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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연휴는 안녕한가요

예능 PD 입봉일기 #10

by 희제


링크드인에 업로드 중인 예능 피디 입봉일기를 브런치에도 옮겨볼까 합니다.

대단한 성과가 나서 올리는 입봉일기면 좋겠지만 아직 과정 중에 있어요.

뿌듯한 감정 49, 두려운 감정 51 로 분투하는 햇병아리 리더의 생각 흐름을 보고

공감하거나 위로받을 팀장님들, 대표님들, 그리고 직장인 분들이 브런치에도 많을 것 같아서요.

*** 사진은 AI 로 작업합니다.




추석은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힘겹고도 길었던 첫 번째 시사를 마친 기념으로요. 연휴에 쭉 일해야 나중에 몰아치지 않을 걸 알지만, 명절을 명절답게 지내야 또 힘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간과한 점이 있습니다. 몸은 쉬는데 머리가 휴식을 거부하네요. 오랜만에 부모님과 나들이도 다녀오고, 일 년 만에 할머니도 찾아뵙고, 집밥도 먹으며 잠도 충분히 잤는데, 꿈에서는 계속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무 때만큼은 푹 쉬었던 것 같은데. 설거지를 하면서도, 세수를 하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온갖 일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웁니다. 진짜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영화를 틀었습니다. 예능을 보면 또 일이 생각날 것 같아서 예전에 보았던 영화들을 연이어 봤어요. 트루먼 쇼, 위대한 쇼맨, 타이타닉을 차례로 보고 나니 드디어 일 아닌 다른 꿈을 꿉니다. 편집하던 꿈이 배가 침몰하는 꿈으로 바뀌었네요.


이제 괜찮겠지 싶어서 언제나처럼 영화 후기를 끄적였습니다. 트루먼 쇼. 시대를 앞서간 관찰 예능이 아닌가 싶다. 끝없이 재생산되는 연프들, 계급을 나누어 두뇌와 체력을 테스트하는 시리즈들, 이들의 시작엔 트루먼 쇼가 있었겠지. 위대한 쇼맨. 역시 전기만 한 것이 없다. 인물의 꿈, 도전, 추락과 좌절, 주변의 도움, 초심의 인지, 그리고 재기와 은퇴까지. 사람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으니 편집 때 유의미한 캐릭터를 많이 만들수록 좋겠다. 타이타닉. 대서사시인 줄 알았는데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의 이야기였구나. 무작정 펼쳐놓고 많이 찍는다고 다가 아닌 건 예능도 똑같다 …… 네 결국 또 일 생각으로 돌아가네요. 이럴 바엔 차라리 출근하는 게 낫겠습니다.


건강과 가족이 일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업에 깊이 빠져드는 경험도 나쁘지만은 않아요. 잠식되어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건강하게 잘 밸런싱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요. 연휴 중에 링크드인에 들어와 이 글을 보시는 분이라면 저처럼 일 생각을 가득 하고 계신 분이겠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할 일이 있다는 건 행복이라고 하니, 우리는 지금 모두 행복한 거라 믿어보면 좋겠습니다.


+


타이타닉에 대한 생각 한 조각 더. 처음 볼 때에는 디카프리오의 비주얼만 눈에 들어왔는데, 이번엔 케이트 윈슬렛이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살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내던지며 도슨을 향해 달리는 로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렇게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것이 제겐 어떤 것들일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때로는 나이가 들어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는 모양이에요. 90년대 영화의 낭만을 다시 찾아보니 참 좋았더라는 이야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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