내가 키우려 했다. 비바람 다 거친 우리니까 남편의 바람, 죽을죄 지었다 용서를 빌면 내 업보구나 하려 했다. 근데, 무릎 꿇고 비는 건 오히려 나였다. 기가차 말도 안 나올 일... 뭐가 잘못됐지? 웃으며 살아보는 인생이 이리 어렵나?


결국, 근처 소도시에 아파트를 얻어 나왔다. 쫓겨났다. 농부로서의 꿈을 키운 삶터에서. 이제 와서 뭘 어떻게 살라고...


우울했다. 남편도 죽이고 싶도록 밉고, 미워서 몸서리쳐지는 건 나였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며 뭐든 해보려 했다. 우리 성은이가 있으니까. 우리 성은이... 성년이 되어 도시로 나가있던 딸은 제아빠를 용서하지 않았다. 울부짖는 아이를 다독여야 했다. 잘못은 내가 저지르지 않았어도 내가 설득시켜야 했다. 정작 내가 나를 설득시키지 못했나 보다.


베란다 창을 활짝 열었다. 겨울밤공기는 살을 에일 듯 요란하게 불었지만 소주 반 병이 추위를 비껴가게 했다. 1초? 몸은 자유로웠다. 근데 머릿속이 번쩍였다.


내 딸, 내 딸 성은이!

잊었다. 어떻게 내가 잊을 수가 있지?

행인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도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 엠블런스 소리도 안 들리는데...


살 수 있나?

아직 살아있긴 한 걸까?


미안해... 엄마가 성은이한테...

나... 나를 위한 작은 노력도 못했네... 미안해..허어어어엉...흐흐..아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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