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제 Feb 28. 2024

피디 사회엔 큰 문제가 있다

240228 언저리의 기록


#1


한국 교육과정엔 큰 문제가 있다.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 점.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초중고는 그랬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직업이 있고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는지를 그때는 알지 못했고, 전 세계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 수 없었다. (스마트폰이라도 있는 시절이었다면 좀 달랐을지도...) 공부 잘하는 것이 최고라길래 열심히 했고,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정말 잘하는 줄 알았다. 목표가 없음을 깨달은 건 대학을 가고 나서였다. 전공 선택을 실패했으니 그다음은 성공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회사라면 재밌는 걸 하자며 천직(지금 생각하면 이 단어도 참 문제다)을 찾아 10년 가까이를 헤맸다. 그러고 또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2


피디 사회엔 큰 문제가 있다. 방송 피디가 세상 대단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영원히 이어지길 바란다는 것. 디지털보다는 그래도 아직 레거시지, 하는 기조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 물론 입사할 무렵엔 그게 참 좋았다. 16명 동기 모두가 피디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 여기는 것 같았고, 피디가 아닌 입사 동기들도 피디들을 추켜세워(?) 주었다. IT 회사가 개발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듯이, 콘텐츠 회사이니 제작자들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텐데. 괜스레 어깨가 이만큼 올라가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동기의 절반이 사라졌을 때에는 그만큼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막내조연출의 삶은 없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피디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3년쯤 지나자 주위에 사라진 선배들도 꽤 생겼다. 결혼하고 슬며시 사라진 6년차 선배, 스타트업에서 새 길을 찾겠다며 퇴사한 9년차 선배, 돌연 물고기잡이를 하겠다며 통영에 내려간다던 15년차 선배. 솔직히 고백하자면, 너무 좋은 길을 선택했다며 박수를 치면서도 안타까워했다. 결국 피디로 성공을 못할 것 같으니 이 레이스에서 사라지는구나, 정말이지 기고만장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 대단한 착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나만큼은 피디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탓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한창 언시를 준비하던 시절에 유학과 로스쿨과 의전에 갔던 친구들은 이미 너무 잘 살고 있거든. 나는 그 모든 길을 내 길이 아니라며 뿌리치고 나왔으니 대단한 인물이 되어야 맞는 거잖아. 하지만 친구들이 교수가 되고 펠로우가 되고 실리콘밸리의 중심에서 일하게 될 동안, 나는 분량이 2분짜리인 피디에서 20분짜리인 피디가 되어 있었다.




요즘은 뭔가 대단히 잘못됐음을 느낀다. 이젠 여전히 밤을 지새우고 씻지도 못한 채 사는 것을 훈장마냥 얘기하기도 부끄럽고, 셀럽과 일하는 것을 신기해하는 시선도 크게 달갑지 않다. 피디의 일상을 여전히 사랑하긴 하지만, 이렇게 똑같은 예능 문법과 똑같은 플랫폼을 반복하는 환경에 있다가는 비교의 아이콘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버렸거든. 하던 일을 잘하는 사람도 좋지만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결코 오래 살아남을 수가 없다. 전통적인 피디 업무에 매몰된 사람에겐 제한된 직업 수명을 받아들이고 물러나는 미래뿐이니까. 예능에 자막을 처음 도입한 프로그램, 관찰 리얼리티 형식을 처음 만든 프로그램, 유튜브로의 전이를 이뤄낸 프로그램, OTT 로의 흐름을 탄 영화 같은 프로그램처럼 피디 사회를 뒤흔든 격변의 넥스트를 찾아 탑승하려면, 생각이라는 걸 하며 살아야 한다.


일을 즐기되 몰입의 방향을 바꾸자는 다짐은 사실 몇 번이고 했다. 제발 밤새 앉아있지 말고 머리를 좀 깨우자고, 새로운 흐름을 읽고 공부하는 인풋 시간을 사수하자고, 스마트폰만 바보상자처럼 쓰지 말고 스스로 좀 스마트하게 살자고 몇 번을 다짐했건만, 하드코어한 일의 쓰나미에 갇혀 또 가장 중요한 걸 내던진 채 편집실에 박혀버린 일주일을 지냈다.


동틀 무렵 풍경은 집에서 봐도 되는데.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랬으니 일어나면 되는 걸까. 적어도 시도할 마음을 잃지 않을 동력은 생겼으니 그나마 조금 고무적인 걸까. 문제점을 인지라도 했으니 다행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오직 북한산밖에 없는 줄 알고 정상을 향해 오르던 사람임을 깨달았으니, 지각변동이 일어나서 에베레스트보다도 높은 산이 생기는 순간 글라이딩을 하며 날아갈 수 있도록 비행 준비를 하면 된다.


+


물론 함께할 회사를 믿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거인의 어깨에 잘 올라앉는 것도 능력이니까. 더구나 피디의 정의를 스스로 바꿔볼 심산인거지 피디를 안 할 건 아니잖아? 회사도 아직은 방향을 잡는 중인 것 같으니 그 방향키에 손가락 한 개쯤 올려볼 필요는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작은 회사에 왔으니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괜찮은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어 봐야지. 그럴 용기를 얻기 위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지 말고 붙잡아야지.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도록 살 방법을 생각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그만두긴 글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