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와이프

'일등 신붓감', 엄마가 되다

by 유이영

친구 A는 나와 성격도 가치관도 사뭇 다르다. 10여년 전 대학 2학년이 되고 진로를 생각할 때 즈음 우리의 차이는 극명했다. 그녀는 ‘가늘고 긴 일상’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다. 당시 내 삶의 신조는 ‘짧더라도 굵게’였다. 거칠고 도전적인 일들에 쉽게 매료됐다.


A는 줄곧 꿈이 7급 공무원이었다. 나란히 전공을 국문학으로 선택했지만 내가 일주일 하나씩 레포트를 내는 비평 수업에서 허덕일 때 그녀는 영리하게도 공무원 국어시험에 유리한 학교문법론 같은 수업을 들었다. 내가 국가정보원, 5급 공채, 로스쿨, 기자 시험 등을 기웃거릴 때쯤 그녀는 일찌감치 대학 3학년부터 노량진으로 들어갔다. 한 남자와 진드근히 만나지 못하던 나와 달리 그녀는 캠퍼스 커플이었던, 두 번째 남자친구와 수 년을 사귀었고 시험에 붙자마자 결혼을 했다. 인생의 계획표를 착실하게 추진해나가는 그녀의 삶이 부러우면서도 갑갑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A는 그녀답게 결혼 2~3년 후 안 다니던 헬스장도 다니고 운전도 배우더니 정확하게 임신을 했다. A가 육아휴직을 쓰고 양가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며 고군분투했지만 남편은 그대로였다. 새벽 6시면 출근해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틈틈이 중국어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물론 야근도 여전히 많이 했다. 그녀의 남편은 주말 하루 육아를 전담하며 A가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다. 출산 후 몇 달 만에 처음 본 그녀가 “성인 여성과 대화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며 짓던 미소가 선하다.



왜 우리는 서로의 삶을 곁눈질하는가


A는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그리고 두어달 만에 다시 휴직했다. 주재원으로 가는 남편을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직업이 공무원이기에 가능했다. 기자 8년차인 나는 A의 삶을 곁눈질하며 그녀의 현명함에 경탄했다. 갑갑함은커녕 내가 바보가 아닌가 박탈감마저 들었다. 당돌하고 순진했던 과거의 나를 후회했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유리천장의 존재에 의문을 갖지 않고 그걸 깰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던 알파걸이었다. 명예남성이던 나는 그 차별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윤곽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 사회는 유리천장은 개뿔 콘크리트 천장에 가까웠고, 나는 정수리를 천장에 박고 피를 철철 흘려가며 일했다. 나는 겸손이라는 이름을 쓴 위축을 배웠다. 남성 동료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여자 동료로서의 태도를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A는 일찌감치 이를 간파했기에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최근 A는 최근 자기가 ‘가성비 와이프’라고 했다. 돈도 벌고 육아도 하고 살림도 하니, 이 정도면 너무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아내가 아니냐는 말이었다.


“내가 너무 나의 꿈을 축소했나봐, 왜 내 인생의 선택지에 스무살부터 결혼과 아이를 넣었을까. 나는 야망있던 너가 지금은 너무 부럽다. 내가 너무 내 능력을 과소 평가하고 있던 건 아닌지 뒤돌아보게 돼.”


그녀는 그녀대로 내 삶을 곁눈질 하고 있었다.



엄마가 된 '일등 신붓감'


