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제에 대해서
주제를 받았을 때, 마음에 드는 것 이상으로 제게 알맞다고 느꼈습니다. 그리움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했어요. 유인도에 들어오는 데 있어서도 그게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추억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 적도, 이제 다시는 그렇게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오래 걸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평소에 생각한 점들을 최대한 이 큰 주제 안에서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얼마나 그 시간에 오래 머물렀는지, 뭘 간직하고 싶었는지가 소설 속에 잘 나타나길 빕니다.
2. 집필 과정에서 고민한 부분
처음에는 스무 살 때 소중했던, 잊지 못하는 추억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초고를 쓰기 직전 주에 본가에 갔다온 뒤,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어졌어요. 결국 둘을 함께 아우르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나’는 저를 무척 닮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그대로 쓴 것도 있지만, 극대화한 부분이 많습니다. 만약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친구들이 현재 한 명도 남아있지 않는다면, 가족의 상실을 경험한다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할 것인지 고민해보았습니다. 굉장히 미숙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소설에서도 그것이 드러났습니다. ‘나’는 현실의 나보다 조금 더 비관적이고, 유인도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조금 더 용기 있습니다.
편하게 읽히고 따라오기 쉬운 글이었음 싶었습니다. 비유도 최소한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투박할 정도로 끊으려고 했어요. 오히려 그런 문체가 잔류와 간직이라는 키워드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한솔) 무거운 소재와 이야기라서, 솔직하고 담담한 문체가 오히려 글을 읽기 쉽게 만들었어요.
3. 비하인드
마지막에 나오는 빛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높은 확률로 열차라고 생각하겠지만, 애매모호하게 끝내고 싶었고 그렇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유인도에 갔다고 가정한다면 주인공은 본인의 기억이나 힘들고 아픈 부분들을 내려놓고, 본인은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스스로도 그랬으면 하고요.
이스터 에그가 있는데, 소설의 제목에 들어 있는 8가지 단어가 딱 한 번씩 나옵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하다 보니 8가지 단어의 중요성을 균형 있게 강조하면 좋을 것 같아서 퇴고 과정에서 단어도 많이 고쳤습니다.
(한솔) 마지막을 장식하는 소설인 만큼, 모든 단어가 유인도에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알려주는 좋은 이스터에그인 것 같아요.
4. 퇴고 과정
스토리는 초고와 비교했을 때 바뀐 부분이 거의 없어요. 퇴고 과정에서 가장 많이 손본 건 세부적인 장면 묘사인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바다에 빠지는 마지막 장면을 편집장 피드백을 받아 수정했는데, 이건 뒤의 질문에서 자세히 답할게요.
5, 자신의 글을 향이나 색에 비유한다면?
쥐색과 미드나잇 블루입니다. 쥐색은 정준일의 두 번째 EP 커버에서 따왔어요. 절망, 우울, 고독, 외로움 같은 것들을 담고 있는 색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소설도 주인공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미드나잇 블루는 밤바다의 색입니다. 소설의 핵심 소재가 몇 개 없는데, 굳이 뽑자면 바다일까요. 스무살의 추억, 엄마와의 기억이 모두 들어 있고 엄마 자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또 바다는 무엇이든 품을 수 있는 광활한 포괄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경외심,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죠. 주인공이 밤바다를 마주하며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생각하며 미드나잇 블루를 대표 색으로 꼽았습니다.
향은... 향에 조예가 없는 사람이지만, 락스 향이 떠오릅니다. 작중에서 '나'는 락스를 뿌려서 곰팡이를 지우고자 하지만 잘 지워지지 않죠. 이것이 자기 존재를 지우고 싶어하지만 역설적으로 살고 싶은 그의 상황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6,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글을 쓰게 된 두 개의 큰 축, 20살 때 동기들과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스무 살 때 친구들과 보는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가끔 연락하는 사이로 지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을 애정하는 정도, 그 시절을 사랑하는 정도는 아직 여전합니다. 그들에게 내 생각을 이렇게 썼다고 보여주고 싶습니다.
엄마와 아빠에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글에서는 엄마만 나오지만, 사실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뭉뚱그려 쓴 것입니다. 무릎을 간 것은 고모와 있을 때 이야기고, 두유를 좋아하는 건 아빠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포함해, 제가 커 가는데 도움을 준 모든 분들이 조금씩 들어 계십니다. 분위기나 소재가 어둡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하지만, 일단 그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7. 작중 주인공은 왜 환상 속에서 유인도를 보게 되었나? 정보를 준 형은 누구인가?
락스 냄새 때문에 정신이 흐릿해진 상태에서, 방에서 보이는 풍경을 유인도의 풍경으로 잘못 본다고 설정했습니다.
(한솔) 그 모든 절망과 우울이 가득한 방에서 유인도를 떠올린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유인도를 보고 떠올린 대화에서 나오는 형은 직접적인 모티브는 없고, 제가 창조한 인물입니다. 다만 쓰고 나서 떠오르는 사람은 있어요. 평소에 동나이대를 제외하면 교류가 잘 없는데, 제가 편하게 같이 술 먹자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형입니다. 그 형이 떠오릅니다.
8. 주인공이 바다에 뛰어들어 죽음의 턱밑을 찌를 때에야 비로소 열차가 나타나는 까닭은?
열차의 빛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직접적인 극적인 구원이 되지 않는 게 좋겠다는 편집장의 조언에 따랐습니다. 고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바다에 빠지고 허우적대는 상황 속에 무언가 놓친 게 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빛이 비춰지면서, 비로소 주인공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는 트리거가 됩니다.
고치고 나니 전보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유인도라는 장소 자체도 이상적인 지상낙원 같은 것이 아니라, 방문객이 직접 가서 본인의 어떤 것을 내려놓고 성장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주인공에게 조금의 주체성을 부여하는 게 유인도의 목적에도 부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D-2] 김은성 작가의 '잔류와 간직' 전문이 실린 "서정의 해상도"를 후원을 통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