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많던 알파걸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에서 20대 후반 여자로 산다는 건 온 사회의 자존감 깎아내리기 공격에 무방비로 내던져지는 매우 피곤한 일이다. 빈곤을 드러내서도 안 되고, 너무 ‘페미니스트처럼’ 보여서도 안 되며, 결혼시장의 잠재적 매물임을 은근슬쩍 드러내야 한다. 서른 줄에 들어서면 시장 가치가 급감한다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들이 어떻게 온전한 자존감을 지키며 살 수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우리는 자존감을 스크래치 내는 이들을 온 몸으로 막아내면서 살고 있다.
스물다섯 살에 입사한 이후 20대의 절반을 매일같이 기도했다. ‘제발, 눈 뜨면 결혼한 서른다섯 살이 되도록 해주세요.’ 그때가 되면 조금 능숙해질 줄 알았다. 기자가 아니라 ‘젊은 여자’ 정도로 취급되는 상황이 나의 어리숙함 때문인 줄 알았다. 한 선배는 “제가 이 일 시작한 지 5년짼데요”라며 은근슬쩍 연차를 흘리라고 팁을 일러줬다.
돌이켜보면 ‘기자’로 보이려고 부단히도 애썼다. ‘네가 기자라고?’라는 의구심, 단지 연차 낮은 초임 기자기 때문은 아니었다. 수습기자 때 명함을 건네자 대뜸 ‘미쓰 유’라고 부르던 취재원이 있었다. 그저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날 다른 남자 수습기자의 명함을 받고 ‘기자님’이라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나는 우리 사회의 연령주의와 성별주의가 교묘하게 얽혀 내가 업무상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4년간의 사회생활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성희롱과의 분투라고 할 수 있다. 한 부장검사와의 술자리에서 헤어지면서 그가 나에게 두 팔 벌리며 다가와 “가까이 오지 마세요”라며 한 발짝 물러선 적이 있다. 그는 머쓱해하며 악수를 청했고 나는 받아줬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한 번 나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손을 뿌리치며 “조심하시라니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다음 날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할 것이고 사과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고 집으로 갔다. (당시 나는 수천 번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나름의 성희롱 대처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 앞에서 단호하고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했음에도 3초 만에 추태를 부리는 그를 보며 허무해졌다.)
다음 날 아침 회사에 보고를 올리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 부장검사는 어제의 꼿꼿함은 어디로 갔는지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그는 전날 밤 일을 기사화할까 봐 안절부절 못했다. 알고 보니 당시 회식에 참석했던 다른 회사 여자기자도 비슷한 피해를 당해 먼저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다. “유기자님, 저는 가족처럼 생각해서”로 시작하는 사과 메시지를 받아들곤 기가 찼다. 외부인인 나에게도 이렇게 하는데 후배 여자 검사에게 그간 어떻게 대했을지 빤히 그림이 그려져 부아가 치밀었다.
한 번은 사건 현장에서 만난 경찰과 인사를 나눴다. 그는 “요즘 여자 기자는 얼굴 보고 뽑나봐요? 꽃 같으시네요”라며 하나도 기분 좋지 않은 칭찬을 건넸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이상형을 물었다. 불쾌했지만 “나랑 친한 취재원이야”라며 다리를 놔준 선배 얼굴이 아른거렸다. “음, 운동 즐기는 사람이 멋있더라고요”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맞받아쳤다.
"유 기자는 밤일 잘 하는 남자 좋아하는구나!"
비슷한 사건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출장을 가서 여럿이 저녁 먹는 자리에서 한 고등학교 교사가 말문을 열었다. 묵묵히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나에게 질문이 왔다. “유기자님, ‘진달래’라고 하면 유기자님은 뭐라고 해야 하는지 알아요?” “네?” “택시! 하하하.”
‘진달래’는 “진짜 달라면 줄래?”, ‘택시’는 “택도 없어. 시발놈아.”의 준말이었다. 20대는 ‘택시’, 40대는 ‘소주(소문 안 내면 주지)’, 70대는 ‘물안개(물어보지도 않냐? 개XX야)’라고 답해야 한다는 저급한 소리였다. 그 자리에 20대 여성은 나뿐이었고 그는 진심으로 내가 웃어줄 줄 알고 나를 지목해 농담(?)을 건넨 거였다.
