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제 Mar 07. 2024

왜 자꾸 틀렸다는 거죠

240306 언저리의 기록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 부분 편집은 좀 아닌 것 같고요, 라는 시사 피드백은 아리송하면서도 답답했고, 명확한 이유 없는 지적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근거를 대기 어려울 만큼 톤 차이가 미묘하니 넘겨주면 다듬어 보겠음'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되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감성 구다리가 들어갈 때마다 거듭되는 지적이었다. 아니 그런데 이건 여행 프로그램이잖아. 그러면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동은 한 번쯤 넣어줘도 되는 거 아니야? 아니 넣어줘야만 하는 거 아니야?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기로 했다. 솔직히 그동안 선배에게 묻질 않았다.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는 건 프로그램 주인의 숙명이라지만 요즘은 진짜 잠을 반납해 가며 일하는 중인데 나까지 봐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반드시 물어야 하는 수정 방향이야 물어서 정리하겠지만, 근본적인 편집 질문으로 긴 시간을 빼앗고 싶진 않았다. 솔직히 알아서 잘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도 있고. 하지만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을 종영까지 안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웃기지가 않잖아



대답을 들으니 더 이상했다. 아니 선배 담당 출연자는 말만 하면 웃기잖아요. 우리 팀 출연자는 무슨 말을 해도 웃기지가 않다고요. 확실히 그랬다. 진지한데 순수한 면이 있는 출연자. 예능이니 좀 웃겨봐야겠다는 생각은 제로에 수렴하는, 대신 누군가의 말에 호탕하게 웃어줄 수는 있는 사람. 좋고 싫은 것이 명확한 만큼 여행에 진심이어서, 그런 모습을 잘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여행지에서 느낀 감동을 증폭시키는 편집이 우리 팀의 할 일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렸던 것이다.


문제는 메인 선배가 내린 우리 프로그램의 정의를 간과한 데에 있었다. 재밌지가 않잖아, 를 기점으로 그동안 선배가 했던 말들을 돌이켜보니, 그가 정의한 우리 프로그램은 깔깔 예능이었다. 웃긴 포인트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보는 이들이 깔깔 웃게 만드는 프로그램. 여행의 감동이나 정보는 웃게 하기 위한 과정 내지는 수단일 뿐이었다. 정리하자면 제재가 여행이고 장르는 재미인 건데, 나는 제재가 여행이니 장르도 (당연히) 여행과 연결되는 감정인 것으로 결론짓고 있었다.


내친김에 지나온 프로그램들에서 어떤 편집을 했었는지도 돌이켜 보았다. 화려한 가수의 무대와 그 무대 뒤에 숨겨진 눈물겨운 노력. 감동적인 서사 또는 실생활 속 인간적인 모습들. 도대체 왜 감성 편집을 자꾸 끼워 넣었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내내 겪은 프로그램 컬러가 이러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 무의식조차 이 경험에 기반하여 해결책을 내놓았던 거다. 아무 생각 없이 웃게 만드는 예능보다 시작부터 끝까지 몰입하게 하는 드라마적 서사를 더 좋아해서, 앞으로 그런 타입의 예능을 꼭 만들고 싶다는 열망도 한몫했을 거다. 하지만 내 사정은 내 사정이고, 이미 프로그램 톤이 정해졌으면 따라야 하잖아? 구성 단계라면 프로그램 컬러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내도 괜찮겠지만, 이미 편집은 한창이었다. 심지어 지난 시즌 내내 공들여 다듬은 톤이 이미 너무 명확히 존재하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일단은 따르는 것이 맞다는 선배 말에 이젠 확실히 동의한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이 출연자의 웃김 포인트를 긁어모아서 깔깔 웃게 만드는 것이었던 거다. 웃긴 캐릭터는 따로 있으니 이 캐릭터는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야지, 라고 혼자 결론지을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말해두지만, 나는 '틀린 편집'이란 건 세상에 없다고 믿는다. 편집은 어디까지나 취향이니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메시지, 그리고 톤만 확실하다면 표현 방법은 무궁무진해도 괜찮은 것이 편집의 세상 아닌가. 본인만이 낼 수 있는 컬러를 스타일링할 줄 아는 것은 피디의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메인 피디의 스타일에 맞추는 건 조금 다른 범주의 문제다. 정해진 톤에 적응하여 맞추는 건 응당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동시에 나와 다른 스타일의 편집,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배우는 과정이 되기도 하고.


이런 생각들을 머리로만 이해했지, 실행에 반영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한다. 촉박한 시간 안에서 뭐라도 만들어내야 하다 보니 (일단 이번만, 일단 한 번만, 따위의 생각을 하며) 그간 해왔던 익숙한 방법 안에서 해결책을 고르고 있었던 과거라니. 스타일을 뿌리부터 바꾸려면 자꾸 물으며 맞춰가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걸 알면서도, 내가 가진 유리구슬만으로 전혀 다른 장르의 진주목걸이를 꿰어 맞추려 했다.


물어보자. 열 번 스무 번 고치더라도 제발 물어보고 대화를 하자.



업무로서의 편집 - 맞춰가는 노력



이번 과정을 지나며 업무로서의 편집에 대한 기본 정의를 좀 달리하게 됐다. 무조건적 크리에이티브를 1순위로 가져가려면 자유도 높은 1인 크리에이터가 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스무 명 남짓 되는 피디들이 한 회차를 위해 각개전투를 훌륭히 치러내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 아닌가. 메인 피디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맞추려는 노력을 좀 더 미리, 좀 더 치열하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에서야 한다. 프리뷰를 하며 지금껏 남기던 진지한 토크를 버리고 가벼운 토크를 모으는 이 노력이, 시기적으로는 좀 늦었지만 영 무의미하진 않기를 바라면서... 이번 시사땐 우리 출연자 파트로 최대한 웃겨보리라, 마음먹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디 사회엔 큰 문제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