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 소설 2분 남짓]
진희의 얼굴은 놀라지도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은 이상한 얼굴을 보였다.
곁에 있던 정아가 오히려 더 놀라 어쩔 줄 몰라 발을 한 번씩 구르며 뭐야 뭐야 하는 소리를 연신 중얼거렸다.
"괜찮아, 정아야. 가자."
"어? 어, 그래 가자, 별별 사람이 다 있다, 그렇지?"
불과 1분 남짓의 시간이 지난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일이었다.
진희와 정아는 오래간만에 만나 점심도 맛나게 먹고 근처 유명하다는 디저트집으로 가는 길이였다. 앞서 가던 어떤 젊은 남자가 뒤를 돌아 지긋이 바라보더니 다가와서는 뻔한 얘기를 하며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저 웃으며 사양하는데 집요함이 느껴져 언짢은 기색을 보이며 흘깃 노려본 게 다였다.
"넌 어쩜 하나도 안 변하냐? 내가 너를 찾아오는 동안 매번... 그 노려보는 눈빛이 날 힘들게 해. 잘 가라. 나쁜 년! “
그러더니 붙잡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달아났다.
진희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근데, 너 그 남자 본 적 있던 사람이었어?'
"아니, 처음 봤어."
"와, 어떻게 번호 안 알려준다고 황당하게 하고 가지? 안 알려준 게 얼마나 다행이야. 사이코일 거야. 잊어, 잊어. 우리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좋은 얘기나 하자."
각자 학업과 알바 한 이야기, 앞으로 할 일들을 늘어놓다 보니 시간은 저녁이 다 되어 갔다.
"그동안 못 만나 답답했는데 얼굴 봐서 좋았어. 잘 들어가고, 또 보자."
"그래, 어서 가, 알바 늦으면 안 되잖아. 연락해. 안녕."
"응, 잘 가, 정아야."
사실, 진희는 저녁 알바는 없었다. 그냥 기분이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알바를 핑계로 점심에 만나기로 했었다. 근데 더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낮에 있던 일이 자꾸 떠올랐다. 그 남자 분명히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근데 그 말이 이상하리 만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도대체 '노려보는 눈빛이 날 힘들게 해' 이 말을 또 듣게 되는 건지...
5년 전, 고 2 때였다. 진희와 같이 방송반을 하던 다른 반 아이가 있었다. 여드름 자국이 있던, 수줍음은 많아도 음향기기 다루는게 좋아서 방송반에 지원했던 K다. 음악도 많이 알아 점심시간 20분의 음악코너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호응이 좋았다. 단, 아나운서로 마주해야 하는 진희는 더듬거리는 K의 말투가 싫어 몇 차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노려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노려보면 자기가 힘들다며 수줍음은 온데간데없이 소리 지르고 방송반을 나가버렸다. 진희는 그때도 욕을 들은 것 같았다.
진희에게 K는 얼굴도 기억 안 나는데 그 일은 또렷이 기억난 것도 이상했다.
길 건너에서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심장이 또 두근대기 시작했다. 어째 매번 볼 때마다 두근거림은 더 심해지는지 이 정도면 병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다 피식 웃었다.
우선 길을 건너고 뒤쫓는 게 아닌 것처럼 앞질러 갔다.
어디로 가는지는 다 아니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뒤돌아 진희를 봤다.
어제, 정확히는 지난번과는 다른 말을 해야 했다.
“제가 아는 분 같아요. 혹시 이름 알 수 있어요?”
“저 남자친구 있어요. 죄송해요.”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저도 학생이에요. 곧 복학하죠.”
“제가 왜 상관없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각자 갈 길 가죠, 네?”
또 실패다. 내 이름을 먼저 말해도, 전화번호 먼저 물어도, 같은 고등학교 얘길 해도 항상 차가운 눈빛이다.
내 얼굴도 기억 못 하고 이름도 기억 못 하는 이 아이가 좋아 난 오늘을 반복하는 걸까?
내일은 아니, 다음 번은 무슨 말을 하지?
전화번호를 알아내면 내일은 오겠지?
그게 내 퀘스트니까?
근데, 어떻게 이 게임은 매일 한 번만 게임할 수 있게 만들었냐? 내 기억 속 인물로 캐릭터 만들어하는 가상게임! 프로그래밍이 너무 자연스럽게 구동되어 이 게임은 정말 실제인 것 같아 좋긴 한데,... 크크, 전화번호 못 알아내고 나 늙는 거 아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