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상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제 Jul 31. 2021

서울의 30대 & 상하이의 30대

두도막 컨텍스트 #2 적어도 기대할 수 있는 나이



아 Analog 문자답 : 동료의 이직, 동생의 취직

각자의 바다



퇴직 인사 드립니다.


습관적으로 회사 메일에 로그인을 했다가 발견한 메일 한 통. 종종 업무 전화를 주고받던 옆 부서 동료의 인사였다. 입사 시기가 비슷한 데다 송년회에서 같이 재롱떨던 인연도 있어서 종종 커피 대화를 나누었는데, 언제나 다음 스텝을 위해 노력 중인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게임을 좋아해서 회사에 들어왔지만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꼭 제 길을 찾아갈 거라 했던 분. 혼자 만들어 보았다며 보여 준 귀여운 게임 하나를 마주한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이 분은 정말 제자리를 찾아갈 수밖에 없겠구나. 바로 이런 사람들이 찾아가는 거구나. 다른 부서로 전배 했을 때에도 내적 박수를 쳤지만 이번엔 그보다 훨씬 큰 축하가 저절로 나왔다. 느낌표를 잔뜩 붙여 보낸 나의 카톡에 대한 답장으로, 그녀는 출근 이틀째의 감상을 보내주었다.


아직 게임 분야로 풍덩 들어가진 못했지만 스타트업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 기대가 된다고. 대표님 마인드도 좋고 회사도 적당히 성장해 있어서 앞으로 재밌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친정집 같은 회사엔 곧 놀러 갈 테니 꼭 같이 맛있는 밥을 먹자고.


생각해 보면 정치외교라는 전공으로 음악방송 일을 하다가 모바일 플랫폼 업계로 이직하는 과정이 쉬웠을 리 없다. 게임은 그녀에게 오직 취미일 뿐인데. 그냥 좋아할 뿐인데. 그것이 이렇게까지 커다란 동력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멀지 않은 미래에 그토록 바라던 게임 회사로 옮겼다는 소식이 들려올 것만 같다.




노를 아무리 저어도 헛물질만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습관적으로 노를 젓고는 있는데 배가 앞으로 가는 건지 뒤로 가는 건지, 이 방향이 맞긴 한 건지 알 수 없을 때도 많다. 심지어 사방에서 폭풍이 몰아치고 비가 내리면 방향이고 뭐고 노만 붙든 채 엉엉 울게 되는 법인데. 그 와중에도 방향을 잡아 결국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디로든 가고 있기만 하다면 좋겠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이 가장 두려운 망망대해.




그래도 회사라는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기본 세팅이라면 그나마 잘 닦인 포장도로에 있는 케이스다. 기본적으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사람들, 소위 말하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꽤나 동떨어진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흙길을 포장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을 써서 세상을 즐겁게 하고픈 동생은 3년 전쯤 흙길 포장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시인으로 등단한 적이 있어 현실을 빨리 파악한 것인지도 모른다. 꿈을 접을 수는 없으니 최소한의 벌이는 해야 하는데. 프리터로 사는 것보다는 본인에게 의미 있는 일로 돈을 버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봉사활동과 NGO를 사랑하던 동생이 선택한 건 애석하게도 공무원이었다.
그것이 첫 번째 꿈이어도 결코 쉽지 않은 별 따기.


내가 만약 가족이 아니었다면 온전히 너의 꿈에 집중하라고 격려할 수 있었을까. 호기롭게 한 번쯤은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가족이며 동시에 안정형인 인간이어서, 수험 생활에 지친 나머지 그냥 글만 쓰면 안 되냐는 그를 붙잡은 채 길고 긴 설교를 늘어놓곤 했다.


맛있는 술은 사줘가며 잔소리했음을 증명하는 중입니다.
일본식 선술집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제가 먹고 싶어서 선택한 건 결코 아닙니다.


지난달. 별안간 동생은 NGO 경력을 살려 회사를 찾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100개쯤 썼다고 했나. 연이어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글 쓰는 데에 도움 될만한 콘텐츠 업계로, 같이 성장하고 싶은 작고 강한 회사로.




