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서정의 해상도" 미리보기
죽어야겠다.
26살 생일, 눈을 뜨자마자 떠올린 생각이었다.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전부 과거에 있었다. 그러나 영원할 줄 알았던 그 행복은 단 5년만에 내 곁을 떠났다.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던 것 같은데, 그들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홀로 맞이한 생일 아침,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 시점에서 더 이상 살아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순간 몇 안 되는 슬픈 얼굴들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내 이기심은 서둘러 그 잔상을 지웠다.
죽기로 결심하고 나니 몸은 오히려 부지런해졌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널브러진 후드티와 추리닝 바지를 치우고, 비로소 드러난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새삼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미뤄둔 설거지를 끝내고, 검은 곰팡이가 핀 화장실 바닥을 솔로 벅벅 문지르며 어떻게 죽어야 할지 생각했다. 최대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다. 세상이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조용히 내 흔적을 지우고 싶다. 사라지는 순간까지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목을 매거나 높은 곳에서 투신하는 방법은 최악이다. 남겨진 몸뚱이가 끔찍한 악취를 풍길 때까지 썩은 뒤에야 참다못한 이웃에게 발견되거나, 땅에 처박혀 뭉그러진 몸을 살려 보겠다고 필요 이상의 인력을 낭비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한때는 세상에 나를 남기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어딘가에는 각인하고 싶었다. 혹시 떠나더라도 흔적은 남아서, 100년, 200년 뒤에도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날의 꿈은 컸고, 그걸 품기에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작았다. 포기가 빠른 나는 비교적 쉬운 길을 택했다. 가능한 조용히, 주변의 소소한 행복만 챙기며 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내게는 버거운 일이었을까. 더 이상 어려워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보란 듯이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30분 넘게 이곳저곳을 문질렀음에도 곰팡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흰색 타일 위로 핀 검은 반점들 위에 락스를 대충 끼얹고 화장실 문을 열어둔 채 불을 껐다. 방으로 들어와 책상 위 노트북을 열고 포털 사이트에 ‘조용히 사라지는 법’을 검색했지만, 나오는 정보는 채팅방에서 조용히 나가는 법뿐이었다.
삶에도 조용히 나가기 버튼이 있다면, 그래서 누구나 원하는 때에 삶을 끝낼 수 있다면 과연 불행한 사람의 수가 줄어들까? 고등학교 때였나,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자살을 다룬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이탈이 여러 사람의 불행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악에 가깝지만, 부재가 오히려 사회에 이익이 된다면 선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때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괜히 화가 났었다. 수백 개의 세계와 연결된 하나의 커다란 세계가 이 땅에서 완전히 소멸한다는 사실, 그건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계산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사건이라고. 마주 잡은 손에서 손가락을 잘라내고, 마르지 않을 진물을 뿜어 두고두고 아물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어리고 맑았던 과거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주변인이라고는 없는 20대 후반의 백수다. 땅을 치며 슬퍼할 사람도, 세상에게 끼칠 손실도 거의 없다. 애당초 기억되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뒤처리만 잘한다면 실존했다는 사실조차도 부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할 사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얼굴도 볼 수 없는 이들에게까지 내 죄책감이 닿을 리는 만무하다. 이제는 그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다. 여기를 조용히 나갈 수만 있다면, 공리주의든 뭐든 끌어다 쓰고 싶은 마음이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 끝에도 결론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노트북을 닫고, 차가운 침대로 돌아갔다. 외풍이 심한 집에는 한기가 가득했고, 화장실로부터 새어 나온 락스 냄새가 집 안 곳곳에서 진동했다. 보일러를 켜고 창문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무기력은 금세 나를 바닥까지 끌어당겼다. 이러다 죽으면 죽는 거겠지. 차디찬 집을 점거한 불쾌한 냄새와 함께, 환한 형광등 조명 아래에서 조용히 잠에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꿈을 꿨다. 꿈에서는 그리움이 제 몫을 해낸다.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방 한가운데 모여앉아 밤을 새우던 날의 웃음소리, 살지도 않는 기숙사를 함께라는 이유 하나로 오를 때 나던 풀 내음, 그리고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그 얼굴까지. 꿈이라는 이유로 해결되는 것들이 많았다. 동시에 가슴이 먹먹하게 아렸다. 하나같이 다시는 겪을 수 없는 감각이라서 더 아팠다. 솜털 같던 기억들은 송곳 모양으로 변해 내 머리를 한껏 짓뭉개고, 나를 아래로, 아래로 밀어 내렸다. 정수리가 지끈거리고, 관자놀이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에, 꿈이 내 마지막 고민까지 해결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끝이다. 이대로... 이대로...
