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저는 '일못'입니다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는 당신에게

by 유이영


용기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해요


한 초등학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시는 한때 인터넷에서 ‘폭풍 공감’을 일으키며 퍼졌다. (원래는 1989년 이규경 작가가 쓴 동시다. 초등학생이 비뚤배뚤 옮겨 적은 사진 때문에 어린이의 무릎 탁 치게 하는 통찰로 잘못 전해진 것이다. 30년 전에 한 작가는 아이들에게 ‘못한다고 말할 용기’를 전했고 그 아이들은 자라 당당한 ‘일못’이 되었다.)


무심코 넘겨버린 이 시가 나에게 파장을 일으킨 건 이 책의 원고작업이 마무리될 때쯤이었다. 날이 풀리고 봄의 기운이 샘솟는 3월 어느 날, 나는 부장에게 일못 선언을 했다.


“지금 당장 일할 용기가 없어요.”


그날로 3개월 병가 휴직 신청을 했다. 입사 4년 만에 처음으로 아파서 쉬게 됐다.


그 전날 취재하러 가는 길에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고 손발이 차갑게 식었다. 그런 증상은 2주 전쯤부터 있었지만 스트레스가 크겠거니, 마감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인 후에야 황급히 찾은 병원에서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동안 ‘좀 더 버텨야지’ 하고 방치했던 나의 감정들이 의료 전문가 앞에서 심각한 질병으로 진단받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병원을 나오며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다음날 부장에게 달려가 저리 말한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건 생존 본능에 가까웠다.


징후는 1년 전부터 있었다. 살다보면 억울하게 남이 건 발에 걸려 넘어질 때가 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찾아왔다. 일할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인터넷 댓글 하나에도 상처받고, 취재할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나에게는 절실히 휴식이 필요했다. ‘기자가 그딴 일에 상처받느냐’는 한 선배의 질책에 기가 죽어버렸다. 내가 아프다고 말하는 게 마치 나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렇게 1년을 방치하고 스스로를 극한에 밀어붙인 후에야 ‘나는 못해요’ 말해버렸다.


‘남들이 꾀병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당장 내가 하던 취재는 어떻게 메우지?'

'내가 빠지면 팀원 넷이서 주말판 지면을 대체 어떻게 만든단 말인가!'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한 번 말하고 나자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나의 후임으로 후배 기자 두 명이 채워졌고, 그 주 토요일 아침 신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문 앞으로 배달됐다. 동료들은 진심으로 나의 상태를 걱정해줬다.


인터넷에 떠도는 '신입사원 마법의 알고리즘'. 우리는 어떤 조직 시스템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일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애초에 그 기준은 타당한가?


일을 일주일 정도 쉬고 나서 보니 내가 참 심하게도 나를 몰아붙였다 싶었다. 한 날은 새벽 두 시에 퇴근하고 들어오니 왼쪽 엉덩이에 엄지 손톱만한 종기가 볼록 올라와있었다. 아침 아홉시에 출근해 점심도 거르고 열 몇 시간을 꼬박 앉아 40매 정도 기사를 써낸 날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마약 같은 면이 있어, 마감 전야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 절망감에 빠져있더라도 금요일 오후에 프린트된 내 기사를 보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일에 대한 자부심은 샘솟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참 배울 게 많아서 행복해진다. 열정을 쏟을 만한 일을 하고 있어서 난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충족감에 젖어든다.


일의 주기에 따라 극단적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도대체 왜 나는 매번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는가 자책했다. '왜 미리미리 취재하지 않고 마감을 코앞에 둔 수요일이 돼서야 발을 동동거리는가'와 같은.


일의 스트레스 대부분은 외부에서 하는 평가에 따른다. 그래서 나는 ‘사람 스트레스는 없지만 일 스트레스가 크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일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도 결국 과도한 책임감과 압박, 인정욕구, 경쟁 등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얽혀있기 때문이다. 무능력한 자신에게 꽂히는 동료의 아니꼬운 시선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상사의 칭찬에 갑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 샘솟기도 하는 걸 보면 그렇다.


