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기록

감기 기운

220105 수요일 - 몹시 추운 날의 기록

by 희제


목에서 쇠맛이 올라오는 걸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요즘 목이 왜 이렇게 잠기지. 며칠간 춥다는 핑계로 환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집을 나서자 추위와 함께 으슬으슬 몰려오는 오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셨는데도 코막힘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이 모든 것은 꽤나 낯설었다. 대체 얼마만에 느끼는 감기 기운이야.




마지막으로 지독한 감기를 앓은 건 몇 년 전 어느 날. 회의실 구석에 앉아 평소처럼 일을 하던 중, 감기는 아주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순식간에 몸이 추워지더니 머리가 띵해지기까지 몇 분 걸리지 않았고, 회의실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지더니 이내 눈 앞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다른 병이 아닌 감기라고 확신했던 것이 신기할 만큼 강한 증상이었지만 어쩌겠어. 할 일은 태산인데. 지금부터 밥도 거르고 집중해야만 새벽 두 시쯤 퇴근할 수 있을텐데. 아무도 나의 움직임을 강제하진 않았지만, 막내의 입에선 잠시 쉬고 오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작가님 한 분이 피디님, 하고 불렀다. 피디님 괜찮아요? 얼굴이 너무 창백한데? 회의실을 가득 채운 그 말소리에, 모든 시선이 문간에 앉은 내게 쏠렸다. 너 지금 상태 안 좋은 것 같아. 좀 쉬고 와 얼른. 한 마디씩 거든 그들의 표정엔 정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회사 수면실로 올라가 침대 옆 뜨끈한 바닥에 몸을 뉘였다. 깔려 있던 요를 걷고 굳이 그 아래로 기어들어갈 만큼 한기가 느껴졌다. 세 시간쯤 잤나.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뜨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의실로 성큼성큼 돌아 들어갔다. 몰라보게 멀쩡해진 얼굴이었다.


북극곰 2.jpeg 눈 위를 굴러도 멀쩡하던 때가 있었는데 ...


역시 젊음은 상대적이다. 다섯 살 더 먹었다고 좀처럼 감기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니. 상대적 어르신인 오늘의 나는 연신 코를 풀어제끼고 재채기를 하며, 하루 종일 춥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래도 액땜인 것 같다. 새해 벽두부터 감기에 타박상에 조그만 피부병까지 겪게 된 것이. 물론 롱패딩 꿰어 입고 병원 유랑 다니는 것이 썩 유쾌하진 않다. 하지만 나중에 큰 병원 가게 될 일이 이렇게 자잘한 것들로 조각내어져 약간의 귀찮음 정도로 찾아온 거라 믿고 싶다. 해도 바뀌고 나이도 바뀌고 회사도 바뀌었으니 정신 차리고 잘 적응하라고, 물갈이처럼 이런저런 일들이 지나가 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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