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 소설 2분 남짓]
차창 밖의 빠르게 지나는 겨울 풍경은 별다른 변화 없는 스틸샷 같았다.
피곤함에 두 눈도 무겁고 머릿속이 어지러워 잠을 청해도 진경은 잠이 들지 않았다. 기차 안의 따뜻한 공기와 빈좌석들이 있어 이대로 여행이라면 하고 생각되었지만 진경은 머리를 짧게 흔들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잠도 못 잘바에는 우선 해야 할 일을 대충이라도 생각해 놓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사 전에 정리해야 하니까.
13년 전 진경은 학업과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났지만 늘 집에 가면 신이 났었다. 고등학교까지의 추억은 나이 서른둘에도 집골목을 들어서며 추억만이 아닌 그 시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30대의 추억이 생기겠네...”
힘없이 나온 혼잣말에 흠칫 놀랐으나 피식 웃었다. 옆자리가 비었으니 괜찮다 싶었다.
지난봄, 운동 중 갑자기 찾아온 심근경색으로 혼자셨던 아버지를 여의고 집은 비어있었다. 진경과 여동생은 빈집으로 그냥 두고 가끔 가자는 약속만 했다.
진경은 상을 치르고 일상으로 복귀해야 했고 동생은 다시 일본으로 떠났다. 그렇게 살아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진경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부재와 혈육이 타국에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작은 구멍을 내었는지 일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고 10년을 꾸준히 일하고도 높지 않은 연봉은 박차고 나올 충분한 명분 같았다.
고향집으로 가게 되었다는 얘기에 집주인이 금방 방은 나갈 거니 걱정 말라며 먼저 전세금을 돌려준다고 한건 잘한 결정이라고 누군가 진경을 격려해 주는 것 같았다.
고향집으로 돌아간다고 특별히 할 일은 없다. 우선 진경의 아버지가 쓰던 물건 중 추억으로 남길만한 것을 제외하고 모두 버리게 될 거라는 생각정도였다. 아버지의 방만 좀 깨끗이 해서 동생가족이 다니러 오면 묵게 할 생각이 진경이 그린 큰 그림 정도였다.
진경은 고향집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까맣게 잊고 있던 짝사랑했던 동창이 떠오르는 일이 잦았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부친이 하는 조명가게를 돕고 있다는 얘기를 친구로부터 듣고는 궁금해졌다. 잘 살고 있을 테니 시내라도 가면 만나질는지 혼자 생각하고 혼자 웃음도 나곤 했다. 지금도 혼자 피식 웃었다.
“저, 혹시, 진경이?”
“어? 우용아! “
진경은 기차 안 같은 열 끝에 앉은 남자가 자꾸 바라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었다. 근데 방금 피식거리며 생각한 동창이라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우영은 빈자리를 눈으로 보며 앉아도 되는지 물었고 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인 것 같았어. 반갑다. 너 다시 온다며? “
“어, 그렇게 됐네. 허허, 잘 지내지?”
“그럼, 난 건물주 아들이잖아. 2층 삼십 년 된 거지만.
언제 내려오고? “
“ 집 정리하고 손 볼 데 손보면 바로, 내년 초는 돼야 할 거야.”
“ 아마 전기는 다시 봐야 할 거야. 내가 가서 봐줄게.
전화번호 알려줄 수 있지? “
우용은 전화기를 내밀었고 진경은 번호를 눌러주었다.
짧은 대화가 이어지며 진경은 차창밖을 봤다.
멀리 공장이나 농가의 굴뚝에서 연기도 오르고 차들의 달리는 모습도 활기차보였다.
진경은 빠르게 뛰는 심장이 지금껏 있던 마음의 구멍을 메우는 것 같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