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서정의 해상도" 미리보기
내게 그녀는 고유하므로, 그밖의 인물은 모두 이름으로 기술한다.
11월 초순의 공기에는 늘 어떤 냄새가 배어 있었는데, 지대의 고도와는 상관없이 삼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현관 앞에서만 발색되었다. 시간은 자정 전후, 냄새는 코가 아니라 콧볼, 아니 볼 전체를 통해 스몄고, 일반적인 경로가 아니었으므로 시인이 아닌 내겐 낯설다는 표현에 그쳤다. 그것이 명멸하는 한 해의 며칠 동안 나는 진심으로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 짧은 기간이 데려오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를 의미로써 승화해 내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이다. 하필 그때마다 나는 돌아오거나 일어나 글을 쓰지 않았고, 후회가 내 가슴을 여유로이 염색할 정도로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어제 내겐 냄새를 알아챌 수밖에 없고, 마침 그때 상념이 없음에 감사할 기분 좋은 과거가 있었다.
언젠가 한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며 말했다.
“아마도 네 중심은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잠시 헤매고 있을 뿐이지.”
내게 중심이라고 말할 무엇이 있는 한, 그 말은 옳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첫사랑일 테다. 내 기억이 가장 활발하던 때, 다시 말해, 내 기억이 아름답기를 가장 원할 때 나는 사랑을 했다. 원하는 바를 얻은 그대로 기억은 훨훨 날았고 내 몸의 구성품들을 조금씩 먹어가며 오래 살았다. 그때가 스물이 아니었다면 내가 새를 기르게 되었을지, 길러서 중심까지 데려다 놓았을지 모르겠지만, 운명이든 개척이든 내겐 첫사랑, 설(雪)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중심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옳은 길로 가고 싶어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길이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밟아 나가는 쪽의 존재 여부로 규정되며 그중 내가 제일 가고 싶은 길은 흰 바탕에 발자국을 어지러이 남긴 눈길이었다. 한때 아들을 보낸 어머니가 흐느끼던 곳, 누군가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던 곳, 오랜 그리움이 재회하던 곳, 길고 낮은 밤열차가 서던 곳*... 우리는 늘 옳은 길만을 생각했고 김구의 좌우명처럼 눈길을 걸어도 흐트러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잃고 제각기 한참을 걷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오랜 그리움이 재회하던 곳, 길고 낮은 밤열차가 서던 곳-그리고 눈길은 우리에게 와서 ‘손잡고 이리저리 뛰놀던 곳’이 되었다-라고 말해도 좋았을 것이다.
환경의 변화를 맞이하여 들뜬 몰골이긴 했지만, 어떤 중심을 전제하고 곧장 결론에 대입시키는 친구가 낯선 것도 사실이었다. 이윽고 홀로 생각하기에 그 중심이란 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결국 첫사랑을 논하고 그를 통해 내 중심의 유무와 성질을 동시에 강력하게 입증하는 쪽으로 귀결되더라도, 우선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한때는 설이었지만 근래는 아니다. 설도, 다른 사랑도 모두 사라진 것 같다. 내 안의 어떤 커다란 것이 아예 예측할 수 없던 무언가로 인해 빠져나갔고, 이후로는 무엇도 열렬히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기분이 좋다. 이상하게 기분만은 후련하다. 11월 초순의 냄새, 코가 아니라 눈과 피부로 느껴지는 그 낯설고 선명한 색을 명확히 인식하며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게 어제다. 기분 좋은 느낌은 과거의 언젠가를 출발점으로 두었는데, 그래, 이제 정말 이야기하기로 하자.