눈을 떴을 때, 나를 마주한 건 순백의 공간이었다. 내 머리 위로 흰색 파도가 출렁였고, 하얀 바다 중앙에는 기다란 모양의 섬이 떠 있었다. 여기는 천국일까, 하지만 스스로 삶을 저버린 이가 어떻게 그런 요행을 바랄 수 있을까. 반쯤 뜬 눈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내가 여전히 지옥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청소를 마친 방은 천국으로 착각할 만큼 흰색이었고, 여전히 진동하는 락스 냄새 속 피어난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은 방 전체에 물결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깨질 것 같은 머리가 이곳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자각시켰다.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든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보일러를 켰다. 사람이라는 게 참 우스웠다. 방금까지 죽겠다고 했으면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본능이 내 의지를 제쳐냈다. 어지럼증과 두통이 잦아들자.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뿌려놓은 락스를 솔로 힘껏 문질렀다. 물을 뿌리자 곰팡이는 시원하게 씻겨나갔지만, 곳곳에 있는 희미한 반점의 흔적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몇 차례 더 문질러봤지만,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는 다시 책상 위에 앉았다. 아까 본 흰색 바다 위의 기다란 섬,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4년 전 학교 옆 골목의 작은 술집이었나, 같은 과 동기였던 형과 단둘이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다른 대학교를 졸업한 후 26살에 다시 수능을 본 형은 세상일에 유난히 냉소적이었고,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다정했다. 그날 형이 한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너 유인도라고 들어봤냐?”
“응?”
“유인도. 사람이 있는 섬.”
“아.. 무인도 반대말이구나. 근데 그게 뭔데?”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가장 온전한 형태로 보관해주는 섬이라더라. 편지든, 음성이든, 향기든, 니가 원하는 무엇이든 그 기억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대”
“그래? 어디 있는데?”
“몰라”
“응?”
“아무도 몰라. 우리나라 어디겠지. 근데 밤 12시가 되면 청호해변 등대에 거기로 가는 기차가 온다는 거야.”
그때 나는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고, 이상한 사이비 종교나 인신매매범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그러나 형은 그저 웃었다.
“그렇지. 근데 이상하게, 나 거기에 가보고 싶어.”
그날 형의 아련한 눈빛이 아직 기억난다. 아주 오래된 무언가를 그리워하던 그 눈빛. 형과 대화를 나눈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대학 시절 많은 인연이 그렇듯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고, 언젠가부터 서로의 안부도 묻기 힘들 만큼 멀어졌다.
갑자기 왜 그 생각이 났을까. 노트북을 열어 검색창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법’을 지우고, 유인도를 검색했다. 독도는 유인도냐는 질문부터, 국어사전과 뉴스 기사 몇 개가 떴을 뿐, 형이 말했던 유인도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모든 게 부질없어졌다. 사람이 있는 섬, 추억을 가장 온전한 형태로 영구히 보존하겠다는 정신 나간 섬.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는가. 아마 사람들을 납치해서 장기를 팔아먹는 집단의 같잖은 수작일 것이다. 사람들은 한 발짝 앞으로 나가기 위해 지나온 열 걸음을 지워버린다. 온 힘을 다해 달려도 뒤처지는 세상에서, 도대체 누가 고개를 돌리고 멈춰있겠는가?
그러나, 혹시나 그런 곳이 있다면, 단 1초라도 나를 그때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허황된 욕망이 삶으로부터의 격리를 막았다. 완행열차의 출발지는 청호해변의 등대라고 했다. 미친 사람처럼 표를 예매하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9시 13분이라는 숫자 뒤로,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진 속 엄마는 너무 젊었다. 불과 5년 후에 떠날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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