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강책 "감각의 비망록"의 100일

25. 11. 교보문고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 선정

by 유인도

출간한 지 100일이 되어가던 11월 16일, 온라인 서점 세 곳(교보문고, yes24, 알라딘)에 "감각의 비망록" 절판을 등록했습니다. 이윽고 도서전에서 보유 재고 33권을 소진하여, 7월 말 텀블벅으로 시작한 "감각의 비망록"은 끝을 맞게 되었습니다. 2쇄를 인쇄할 형편이 못 된다는 사실을 '한정 수량'으로 치환하며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달리 쾌감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따금 안도감이 공유됐고 시원섭섭함을 느끼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그들만큼이나 실은 나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오랜만에 인터넷에 책 제목을 검색했는데 (감성을 살려주는 책) 감각의 비망록이라는 글귀가 나타났습니다. 교보문고에서 11월의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으로 "감각의 비망록"을 선정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의 벙벙함을 어떤 말로 이곳에 옮길 수 있을까요. 기뻐하는 나를 보며 옆자리 누나는 "행복감을 느꼈네!" 했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은 "이제 곧이야, 정말 축하해!"라며 신나해 주었습니다.


교보문고 11월 색깔있는 책 선정 도서: (감성을 살려주는 책) 감각의 비망록

https://cafe.naver.com/ebook/893334

교보문고 11월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 선정 알림 및 재고 현황(유인도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DRrUYrVkr3K/?img_index=1


7월 24일, 당시 유인도의 구성원 4인은 육체와 정신의 출처를 분간할 수 없는 땀을 쥐며 텀블벅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후원 버튼을 개봉한 뒤로, "감각의 비망록"은 인기 순위와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를 오르내렸고 1달 만에 1,365%의 믿어지지 않는 수치로 후원을 마감했습니다. 부산 제2회 북앤콘텐츠페어, 남양주 여유당 북페어, 서울 와우북페스티벌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참여했으되, 이제 와 적으니 자랑 같지만 우리에게는 한 번도 자랑이었던 적 없습니다. 매 순간 뜻밖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상치를 상회하는 결과를 나는 구성원의 덕으로 돌렸고, 그것이 내 불안을 그들에게 전가하는 동시에 방황을 독촉하지나 않았을까 돌이켜 보게 됩니다. 당황감을 머금은 채로 맞이한 가을 동안 우리는 조금, 혹은 크게 헤맸습니다. 내가 방황한 까닭은 출판업의 경고등에도 물론 있지만, 이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므로 다른 이유가 필요할 겁니다. "감각의 비망록"을 위시한 3년 간의 기준점이 빠져나가고, 앞으로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두려웠습니다. 두렵다는 말을 가슴 깊이 묻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동시에 나날이 요동치는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았습니다. 요동의 구심력을 직시할 용기는 물론 내지 못했습니다.

지난날을 소회하는 자리에서 구태여 내막을 기술하는 까닭은, 그것이 종국에 동력이 됐기 때문입니다. 소회는 자조적이기 쉬운데, 이는 '과거'라는 속성에 일부 기인한다고도 함께 적습니다.


다만 설아에게, 장편소설 '감각의 비망록' 텀블벅 프로젝트

https://tumblbug.com/memoirofsenses

"감각의 비망록" 출간 및 온라인 서점 등록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2520001

"감각의 비망록" 서평단

https://blog.naver.com/u11mki345/224024894730

부산 북페어에서 뵌, 거트루드 슈타인을 닮으신 분의 후기

https://blog.naver.com/miliyam/224071139654


알음알음 진전하는 와중에 고려대학교 120주년 문화예술전시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길어도 3m 남짓이던 매대의 10배가 넘는 전시장을 한 권의 책으로 감당하기는 벅차다는 것을 중론으로, 연합 도서전 개최를 합의했습니다. 그간 내적 친밀감을 쌓아 온 14곳의 독립출판사에 소식을 급파, 감사히 참가 의사를 얻었습니다. 몇 주 며칠을 지새워 3일 간의 '유인도서전'을 무사히 시작했습니다. 내심 바라던 "감각의 비망록" 북토크를 실행에 옮기기도 했습니다. 우연과 노력, 그리고 인연의 조화였을 겁니다. 도서전을 마치며 우리는 지난 부산에서의 충격, 그러니까 다정하고도 강렬한 기쁨을 얻었습니다. 전시 시작 즈음 26년 서울에서 열리는 K-일러스트레이션 페어 참가 제안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기쁨은 확고했고 책 한 권의 맺음으로써 과분했습니다.