나는 A와 같은 사례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주변에 유독 독박육아 하는 교사 언니들이 많다. 05학번 아는 언니는 교대에 진학했다. 지방으로 본사가 이전된 회사에 다니는 형부와는 주말 부부이다. 평일에 언니는 오후 4시에 퇴근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조카를 돌본다. 비슷한 나이대의 기자-교사 커플도 있다. 예상했듯 남편이 기자고 아내가 교사다. 남편이 유학을 고집하며 해외로 나간 사이 교사인 아내는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아이를 혼자 돌봤다. 두 사례 모두 사람들은 '그나마' 여자가 교사이기 때문에 육아가 수월했다고들 말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2005학년도엔 한창 ‘교대 붐’ ‘사대 붐’이 일었다. 대형 학원에 ‘의대반’처럼 ‘교대반’이 생겼고 서울교대와 경인교대 수능 컷이 상위 3%대였다. 내가 자란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여학생이 그 지역 국립대 사범대를 가면 “서울대보다 최고”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당시 우리 사회는 이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안정적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서라고 분석했다. 아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성장 둔화로 맞벌이가 필수인 시대가 왔고 이에 비해 맞살림 하는 사회는 까마득해서, 때문에 여자가 일도 하고 애도 키워야 하는 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왜 유독 당시 똑똑한 여학생들만 죄다 교대, 사대로 몰렸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게 교사가 되고 공무원 된 여자들이 이제 엄마가 되었다. 그때 어른들이 말한 ‘여자에게 최고인 직업’ 혹은 ‘일등 신붓감’이 어떤 계략이었는지 이제야 명백해진다.



'좋은 아내'를 꿈꿨던 알파걸들


A가 가성비와이프라면 나는 뭘까. 나는 2013년 수습기자를 갓 떼고 사보에 실은 “10년 뒤 나는 어떤 기자가 될까”에 나는 이렇게 썼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싶습니다.”


‘워라밸’ 트렌드를 먼저 읽어낸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불안했다. 업계에 파다한 마초적 문화를 뚫고 내가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가정을 보살피는 역할을 어린 나이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내가 직업 선택에 있어 망설인 최후의 이유도 그것이었다. 여기자 선배들은 하나같이 다 가정이 불행해보여서(그땐 그래보였다). 오십 살 되도록 혼자살거나, 이혼하거나, 친정엄마 뼈를 갈아 커리어를 유지하거나, 다 큰 자식에게 “엄마가 언제 나 키워준 적 있어?”라는 소리를 듣거나(라고 생각했다). 일 잘 하는 여자 선배보다는 행복한 여자 선배가 내 롤모델이었다.


여성이 스스로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미래의 가정을 고려하는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일찍이 일본에서도 그러한 ‘자발적 선택’이 큰 흐름처럼 일어났다. 일본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에서 강연 후 충격받은 일화를 썼다. 명문 여대에서 젠더론 수업을 하고 학생으로부터 쪽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이 이랬단다.


“선생님 수업을 듣기 전에는 종합직을 목표로 했지만 수업을 듣고 나니 일반직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다. 진로를 변경하겠다”


일본 기업에서는 직무를 종합직과 일반직으로 나누는데, 종합직은 전근이나 출장이 잦지만 관리직으로 승진할 수 있으며 임금이 높다. 보조 업무를 맡는 일반직은 승진에 한계가 있으며 임금도 낮지만 전근이 없다. 똑똑한 여자들이 굳이 일반직을 선택하는 현상을 우에노치즈코는 지적했다.


모두가 자발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10여년 뒤 결혼하고 애 낳는 나이에 우리 모두 처절하게 각자의 선택을 의심한다. 세상을 너무 몰랐다고 자신의 선택을 자책한다. 그런데 막상 까보면 저쪽도 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가? 문제는 ‘선택한 나’가 아니라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사회는 우리에게 알파걸 세대라는 암시만 줬지, 가정을 돌보는 일을 디폴트로 두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일등 신붓감이니 뭐니 했던 말들, 돌이켜보면 거대한 취업 사기에 가깝다. 그 길에 들어선 여자들은 독박 육아시키고, 그렇지 않은 여자들은 가정과 일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자책 구덩이에 빠뜨린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고통받는 이가 있다면 그건 구조의 문제다.




*마지막 문장은 은유 작가의 책 <다가오는 말들> 중 "악인은 없지만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구조의 문제에 눈 돌리게 된다(74쪽)"에서 변용.


*사진은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이미지.

이전 08화'n번방'의 공범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