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피디 방학일기 #4
피디를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교보문고를 찾았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유튜브를 지금처럼 쓰지 않던 때거든요. 깊은 정보를 얻으려면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교보문고에 가면, 별 것 하지 않아도 마음이 착 가라앉아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방송 코너 바닥에 앉아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아 전공이 신방이 아니어도 괜찮구나, 조연출은 두껍고 주머니 많은 패딩을 입어야 하는구나, 편집실이라는 곳엔 침대가 있나보다… 마냥 재밌어하며 긴장을 풀었더랬습니다.
스트레칭 삼아 책장 사이를 걸어 다니면 또 그것대로 기분전환이 됐어요.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책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다독가는 아니지만,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있기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과 지식 같은 것들이 마음을 채워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발길을 딱 끊은 것은 피디가 된 직후 같아요. 시간과 에너지가 없기도 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과 설렘이 사라졌던 것이 가장 큰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약 10년 만에 찾은 교보문고. 광화문 역의 익숙한 계단을 올라 문으로 진입하는데, 순간 이상한 기분이 몰려왔습니다. 즐겨 듣던 음악을 들으면 과거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아시나요? 마치 10년 전의 제가 보이는 것 같아서, 정말이지 기분이 묘했습니다. 복잡한 생각 없이 그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이곳을 잊고 산 시간 동안 저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필 오늘, 이곳을 다시 찾게 된 것일까요.
미스터 비스트의 10년 전 영상이 화제입니다. 구독자 100만을 모으고 싶다며 설렘 가득한 말들을 담아둔 2015년 10월 4일 자 영상. 10년 후 목표를 예약해 둔 채 유튜버로 계속 존재했던 미스터 비스트와 달리, 저는 피디가 되는 방법을 찾은 후 더 이상 교보문고에 가지 않았더랬습니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에 탑승했지만, 마냥 뿌듯하지만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겠죠.
다행인 건,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 타임머신이 조금 혼란스러웠으니 두 번째 타임머신에 탑승했을 때는 미스터 비스트만큼 뿌듯해야겠지요? 2035년 10월을 위한 타임머신은 좀 더 잘 지켜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