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3남 1녀 중 첫째 셨다. 나는 집안에 장손이었는데, 두 분의 작은 아버지 가정과 막내셨던 고모의 가정 아이들이 모두 모이면 무려 아홉이었다.
동생들과 나이 차이가 조금은 있었기에 내가 큰 형으로서 놀아주곤 했다. 그런데 나도 체력이라는 것이 있는지라, 쉬고 싶을 때도 당연히 있었다.
그럴 때 가장 즐겨 하던 놀이는 병원놀이와 미용실 놀이가 최고였다.
의사 놀이는 동생들에게 의사 1, 의사 2, 의사 3, 간호사 1, 간호사 2 등의 역할을 주고 나는 환자가 되어 가만히 누워있으면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사와 간호사들이 때로 몰려들어 팔과 다리, 몸통을 주무르고 별의별 수술을 다 했으니 나는 얼마나 위독한 환자를 연기한 것이었을까.
적당히 누워서 '으윽 선생님 오른쪽 팔이…'라고 말하면 열심히 오른쪽 팔을 주물러 주었던 동생들 덕분에 팔, 다리 안마를 받으면서 편하게 누워서 쉴 수 있었다.
미용실 놀이도 나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누가 머리를 만져주면 그렇게 잠이 솔솔 왔던 나였기 때문이다.
먼저 손가락으로 가위질을 하는 시늉을 내면서 입으로는 '사각사각' 소리를 내어 머리를 잘라주고 그대로 샴푸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동생들에게 시범으로 보여주고 내가 손님이 되어 베개를 베고 누웠다.
어느새 나는 누워서 수술도 받으면서 팔과 다리에는 재활 치료도 받고, 머리는 이발을 하며 샴푸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미용실 놀이가 영영 사라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었으니…
매번 하는 놀이에 동생들도 도파민이 떨어졌던 것일지 어디서 조그만한 아이들용 가위를 들고와서 내 머리를 잘라준 것이다.
누워서 잠이 솔솔 오는 기분을 누리다가 실제로 느껴지는 서걱하는 소리에 놀라서 깨어났다.
진짜 머리카락을 잘라봤다는 새로운 경험에 동생들의 눈이 반짝 거렸으나 곧 이러면 안된다는 내 말에 다들 놀라 울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미용실 놀이는 사라졌다. 아이들은 뭔가를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들이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빠가 면도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나도 면도를 해보고 싶었던 나머지, 수염이 없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눈썹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오른쪽 눈섭을 다 밀어버려서 한동안 얼마나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는지…)
이제는 동생들이 내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가 되었다. 놀아주다가 힘들면 누워서 놀아주기도 하지만, 누워서 마음 편히 눈을 감고 있다가도 아들이 배 위로 몇번 뛰어드는 것을 경험하자 왠지 조용하면 덜컥 겁이나서 눈을 뜨게 되는 요즘이다.
시간은 지나도 기억은 남는다.
이제는 나와 친척 동생들 모두 어른이 되었지만
옛 이야기에 다들 즐겁게 웃고 떠들게 되는
그런 기억들 말이다.
좋은 기억을 오래도록 만들어 가면
그 기억이 쌓이는 만큼 더 웃을 수 있겠지,
내 아이들이 많이 웃을 수 있도록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