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실화 바탕 영화다. 아버지 각기 다른 아이들은 함께 살고 있다. 이사를 간 날, 엄마는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 어린 두 아이를 여행 가방에 넣고 이사를 왔다. 영화는 시작부터 충격적인 장면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후 가족들은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엄마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장남 아키라는 조금 불안하다. 과거에도 엄마한테 남자가 생겨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 날, 어두운 방에서 엄마는 누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모습을 아키라는 익숙한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엄마는 집을 나간다. 한 달 뒤 집을 들어온 엄마는 하루 만에 다시 떠난다. 크리스마스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채, 다시는 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각자 슬픈 모습을 가지고 있다. 장남 아키라는 엄마와 동생들 사이에서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게를 책임감 있게 지고 있다. 그런데 영화 중간이 되면 아키라는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아키라는 동네 나쁜 아이들과 친구를 맺게 된다. 친구들과 만남에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집까지 이어진다. 나쁜 친구들은 아키라의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들은 어른이 없음을 재빨리 눈치채고, 아무런 조심도 없이 집 안을 들어온다. 어른이 없는 집은 규칙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서히 장악한다. 어린 동생들은 질서가 무너진 집안에서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가족 말고 다른 존재와 관계를 처음 맺은 아키라는 그들은 포기하지 못한다. 관객은 앞서 아키라가 받았던 상처와 무게를 봤기 때문에 비난할 수도 없다. 동생들 앞에서 큰 존재지만, 문 밖을 나서면 아키라는 작은 존재다.
엄마는 분명 무책임하고, 나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녀는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다. 어린 두 자녀는 모르지만, 둘째 쿄코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탓하지 않고,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옷이 있는 장롱 속에 속에 숨어서 무감각한 표정으로 엄마를 그리워한다. 그것 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쿄코의 슬픈 눈망울은 아이들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코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과하게 어둡거나, 억지스러운 감동을 전하지 않는다. 영화는 담담함이 존재한다. 음악은 절제를 담아, 적절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관객은 아이들 움직임과 얼굴 표정에 집중할 수 있다. 표정에서 모든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내 둘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막내 유키는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역 앞에 마중을 나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아이 시선으로 집 안 분위기를 느끼고 이해한다. 유키는 생일날 오빠 아키라와 함께 시장을 걷고, 광장에 앉는다. 유키는 오래전 아키라가 사준 초콜릿을 꺼낸다. 그리고 한 개 남은 초콜릿을 먹는다. 이후 한 번도 초콜릿을 사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유키는 뒤바뀐 집안 분위기를 알고 있다. 셋째 시게루는 장난기 많고, 웃음이 가득한 아이다. 중간쯤 되면 아이는 조용해진다. 집착에 가깝게 베란에서 식물을 심는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할 아이처럼 움직인다. 엄마에 부재는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크리스마스가 돼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단조롭게 살아간다. 둘째 쿄고는 여전히 장롱 속에서 엄마를 그리워한다. 전기, 가스가 끊긴 아이들은 공원에서 씻고, 물을 채워서 집으로 돌아온다. 있던 돈 마저 떨어지고, 아키라는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얻어서 동생들한테 나눠준다.
영화는 극적인 장면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우울한 음악조차 없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들에 모습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한 표현이 없기 때문에 영화는 현실감 있게 나타난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든든한 장남에 모습을 보여주던 아키라도 지쳐가고, 예민해진다. 동생들 말에 부드럽게 대하던 아키라는 사라졌다. 그는 피아노 치는 막내 유키한테 화를 내고 집을 뒤쳐나간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평소에 하고 싶었던 야구를 신나게 한다. 그 시각 집에서는 충격적이고 비참한 일이 벌어진다. 장남 아키라가 행복한 시간을 누릴 때, 막내 유키는 의자에 떨어져 죽게 된다.
영화 속 부모 품에 살아가는 아이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야구하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아키라는 그 순간만큼은 동등한 시간을 보낸다. 반대로 부모 품에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동일한 시간 속에서 비참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유키의 죽음은 부모의 무책임함에 상징이다. 남은 아이들은 유키 죽음을 기계처럼 받아들인다. 오열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어쩌면 아이들은 먼저 떠나간 유키를 다행스럽게 생각할지 모른다.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은 지옥이다. 그래서 유키 죽음을 슬픔보다는 좋은 곳으로 떠나보내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아키라는 유키가 좋아하던 초콜릿과 함께 유키를 캐리어에 조심스레 넣지만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둘째 쿄코는 말한다. “유키가 컸구나.”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은 안쓰러움 보다는 먹먹함이 느껴진다. 죽은 동생을 캐리어에 담고, 좋아하던 비행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키라는 공항 근처까지 간다. 친하게 지내던 사키와 함께 땅을 파고, 유키를 보낸다. 아키라 손이 클로즈업되고, 감정이 고스란히 관객한테 전달된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똑같이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받고, 물을 길러서 집으로 향한다.
순간, 하늘에서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아키라는 먼저 떠나간 동생을 떠올리며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