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by 유인도

게슴츠레 뜬 눈으로 보았을 때 나는 하나를 더 알았다.

솔희는 울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아프냐고 묻길 기대하지 않을, 솔희는 여자였다. 가능한 모든 사회적 의미를 배제한, 솔희는 여자였고 그래서 문득 재인을 흩어냈다. 나는 솔희가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것이 솔희에게 유달리 특별한 인상을 요구할까 봐, 솔희의 속성 가운데 아름답다는 말이 포함된 유일한 단어로 대체하는 것이다. 솔희는 눈과 어깨, 손과 무릎으로 울었고 입과 코로는 울지 않고 다만 느꼈다. 느낌의 출처가 눈물인지 밀면인지 구분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가끔 머리카락을 밀면과 함께 물었고 손가락으로 건드려 치우면서도 고개를 들진 않았다. 그때 솔희의 떨림은 보임으로써 내게 느껴졌는데, 만일 재인을 보게 된다면 느낄 감정과 판이했는데도 용케 재인을 지워냈다. 나는 따로 부르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떤 감각도 자극하고 싶지 않았고, 불가피하다면 시각이고 싶었다.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솔희를 볼 수 있었다. 그녀를 보는 일은 생각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쉬웠다. 잠시 동안 나는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을 생각했는데, 뒤따르는 연민이 그들에겐 폭력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곧바로 따라붙는 바람에 감각에 관해 논하는 일 자체가 짜증나졌다. 어쨌거나 나는 당연하게 보인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한 여자를 잠시 잊었고, 솔희는 너덧 걸음 남짓이 남았을 때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잠시 눈꼬리를 내리더니, 유체가 잠깐 이탈한 것처럼 내뱉었다.

"잘 지내고 있어요?"

"네."

왜 그런 대답이 그다지도 얼른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좋았고, 확실히 그랬다.

"잘 지내요?"

"..."

"뭐 해요."

"밀면...?"

뱉어놓고 문득 솔희는 해맑게 웃더니,

"헤, 오빠. 나 울다 웃어서 엉덩이에 뿔 나겠다, 그치."

"니 괘안나?"

"사투리 고거 쓰지 말라니까, 알았지. 이유는 안 물어보네?"

"니 애인한테나 가서 물어봐 달래라."

"넹."

"오늘은 끝난겨?"

"어, 몇 시지. 아, 맞다. 나 오늘 뒷정리 안 하기로 했는데. 아, 밀면 시키지 말고 어디 가서 먹을 걸."

"언제 시켰는데."

"이거? 점심에. 다 불었어. 탱탱볼이야."

"..."

"웃어. 왜 안 웃어?"

나는 대답하는 대신 솔희를 차근히 보았다. 지난해 조은정과 함께 보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헐렁한 체크셔츠 안에 나시를 입었는데, 그 모든 게 다 여름처럼 흐물거렸다. 밀면 국물을 하수구에 버리며 솔희는 나를 돌아봤고, 나는 구멍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비슷한 눈빛을 지녔으므로, 나를 향한 그녀의 시선은 내 눈빛에 얹혀 물줄기로 되돌아갔고 그대로 쓸려내렸다.

모든 관계의 문제는 눈빛의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에 대한 독자의 의미 부여 양식을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으로 나누어 제안했다.* 스투디움은 사회의 틀 안에서 형성된 인식 체계에 따라 사진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작가의 의도대로 사진을 이해하는 것이다. 반면 푼크툼은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나를 찌르고 멍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감정을 사진을 통해 떠올리는 것이다. 떠오른 감정은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지만, 진정한 감정은 눈빛으로 모아지고 그대로 사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고흐의 자화상 앞에 오래도록 서 있는 여자의 눈을 보라. 극장에서 나오지 않는 남자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마지막 페이지에 멎어 있는 사람의 눈을 보라. 그 눈빛이 스스로와 닮은 이에게 우리는 공감할 수 있지만, 사랑하지는 못한다.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볼 터인즉, 그곳에 서 있는 누구든 서로에게보다 더 큰 끌림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영원한 불가능이란 없다면, 인지된 불가능을 갱신해가는 것이 우리가 야만을 덜고 시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요컨대 솔희와 내가 영원히 사랑할 일은 삶의 끝까지 없을 것이며, 이는 솔희에게도 같다.


나는 조금 변해 버렸어

윤상, 문득 친구에게(duet with 노영심)

문득 그녀의 눈빛이 떠오르지 않았다. 재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의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믿어왔고, 네 눈빛이 어땠는지,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 안다고 자연스레 생각했다. 네 시선에 걸리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네 눈빛을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중요한 것은 네 눈빛의 대상이 아니라 느낌이며, 그것이 나와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는, 그래, 재인.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너는 나를 보지 않으려던 것이 아니다. 내가 네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안 가볼 거야?"

말하며 솔희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그녀를 뿌리쳤다. 그럴 이유가 방금 다시 생겨버린 것이다.






















*전가일, 질적연구: 계획에서 글쓰기까지, 252쪽.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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