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피디 방학일기 #9
저는 인천 사람입니다. 본가는 서울이지만 굳이 인천에 살며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어요. 많이들 이유를 궁금해하시는데요,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예전부터 인천이 좋았어요. 고등학교 때 서울, 경기, 인천이 모여서 체육대회를 하면, 꼭 인천 사람들이 가장 여유롭고 넉넉했습니다. 이기고 있어도 응원하고 지고 있어도 응원하고. 다른 팀들이 경기해도 응원해 주고요. 인천으로 원정 갔을 때엔 특히 더 좋았습니다.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운동장엔 잔디가 푸르게 깔려 있었거든요. 서울과 적당히 가까우면서도 여유로운 느낌. 그때부터 인천에 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인천 중에서도 서울과 무척 가깝지만, 풍경만큼은 여느 시골 못지않아요. 근처로 조금만 걸어 나가면 황금 논과 배추밭,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있거든요. 연휴 중 가장 날씨가 좋았던 하루, 산책을 나가서 본 풍경은 작년에 시골 마을을 촬영하며 보았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벼를 베고 배추를 다듬고 고추를 말리고. 단층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어서, 아무리 넓어도 마을 끝에서 끝이 다 보이는 그런 마을이 코앞에 있다는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 굳이 전라남도 땅끝까지 촬영 갈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 )
그렇지만 도시를 싫어하는 건 또 아닙니다. 도시적인 정갈한 깔끔함, 너무 좋죠. 얼마 전 도쿄를 방문했을 때 느꼈습니다. 대여섯 번쯤 갔던 곳이라 다시는 도쿄 안 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작년에 했었는데. 시부야의 빠른 템포, 긴자의 세련된 여유, 아키하바라의 넘치는 활기, 오모테산도의 고즈넉한 산책, 오다이바의 탁 트인 느낌까지,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주는 대도시의 맛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도 환기하고 싶을 땐 도쿄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이쯤 되면 적당히 섞은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도 그렇잖아요. 롱폼이 미드폼 되고 숏폼까지 되면서, 이제는 아무도 하나만 보지 않아요. 넷플릭스 시리즈를 정주행 하다가도 유튜브 쇼츠를 스크롤하고, 어떤 날은 영화관에서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길이가 다른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섞어 즐깁니다. 영화는 이제 죽었다느니, 숏드라마의 시대라느니, 여러 말이 많지만 다채로운 리듬감을 사람들은 점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삶의 형태나 존재하는 곳의 템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변화를 주어야 재밌잖아요.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것처럼, 아침은 도시 브런치를 먹고 저녁은 시골 감자탕을 먹으며 삶을 리듬감 있게 즐겨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