그래서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발견했을 때 ‘이거다!’ 싶었다. 그들은 현대사회의 노동 규율과 일 잘함, 능력주의를 가뿐히 무시한다. 일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노동 시스템 속에 들어가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 팀장아, 나 일못(하는 사람)이다. 너는 짖어라. 나는 흘릴 테니!” 이들의 발랄함에 꽂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커뮤니티에 가입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회원들은 서로 일하다가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담을 나누며 ‘나만 이렇게 서툰 건 아니야’라는 묘한 동질감을 나눈다.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고용주에게 일침을 날렸다는 한 회원의 고백을 보면서는 통쾌했다. 일 못한다고 규정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평가에 상처받지 않을 것, 자책하지 말 것. 일 못하는 유니온이 나에게 전한 메시지다.


우리는 어떤 조직의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일을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애초에 타당한가? 인간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노동환경이라면? 이 질문을 생략하고 우리는 자발적으로 ‘일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시스템 안에서 열심히 구른다. 한 기업 임원이 언젠가 웃으며 말했다.


마른 걸레를 쥐어짜도 물 한 방울은 나와요.


나는 비록 일못 선언을 했지만 내가 진짜 일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기로 했다. 적어도 나는 주어진 노동 규율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규율에 적응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이라는 자각을 하게 됐다.


아마 일 못하는 유니온 회원들도 그러할 것이다. 둘이 할 일도 한 사람에게 꾸역꾸역 맡기는 우리 사회의 노동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일못’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박에 없다. 일못은 개인적이지 않다. 사회 구조의 문제다. 예컨대 육아휴직 쓰는 남자 직원에겐 조직에 헌신적이지 못하다는 꼬리표가 여전히 따라붙는다. 여자 직원이 생리휴가 쓰면 이기적이란 소리를 듣는다. 남은 동료들이 그 몫을 떠안으니까. 우리는 고질적인 인력난을 지적하는 대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노동자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쉽게 일못 딱지를 붙인다. 일 못해서 야근하는 게 아님은 이미 모두가 알지 않는가. 상사 퇴근 때까지 눈치 보는 직장 문화, 혹은 마른 행주에서 수도꼭지 콸콸 나오길 기대하는 노동환경의 빡빡함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을 준다.


친구 A는 입사 후 연봉 계약서에 적힌 대로 9시까지 칼출근 했다. 사실상 8시 30분만 돼도 지각했다고 눈치 주는 분위기에서 그 친구는 8시 57분 출근을 고수했다. 게다가 첫 신입사원 회식 때 술 한 모금 마시고 임원 앞에서 혼절까지 해버렸다! 일못 낙인이 찍혔다.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그 팀 직원들 모두가 9시까지 출근하고 있다. ‘혼절 사건’ 이후로 술 먹는 회식은 팀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그 팀에서 누군가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술잔을 거부하고, 8시 57분에 회사 출입문 도장을 찍는다고 해도 아무도 눈총을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어떤 이는 신입사원의 패기 없음을 한탄하고, 막장신입의 무개념을 성토할지도 모른다. ‘일못 유니온’을 자신의 무능을 합리화하는 찌질한 이들의 정신승리 모임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왜곡된 노동 구조 속에서 일하는 우리들 중 누군가는 그런 규율에 돌을 던져 작은 균열이라도 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좀 일할 맛 나는 사회가 되진 않을까? 그래서 일못들은 낙오자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대안을 제시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존재들이다. 우리나라 회사에선 이런 ‘일못’들의 보석 같은 가치를 언제쯤 알아줄까?



-유소연, <차마 하지 못했던 말> 본문 중에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319747


* 이것으로 신간 <차마 하지 못했던 말> 관련 포스팅은 마무리합니다. 책 사주시는 독자들에 대한 예의랄까요^^; 내용 더 궁금하신 독자분들, 책에서 만나요~





매거진의 이전글스물아홉 여자로 일한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