그때 나는 종로를 휘적이고 있었다. 하늘이 구름의 허파를 부풀려 구름은 펑퍼짐했고 속을 햇빛으로 가득 채웠다. 그날 노을은 새삼스레 넓고 층이 없었는데, 송해길로 들어설 즈음 포효했고 이내 물러가며 인류를 거리로 끌어냈다. 그곳의 어둠은 남자의 잡티를 가리고 여자의 턱을 깎았으며 주인의 기를 빼내 손님에게 주었다. 비밀번호가 9475인 어느 오래된 화장실, 거길 관리하는 국숫집의 방문객보다 많은 사람을 받은 화장실에 들렀다 나와 보면 거리는 방금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자욱했고, 왜 인간이 동물인지를 알려주는 거친 낯빛들이 가로등 대신 서 있었다. 그 사이로 지나가며 나는 곁에 있던 여자의 손을 잡았는데, 그것은 물론 당연했으며 주변 상황을 고려하면 긴요했다. 그녀는 왜 이제야 그러냐는 듯이 나를 흘기면서도 반대쪽 팔을 내게 끼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자들이 두 가지 일을 너무나 쉽게 동시에, 혹은 하나를 마친 곧바로 해낸다는 것을 나는 경험하여 알고 있다. 내가 겪은 여자들은 다 그랬는데, 늘 이전이 다음에 떠올랐고 서로 얼마간 닮았다고 느껴져 왔다. 그러니 놀라웠던 것이다. 그녀의 행동에서 설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고유했고 동작은 온순했으며 눈빛은 오직 나만이 너를 이렇게까지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나는 똑바로 그녀를 마주 보았고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 줄 몰랐다. 오렌지색 터널을 따라, 생각이 느리게 나아가 뒤통수 쪽에 다다르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서 나는 답을 구했다. 늘 내게 정도(正道)던 설과의 기억 중에 당시와 가장 닮은 것을 찾아 응용하려 했다. 지금껏 나는, 심지어는 설을 만나면서도, 이렇게나 사소한 몸짓에서 이 정도의 고유함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설과 관련한 내 기억이 사진첩처럼 한 곳에 모여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이 연소될 수 있다는 것을. 언젠가 나는 떠올리지 않아도 떠오르고, 떠오르지 않으면 떠올린다고 적었다. 나름의 사상이었던 것이 일순간 전복됐다. 떠올리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았고, 떠올림 자체를 해낼 수 없었다. 한때 당당히 발현되던 생각은 뒤통수 쪽에 다다라 숨어버렸다. 이마부터 새로운 생각이 퍼져 나갔다. 누군가 뇌에 물을 끼얹은 듯한, 그 생각은 국어였을까, 그림이었을까, 혹은 다른 종류의 랑그로 언표됐을까. 나는 아픈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대체로 그들은 파롤로 아픔을 행사했지만, 간혹 랑그 자체가 아예 나와 다른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리하여 질시 섞인 외면으로 멀어져간 사람들. 그때 내게는 설이 있었다. 설을 잃고야 알았다. 때로 상실은 내용이 아니라 체계까지도 앗아가는구나.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제일 지극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결국 언어인데, 지독한 사랑이 그걸 앗아가는구나. 그래서 그렇게 말이 없던 것이다. 태만하거나 무력한 게 아니라, 누구보다 성실하게 안으로, 안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언어로서의 침묵, 그렇게 새겨지는 이별. 그리고 상실은 시위를 놓지 않았다. 침묵을 명중시키고, 다시 그것의 소실점을 겨눴다. 오직 상실만이 상실을 무너뜨리니, 상실이란 각인이자 소실이었다. 종로에서, 그녀의 눈빛을 맞닥뜨리며, 나는 또 한 번의 명중을 경험하고 있었다. 무언의 강력하고도 아찔한 소실이 나를 알지 못한 곳으로 데려가 그곳을 지배했다. 우리 사이에는 전율이 일었고 천사가 다녀갔으며, 다만 입을 맞춰버릴 도리뿐 없었다. 나는 화살이 날아가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침묵의 마지막을 완벽하게 기리며 새로운 상실에 힘없이 승복해 버렸다.
*눈길(이청준), 러브레터, 윤희에게, 사평역에서
**빈지노, If I die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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