고려대학교 120주년 문화예술전시, 유인도서전

https://www.kunews.ac.kr/news/articleViewAmp.html?idxno=44885


유인도는 9월 말부터 새로운 도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구성원 모두의 기록을 담는, '사람이 있는 섬'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취지의 단편소설집 집필은 잇따른 북페어에도 탈선 없이 이어졌습니다. 이제 12월 말이면 7월의 열기에 버금가는 한기 속에 우리의 불안과 희망을 모조리 걸어야 합니다. 지난번과 같은 호응은 기대하지 못합니다. 하나 호응이란 언제나 우리의 예측과 무관하게 일어났으므로, 실망을 경계하는 냉정함을 이번에는 보이지 않을 겁니다. 나는 완전히 열정적이기로 마음 먹습니다. '작강책' 선정이라는, 실은 기뻐해 마지않을 소식 앞에 짐짓 태연하던 마음을 그냥 흔들기로 합니다. 불안의 구심력으로의 직시. 그것은, 내가 출판의 세계에 머물고 싶으며 그 이상으로 이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하매 고개를 숙여 청합니다.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셔서 유인도의 소식을 접해 주시고, 텀블벅에 프로젝트가 공개되면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단정적으로 자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유인도는 받은 은혜를 반드시 갚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드리는 데 혼신을 다하는 곳입니다. 이 혼신은 유인도 자체를 넘어, 유인도가 다루는 물성, 즉 책이 해내는 일입니다.


2025년 12월 말 공개를 목표한 새로운 프로젝트 '섬사람'

https://www.instagram.com/p/DRzYF9nkrnV/?img_index=1


그리고 이번에도 끝인바, 다만 당신에게. 나는 당신을 잃고 헤맸습니다. 헤맨 기록이 세상으로 나가고, 나는 앞서 다른 이유를 적어냈지만 실은 당신이 내게서 빠져나갔다는 허탈감으로 다시 헤맸습니다. 여정의 끝에서 당신은 "감각의 비망록"을 응원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지키려던 약속을 당신도 존중함을, 이제 그 내용을 첫사랑과의 약속을 넘어 나만의 꿈으로 지니고 계속 나아가길 바람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마지막과 함께 당신은 다시 내게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나는 당신을 기준점으로 삼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나는 유인도를 사랑하여 무엇이라도 해낼 것 같았으므로, 내내 유인도를 사랑하여 무엇도 포기하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의 진심을 위해, 나는 유인도를 지키는 데 사력을 다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시간 동안

https://music.bugs.co.kr/track/33574156


"감각의 비망록"의 여정을 이끌고, 이유 없이 도움을 주시고, 닿지 못하는 세상 곳곳에서 읽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여정은 편집장 전언호, 기획실장 이한솔, 전략실장 김은성과 사원 홍승재, 디자인실장 오채원과 디자이너 김나연이 동행합니다. 책의 이름은 제일 마지막에 정해질 것이고, 그것은 내가 당신을 그리던 바와 같이, 언제나처럼 처음이 될 겁니다.


- 유인도는 어떤 책을 다루나요?

-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출판합니다. 첫사랑에 관한 기억을 "감각의 비망록"으로 엮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이나 "무진기행"처럼, 순수문학을 지향합니다.

- 이효석 책 되게 난해한 거 많은데, 아시죠.

- 그래요? 모릅니다.

- 모르는 게 나아요. 정말 난해해.

- 그렇군요.

- 순수문학⋯⋯. 순수문학이 뭔가요?

-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

세상에는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세상이 너무나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곳이죠. 그중 가장이 사랑인 거고. 사랑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감각의 비망록"을 보고 희망을 얻은 거예요.

응원할게요, 왠지 잘 될 것 같아. 여기 사람들도 다들 기대하고 있어요. 청년들, 순수하고 당찬 청년들이 여기 와서, 이제껏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해내고 그걸 통해 모두를 이끌어줄 거라고 기대해요. 대표님, 그리고 막내님, 어깨가 무겁겠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달콤한 말도, 쓰라린 말도 모두 흩어지는 거예요. 기록하세요. 지금까지 기록으로 해낸 것처럼, 또 해낼 수 있어요. 계속해서 멋진 일들을 하게 될 거예요. 도움을 받게 될 거고, 그러다 보면 길이 나타날 거예요.

- 그 길이 생소하면 어쩌죠?

- 그것대로 재밌는 거죠. 지금까지 온 길도 익숙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저도 기대가 돼요. 다음 책은 언제 나오나요?

- 우선 12월 말로 목표하고 있습니다.

- 그래요. 유인도가 지금 믿는 대로 가면 분명히 길은 계속 나타나고,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 그 길에 함께할 거예요.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이, 대표님과 막내님이 꿈꾸는 것보다 더 많이 도와줄 거예요. 그런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잖아. 응원할게요.

그럼, 또 봐요(또 만나요!)(그래, 또 만나!).

2025. 11. 6. 서울 서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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