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솔 작가 인터뷰: 다정과 믿음

by 유인도

1. 주제에 대해서

처음 받았을 때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주인공 도경을 구상할 때 제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제 자신이 착하다고는 생각했는데, 다정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죠. 그래서 처음에 스토리를 구상할 때는 다정함에 저를 끼워 맞추려고 했어요. 다정과 믿음 모두 좋은 단어들이라, 어떻게든 잘 소화해내고 싶어 많은 고민을 한 것 같아요.


2. 집필 과정에서 고민한 부분

처음에는 주인공이 다정하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했지만, 스스로와 안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대신 사람이나 풍경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시선을 그대로 담아내어서 주인공의 다정함을 드러내고자 했는데, 피드백에서도 이 부분을 알아줘서 좋았어요. 본래 다정했던 주인공이 상처를 입고 다정함을 잃었고, 이를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계기로 회복한다는 줄거리는 구상을 해 놓았는데, 정확히 어떤 사건인지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작은 사건들이 모여 그렇게 됐다고 하자니 남들을 미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변명을 늘어놓는 것 같기도 해서 걱정됐어요. 그래서 작은 사건들은 생략하고, 큰 사건을 준호와의 이별로 상정했어요. 준호라는 캐릭터가 잠수 이별을 하지만, 사실 자세히 읽어보면 헤어지기 한 달 전부터 둘 다 이별의 낌새를 느끼고 있거든요. 그래서 준호라는 캐릭터를 너무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인공의 성격은 저와 비슷한 것 같아요. 잔잔하고,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많아요.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걸 조금 부끄러워해서, 비유와 상징을 통해 감정을 짐작하도록 쓴 것도 많고요. 재윤은 나이에 비해 진지하지만, 동시에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재윤의 성격도 도경만큼 다정한 사람이라고 설정했고요. 준호와 이별한 도경은 마음을 가볍게 해 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3. 비하인드

결말부에서 도경은 내년에는 육지에서 꽃을 보겠다는 독백을 해요. 알아채셨겠지만 봄쯤에는 돌아올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에요. 재윤과 도경이 직접적으로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걸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열차에 타기 전에 같이 타겠냐고 물어본 부분이 고백을 대체한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유인도에서 여행하듯 무거운 마음과 기억을 내려놓고 꽃이 필 무렵 현실로 돌아올 것 같아요. 또 글에는 없었지만 재윤에게도 열차가 보였다는 건, 재윤이 놓고 오고 싶은 개인적인 기억들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돌아온 둘은 행복하게 잘 만날 거고, 도경은 더 직접적으로 자신의 다정함을 내보이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 같아요.


4. 퇴고 과정

준호-여름, 재윤-겨울의 대비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 부분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 부분을 강화했어요. 여름은 끈적끈적하고 더운,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겨울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드러내고 싶었어요. 겨울은 유인도의 계절이기도, 재윤의 계절이기도 하니까요. 1부 쓸 때, 개인적인 기억을 꺼내느라 힘이 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 써보는 글이라 뒷부분의 문체와 차이가 크기도 했고요. 퇴고 과정에서 너무 큰 괴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조금씩 수정했어요.


5, 자신의 글을 향이나 색에 비유한다면?

바랜 분홍색이요. 석양이 하늘을 물들일 때 나오는 그 색이요. 어릴 때부터 분홍색을 좋아했어서, 도경도 이 색을 좋아할 것 같아요. 잔잔한데 너무 잔잔하지도 않고, 튀는데 크게 튀지도 않는 이런 색이 도경의 다정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향은 자연의 냄새인데, 소설에 어울리는 건 아닌 거 같아요.


6,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가족들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어요. 평소에 이런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은 많지 않아서, 글을 보고 내 생각을 알아주면 고마울 것 같아요. 그리고 평소에 힘든 일이 생기면 자주 털어놨던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다정함을 지닌 사람들은 마음이 여린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일수록 누군가를 잘 믿고, 상처도 많이 받죠. 어쩌면 저와도 닮은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위로를 되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다시 믿음을 주는 것이, 내 본래 다정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약한 게 아닌 것을요.


7. 작중 '사진'이 중요한 모티프로 쓰인다, 개인적인 연유가 있나?

학교 사진 동아리에서 오랫동안 즐겁게 활동했어요. 암실 활동을 담당하는 부장직을 맡기도 했고요. 지금은 생소하기도 한 필름 작업 과정을 설명해주고도 싶었어요. 또 사진은 기록하는 수단, 표현하는 수단, 감정을 담아내는 수단이죠. 이별 이후에도 필름에는 기억과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유인도와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했어요.

작중에는 준호의 필름을 인화하는 과정이 있는데, 소설을 구상할 때 이 부분부터 먼저 써 보았는데 좋았어요. 중요한 장면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무조건 현실에 없는 환상의 장소로 가야만 우리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금껏 알지 못했더라도, 누구에게나 슬픔을 극복하고 기억을 내려둘 수 있는 자신만의 유인도가 현실에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장소일 수도, 행동일 수도, 주변 사람들일 수도 있겠죠. 도경에게는 그것이 암실이었던 거예요.


8. 주인공 도경이 만난 두 남자, 준호와 재윤이 각각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다.

준호든 재윤이든, 도경이 사랑했다는 사람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도경과 얼마나 맞는 사람이냐는 것 같아요. 준호는 바위처럼 우직하지만 속을 들여다보기 어렵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공감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고 이것이 헤어짐의 큰 계기가 되었죠.

반면 재윤은 도경을 품을 수 있는 부드러운 사람이고, 도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또렷해요. 첫 만남부터 도경의 많은 부분을 털어놓게 만들기도 했죠. 도경이라는 한 사람의 마음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게 준호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었던 것 같아요. 도경도 다른 사람의 깊은 면까지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 있는, 그래서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닮은 둘이, 그래서 비슷한 아픔이 있을 수도 있는 둘이 함께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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