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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Jun 05. 2023

그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필라테스를 말한다


조용한 일요일 아침, 반려견들을 산책시키고 서재에 들어와 썼던 글을 다시 한번 읽고 수정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독서를 시작했다. 다른 독서가들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책을 읽다가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안녕의 의식'을 읽고는, 변호사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책 속에서 신경생리학자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대한 글을 읽고, 책장을 뒤져서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19세 레베카라는 여성에 대한 글이었다. 8세 어린아이 지능 수준을 가졌는데 올리버는 처음 진료를 할 때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해서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조금씩 그녀를 알아가게 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부분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단편적으로 우연히 남은 능력이겠지만, 말하는 것만이 가능한 가여운 아이다." 하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거의 모든 기능이 못 쓰게 되었지만 피아제의 도식 가운데 좀 더 높은 대뇌피질의 감각기능만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레베카는 일반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에는 결함을 보이지만(오른쪽 왼쪽 구별, 집의 위치, 열쇠로 문을 여는 행위) 자연을 바라보거나 시적 표현, 비유와 상징에 관해서는 월등한 능력을 보였다. 책을 덮은 뒤 나의 마음은 이상했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피부가 저릿했다.


'신경생리학자가 바라보는 정상의 범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레베카처럼 음악, 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능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추어져 있는가?'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떠한 기준이 정상인가? 의학적으로는 일반적인 처리 능력, 지능 지수를 판단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관점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큰 마트에서 카트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심적으로 불쾌한 감정이 올라온다. 동시에 그들의 판단 지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머릿속에 나타난다. 만약 마트에서 레베카를 만났다면, 올리버 색스와 동일한 생각을 했으리라. 그런데 마트가 아닌 자연에서 레베카를 만났다면, 그녀의 순수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클래식 필라테스를 비유하면 어떤가. 신경생리학자 판단으로는 일반적인 처리 능력으로 바라볼 것이다. 다양한 움직임이라 할지라도 움직임은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의 전기적 신호에 의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뇌와 신체를 이용한 일반적인 처리 능력이다. 그런데 움직임에 대한 사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인 지능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가르침을 주시는 김지혜 디렉터님은 비유와 상징을 통해 움직임의 사유를 전달한다. 일반적인 설명보다는 어린아이한테 설명하듯 쉽게 설명한다. 신기하게도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어쩌면 신기한 것이 아니다.


'구약성서, 우파니샤드, 티베트 사자의 서, 바가바드기타'


위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는 책들은 논리적인 이야기로 설명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도록 비유와 상징이 책 속에 담겨있다. 아파트 문을 열거나, 네이버페이 결제를 하는 것으로 인간은 자아를 한층 높이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가르침으로 인간은 순간 성장한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는 레베카처럼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비유와 상징의 가르침을 바라보면서 필라테스 강사는 진정한 강사로 변모하게 된다.


다시 돌아와서 결국 시적 표현에 대한 이해, 비유와 상징을 이해하는 능력은 지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머릿속에 수많은 지식이 있다고 해서 진정으로 예술을 느끼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영화 '굿윌 헌팅'의 주인공 윌(맷 데이먼)처럼 말이다. 그는 책을 한번 읽으면 전부 암기할 수 있고, 수학적 능력이 천재이다. 그렇지만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의 일침에 처음으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숀이 윌보다 지식이 더 많아서가 아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예술적 감각,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감각에 대한 경험을 말했을 뿐이다. 지능, 지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평소 삶을 살아가면서 지루한 사람들에 대한 말을 하고는 했다. 만났을 때 주식, 부동산, 돈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을 지루해했다. 그들과의 자리를 단 1분도 있고 싶지 않았다. 반대로 음악, 미술, 책, 영화 등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들뜨기도 하고 흥미로움에 주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내게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을 가까이하는 사람'

'예술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이분법적 논리로 사람들을 구별시키며 오만한 태도를 보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레베카의 시각처럼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클래식 필라테스 움직임에 대해 일반적인 처리 능력으로 바라보게 되면, 레베카를 단편적으로 생각했던 올리버 색스의 실수를 반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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