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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Aug 11. 2021

우리는 모두 국가대표 밥벌러

두도막 컨텍스트 #3 시작점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아 Analog 문자답 : 열일곱 국대

내 일을 시작하는 나이



2020 도쿄 올림픽 기간. 나도 여자 배구를 보며 환호했던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한일전을 비롯한 모든 예선전은 물론, 터키전 마지막 세트의 4강 진출 순간까지 라이브로 봤으니 배구 황제 연경신 & 라바리니 호와 함께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축제를 아주 제대로 즐긴 셈이다.


식빵 언니에 대한 존경심과 팬심이 무럭무럭 자라난 건 당연한 수순. 예전 경기들을 보기 위해 그가 거쳐 온 팀들을 살펴보던 중, 무려 열일곱 살부터 국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가대표 (2005 ~)


2005 뒤에 당당히 붙어 있는 물결. 언니가 지금 만 서른셋이니까 20대는 쭉 국대였다는 뜻이다. 아니 잠깐. 그럼 나는? 그때 나는 뭘 했더라? 입사 동기들이 모두 퇴사한 직후, 왜 너는 그만두지 않느냐는 질문에 "20대 내내 찾아 헤맨 직업이라서요"라고 대답하던 순간이 불현듯 뇌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공대생이었다. 공대 중에서도 공대라는 기계공학 전공. 분명 수학과 물리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너무너무 재미가 없었다. 물분자의 움직임을 내가 알아서 어디에 쓰겠냐며 맥주를 들이켜던 2학년이 지나고, 제어 프로그램을 돌리는 친구들 손가락을 구경하며 3학년을 보냈다. 애지중지하던 공학용 계산기마저 보기 싫어질 무렵. 이렇게 졸업했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어학연수 겸 필리핀으로 도망을 쳤다.


여행은 다녀봤지만 몇 달간 외국살이를 한 건 처음이었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금세 찾아왔고, 나는 철 지난 드라마들을 돌려 보며 몰입하곤 했다. 산과 숲과 바다와 여름이 있는 필리핀의 자연 속에 잠긴 채 끝없는 상상력이 빚어낸 영상들에 대해 생각하던 날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쩌면 나는 피디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닐라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 가만히 생각하기 좋았던 창 밖 풍경.


하지만 나는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좋은 전공을 두고 왜 어려운 길을 가려하냐는 우려 섞인 말들. 여기에 맞서 싸울 설득력 있는 경험과 근거가 내겐 한없이 부족했다.


결국 학교를 졸업하며 나는 차선책을 택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비(非) 공대적인 곳. 적어도 그때는 건설업계가 그런 곳이라 생각했다. 좋은 건축물은 가장 오래도록 널리 사랑받는 예술이니까. 그래서 일반적인 기계 전공자라면 기계와 전기가 메인인 플랜트로 가길 원하던 때에, 나는 빌딩 사업부에 가겠다며 당당히 손을 들었다.


하루 일과의 마무리였던 현장 사무실의 노을


너무 낭만적인 거 아니야?


내 책상 위의 건축과 도시에 관한 책을 가리키며 대리님과 과장님은 말씀하시곤 했다. 설계와 시공이 완전히 다른 분야임을 몰랐던 건 아니지만, 현장은 너무나 바쁘고 힘이 들어서, 퇴근 후 건축학개론 책을 조금씩 읽는 것만으로, 건축팀 동기를 따라 콘크리트 치는 걸 구경 가는 것만으로 나의 빈 마음이 채워지진 않았다.


결국 딱 일 년을 채우고 퇴사한 나는 다시 학생으로 돌아갔다. 공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 인문학, 디자인, 예술 등 무척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이는 문화기술대학원(Graduate School of Culture Technology).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가더라도 아주 멋진 형태로 정착하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중요한 점은 이 학교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새로운 환경과 아이디어를 추구했다는 사실이다. 무용 전공자는 생물 전공자의 춤사위를 보며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었고, 전자과 출신은 사학과의 코드를 보며 신기해했다. 물론 결국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마무리하곤 했지만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용기를 얻은 건 분명하다. 조용히 품고 있던 꿈을 꺼낼 수 있게 서로 도와주는 울타리 안에서, 나도 비로소 피디를 할 수 있다는, 그리고 반드시 해야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정동진 같았던 그곳




김연경 선수가 오직 배구에만 집중했던 10년 동안 나의 길을 찾아 헤맨 것이 아까우냐 하면 그렇진 않다. 이렇게 멀리 돌아오는 길도 나름 즐거웠으니까. 물론 시간 절약의 측면에서 부럽긴 하지만, 연경 언니가 지금의 황제 자리에 오른 건 단지 일찍 시작했기 때문만은 아님을 안다. 무던히 노력하며 확신을 지켜갔으니 꾸준히 달릴 수도 있었던 거겠지. 이러한 확신은 누구에게나 일찍 오는 것이 아니며, 만약 일찌감치 찾아왔다면 그건 로또에 비견할 만한 행운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디 Digital 문자답 : 아무튼 출근!

내 일을 시작하는 순간 다시 한 살인 거야



친구들과 만들었던 라디오 방송의 한 코너에서 여러 직업을 소개한 적이 있다. 지인들 중엔 워낙 학생들이 많았던 시기인지라, 청취자들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여 각색하는 작업을 거쳤더랬다. 실제 인터뷰로 진행하면 참 재밌겠다며 아쉬워했었는데. 그런 프로그램이 실제로 나와 버렸다.


아무튼 출근!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내 마음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해야 하는 밥벌러(이 프로그램 속에서 출연자들을 지칭하는 단어다)들의 현실을 반영했다고나 할까. 너무 좋은 면만을 편집적으로 보여주지도 않고, 힘든 부분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한 직업인의 일상을 소개해 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새로운 삶의 모습을 충분히 즐기기만 하면 된다.


원맨 체험쇼 <워크맨>의 주인공은 장성규 님이지만 <아무튼 출근!>의 주인공은 출연자들이다.


직업은 한 인간의 색깔을 또렷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방법'은 곧 '내가 사고하는 방식'이니까. 그래서 내게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다양한 직업인을 만난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일까, 이 프로그램에서 내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부분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오직 그 직업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출연자의 나이, 성별, 출신 같은 요소는 거두어 둔 채 오직 그가 하는 일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자세.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을 밥벌이 연차로 소개한다. 


밥벌이 N년차


어쩌면 우리는 밥벌이를 시작하는 순간 사회적인 나이를 다시 먹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서 내 일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다시 한 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빨리 시작했다고 안심하지도, 늦게 시작했다고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나보다 11년이나 일찍 길을 찾은 연경 언니만큼 나도 내 직업을 사랑하며 달리면 되는 것 아닌가. 세계 최강이 되진 못할 수 있지만 아무렴 어때. <아무튼 출근!>에 나오는, 그리고 나오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내 밥벌이를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면 될 일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에 국대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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