이런 사람은 바다가 두 개인 것이다. 한 공간에서 헤매기도 벅찬 세상. 하나의 바다에서 동력을 모아 다른 바다에서 쓰기를 반복하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할까. 돈벌이를 오직 생계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바다는 점점 쪼그라들겠지만, 내 동생은 의미 있는 또 하나의 바다를 만들어냈다. 글의 바다에서만 평온히 유영할 수 있는 재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하지만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지 못해서, 내가 사랑하는 바다를 포기하거나 이렇게 또 하나의 바다를 만들어낸다.


너의 두 바다 모두가 언제나 평안하기를





디 Digital 문자답 : 겨우, 서른 (三十而已)

각자의 서른



대학 새내기 때 만나 지금껏 종종 보는 친구들이 있다. 20대를 함께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몸은 멀리 떨어졌어도 자연스레 30대의 애환 역시 공유하게 되는 그들이다. 요즘도 가끔 스카이프로 만나 안부를 묻는데, 그 중 한 친구가 열심히 보는 드라마라며 <겨우, 서른 (三十而已)> 을 추천해 주었다.


제목이 투명하게 말해주듯 이건 서른에 근접한 상하이의 세 친구 이야기다. 한국 드라마처럼 스펙터클한 기승전결이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지 않고, 그들의 출근과 퇴근, 여행과 휴식, 만남과 이별 같은 것들이 다큐처럼 자연스레 흘러간다. 그렇게 한 40회 정도까지 왔을까. 이젠 드라마를 본다기보다 상하이 친구들의 삶을 함께하는 기분이어서, 그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건다는 생각으로 넷플릭스를 켜곤 한다. 


20대 때의 자유분방함도 40대의 여유로움도 없는 서른 살.
서른이 원하는 건 더 나은 삶이다.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서른 살 생일. 한 명은 상하이에 자리를 잡은 기념으로 남편과 아이가 준비해 준 성대한 파티를 즐기고, 한 명은 이혼을 한 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한 명은 직장을 나와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간략히 적어 놓으니 세 사람의 인생을 단적으로 서술한 것 같지만, 실제로 그들의 인생은 꽤나 다채롭고, 언제나 서로를 보듬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런 대조가 전혀 불편하지 않다. 무엇보다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서른 살 생일을 맞이했다는 점. 서른에겐 어쨌든 기대감이라는 게 있고 이후로도 삶은 계속된다는 점이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힘을 주는 포인트 아닐까.


이렇게 든든한 친구들이 있으면 성공한 서른인 거지 뭐


그리고 이 기대감의 중심에는 상하이가 있다. 그곳에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상하이. 울고 웃는 주인공들의 뒤엔 상하이의 커다란 건물들과 좁다란 뒷골목, 널찍한 강과 붐비는 차도, 분주한 회사와 작고 아늑한 집이 있다. 상하이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것들, 집세에 밀려 상하이를 떠나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모습, 고향의 정겨움이 주는 편안함과 대도시의 무관심이 주는 편리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을 보며 상하이의 30대 역시 서울의 30대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안도 섞인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한 회가 끝날 때마다 스크롤과 함께 등장하는 상하이 풍경. 세 친구의 서로 다른 상하이 집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담이지만 이 드라마의 회차별 에필로그도 무척 따뜻하다. 매번 등장하는 이 쿠키 영상의 주인공은 어느 뒷골목 충유빙 가게의 젊은 부부와 어린 아들인데, 목소리 없이 행동과 표정 그리고 음악만으로 보여주는 이 가족의 모습이 너무나 정겨워서, 3분 남짓한 듀레이션인데도 상하이의 삶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퇴근 후 누군가를 만나기엔 힘들고 그렇다고 쉬기엔 심심하고. 드라마보다는 덜 자극적이되 일반 다큐보다는 재미있는 삶을 만나고 싶을 때. 그런 삼십 대가 당신일 때. 이 드라마를 열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28일간의 휴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