사회 전방위에서 여자 직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만도 하다. 이런 일들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아 매번 당혹스럽다. 그럴 때마다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지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무서운 나는 기자 자질이 없는 걸까?’, ‘내가 괄괄하고 당찬, 여기자의 스테레오 타입에 맞지 않아서 그런 건가?’ 자책하게 된다. 처음엔 몇날 며칠을 분노하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체념해버렸다. 일일이 대응하며 살면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신뢰 관계가 두터웠던 사람들이 그런 사건으로 떨어져나갈 때 허망하다. 인품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인터뷰이를 따로 몇 번 만났다. 젊은 사람들에게 비교적 귀를 열어놓고 사는 그를 멘토라 여기고 일하면서 겪는 성희롱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조언했다. “유기자, 그런 것도 감사하게 여겨야 돼. 막말로 유기자가 섹시하지 않으면 그런 말이라도 하겠어?” 정녕 성희롱쯤이야 농담으로 넘어가는 것도 여기자의 덕목 중 하나란 말인가?
서두를 길게 펼쳐 놓은 것은 피해 경험을 토로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이것이 결국 업무상 고민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여초 기업에 가면 좀 괜찮을까, 외국계 기업으로 옮기면 차별이 덜 할까, 내 행실이 문제가 있는 걸까 등등.
한 친구는 회식 때마다 녹음기를 켠다고 했다. 끈덕지게 그녀의 ‘남자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상사 때문이라고 했다. 남자친구가 있다 하면 “뭐 하는 사람이냐”, “그런 회사 다니면 결혼 때 집은 해올 수 있느냐” 묻기 시작하고, 없다고 하면 “내가 아끼는 후배가 있는데, 나이는 좀 있지만 사람이 진국이야”라며 띠 동갑 남자 사진을 들이민단다. 녹음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무기였다.
다른 친구는 상사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좋지만은 않다고 했다.
“솔직히 내가 후밴지 애인인지 모르겠어. 퇴근 다 돼서 저녁 먹자는 거 거절 못 하고 같이 술 몇 번 마셨더니 한 날은 자기 아내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거야. 그러면서 ‘내가 열다섯만 어렸어도 너 같은 애를 만나는데’라는데 소름이 쫙! 나 오피스 와이프 된 거니?”
수년간 이런 문제들을 지켜보고, 또 내가 겪은 일들을 되짚어보며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 현상이다! 출산과 육아만이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20대 여성 사회인들이 갖는 ‘갖지 않아도 될 고민’들이 결국은 퇴사 러쉬로 이어지는 거다. 우리 사회는 여기에 “여자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져”라고 딱지 붙인다.
특히 애매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성 차별에 대해서는 오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닐까?’ 자책하고 좌절한다. 내가 존경하는 유능한 친구는 공교롭게도 결혼 후 기획부서에서 빠지고 비교적 한가한 부서로 발령이 났다. 발령 나던 날 상사는 배려하듯 말했다. “거기 가면 살림 하는 데 도움도 될 테고…” 그 후 그녀가 업무 의욕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걸 무력하게 지켜봐야했다.
나의 개인적 경험이 사회적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확신한 것은 한 현대문학 강연장에서였다. 강의 말미에 한 20대 여성이 질문을 던졌다.
“저는 현대시를 전공하는데요. ‘문단 내 성폭력 사태’ 이후 시를 읽는 게 너무 힘이 들고 역겨워요. 그 동안 읽었던 시들에 대해 스스로 몰입을 거부하게 됩니다. 어떻게 다시 문학과 삶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요?”
나는 주변 20~30대 여성들이 겪는 경력 상의 고민들은 남자의 그것보다 훨씬 더 우울하고 사생활에도 깊숙이 관여한다고 믿는다. 남자 동기들보다 저평가 된다는 위기의식, 롤모델이던 선배들이 출산과 육아로 증발해버리는 현실, 불쑥 올라오는 성희롱 시도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기… 여성 사회 초년생들은 이 모든 문제들과 맞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그 많던 ‘알파걸’은 왜 ‘알파레이디’의 문턱 앞에서 허우적대고 있나? 1980~1990년대에 태어나 양성평등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 나가서 겪는 성 차별에 당혹감을 느끼며 좌절을 반복, 이것이 결국 업무상 우울감으로 이어지는 현상. 우리에겐 이를 정의할 사회적 언어가 필요하다.
- 유소연, <차마 하지 못했던 말>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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