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같은 사건, 다른 답

관점의 충돌

by 손찻잔

얼마 전 주말 몰아서 넷플릭스 드라마 트리거 몰아보기 정주행을 마쳤습니다. 처음엔 김남길 배우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이 갔는데, 총이 불법인 대한민국에 총기가 풀린다는 설정이 독특했고, 드라마 회차가 진행될수록 과몰입 되더라고요.


어떤 사건에는 절대 안된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사건에는 또 총기의 트리거를 당기는 그 마음도 이해가 됐어요.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그 마음에 스스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정의가 사라진 현실. 약자일수록 억울한 일이 피해가지 않고, 그래서 울분에 찬 마음에 당겨지는 그 방아쇠가 언젠가는 현실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드라마에서처럼 누군가에겐 트리거를 당기는 게 정의의 실현이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그건 범죄니까요.


그렇게 다시 쓰는 단어 사전의 오늘의 단어는 ‘정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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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정의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옳음의 기준

정의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묻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사전적 정의를 읽으면 참 단단한 단어로 느껴져 그 어떤 확고한 벽이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흔들리기만 해요.


왜냐하면 그 기준이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법은 정의의 최소한의 틀을 마련하지만, 법이 곧 정의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고 특히 요즘처럼 가치가 다변할 때는 모두의 옳음의 기준이 달라져 정의에 대한 판단도 달라지게 됩니다.


“과연 이것이 옳은 선택이었을까?”라는 고민 앞에 정답보다 질문이 남게 되네요.


흔들리는 정의

정의라는 이름은 뉴스 헤드라인에서도, 거리의 구호 속에서도, 그리고 드라마의 장면 속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의의 얼굴은 조금씩 다릅니다.


처음에 말한 트리거처럼 요즘 드라마와 영화는 특히 ‘사적 복수’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려냅니다. 억울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되갚아주는 순간, 우리는 사이다를 느끼죠. 마치 법과 제도가 하지 못한 일을 드라마가 대신 완성해 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가 통쾌함을 느끼는 이유는 법과 제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복수가 정의로 포장되는 순간, 정의는 다시 흔들립니다. 정의가 모두를 위한 원칙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분노와 욕망으로 채색되는 순간, 또 다른 폭력이 정의의 옷을 입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관점의 차이

정의는 절대적인 답이 아니라, 관점의 문제로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환경을 위해 개발을 멈추는 것이 사회적 정의다’ ‘아니다,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개발을 허용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대립되는 의견에서 어느 쪽도 완전히 틀리지 않았지만, 동시에 어느 쪽도 완전히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SNS에서 이런 논쟁을 자주 보는데요. 각자 ‘정의’를 주장하지만, 정작 그 정의는 서로 다릅니다. 누군가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다수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정의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사회와 개인이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합의의 과정인 것 같아요.


사회적 맥락 속 정의

정의의 문제는 사회적 갈등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만약 정치에 관심이 있고 유튜브를 본다면 매일 매일 이런 상황을 보고 계실 거예요. 어떤 집단은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말하고, 다른 집단은 “정의가 무너졌다”고 항의합니다.


가끔 이런 싸움에 가까운 논쟁이 너무 시끄럽고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충돌 자체가 정의를 더 깊게 만들어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정의가 맞부딪힐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나은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논리는 피하고 반박을 위한 반박은 사라져야겠지만요.


철학적 반전

플라톤은 ‘정의’를 영혼과 사회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라고 보았습니다. 반면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전혀 다른 두 정의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믿는 정의가 사실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것에 불과한 건 아닐까?


이 철학적 반전은 정의가 단순히 “옳고 바름”이라는 사전적 의미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늘 권력·맥락·관점 속에서 다시 물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정의의 과제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단어 정의를 할만큼 내가 이 단어를 충분히 곱씹었나 생각해 보게 되요.

쓰면서도 이 단어는 너무너무너무 어려운 것 같거든요.

‘정의는 살아있다~’ 라는 말을 하려면 완성된 답안지가 아니라, 꾸준히 출제되는 문제여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정의 하나는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사는 거’ 정도일 것 같아요. 이것만이라도 열심히 잘 지키면서 살아볼게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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