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지 않는다는 말의 무게
어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너는 진짜 무해해서 좋아.” 보고 있으면 대상물이 품어내는 분위기에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사람이었거든요.
전에는 비슷한 상황에 "너 귀엽다."라고 했을 텐데 요새는 무해하다는 말이 먼저 나와요.
다들 맞장구를 쳤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단어가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언제부터 '무해하다'는 단어가 일상이 됐지?
사전에는 있지만 구어체에서 쉽사리 등장하지 않았던 단어가
어떻게 일상에 침투해 칭찬으로 쓰이는지 새삼 흥미롭더라고요.
무해(無害)하다: 해로움이 없다. 해가 없음, 해치지 않음
일상에서 누군가를 '무해하다'라고 할 때는 조금 더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자기주장을 세게 내세우지 않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불편한 감정을 만들지 않는 사람.
그런 모습이 주는 인상은 ‘안전하다’, ‘편하다’라는 감정으로 이어지는데요.
즉, 무해하다는 건 단순히 존재의 성격 묘사가 아니라,
곁에 두고 싶은 사람에 대한 정서적 신호이기도 합니다.
저는 업무상 회의가 잦았어요.
회사 사람들끼리 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 만나는 클라이언트나 대행사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회의할 때
큰 목소리로 주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묘하게 긴장되고,
말수를 줄이고 잔잔히 반응하는 사람이 있으면
왠지 모르게 미팅의 분위기가 차분해지면서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무해하다는 인상은 소극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감각,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가려는 태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의식을 했든 하지 않았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태도인 것이죠.
그렇다면 무해하다는 인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에서 비롯될까요?
대체로 이런 사람들에게서 ‘무해함의 징후’가 발견되더라고요.
첫째, 목소리의 톤이 낮습니다.
부드럽고 잔잔한 말투는 상대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둘째, 반응이 크지 않습니다.
웃더라도 과하지 않고, 화를 내더라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셋째, 자기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의견은 내되, 상대를 꺾으려 하기보다 합의를 찾습니다.
넷째, 갈등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립이 일어날 듯하면 한 발 물러서고,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기도 합니다.
위에서 말한 태도 모두 어렵지만 특히 네 번째 징후가 가장 큰 특징인 것 같은데요.
이런 태도가 모여 만들어지는 인상이 바로 '무해하다'는 걸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무해한 사람은 대게 무례하지 않아요.
갈등을 회피하고, 배려와 눈치로 상황을 정리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하면 친절함과 단아함 등과 비슷한 인상인데요. 한 끗 차이가 바로 귀여움 같아요.
묘하게 귀여운 면이 있어요.
큰 제스처 대신 작은 리액션, 세지 않은 말투, 자연스러운 배려.
이런 모습은 곁에 있는 사람의 긴장을 낮추고,
마치 정서적 안식처처럼 작용합니다.
사실 저는 카리스마를 동경했던 사람이거든요.
회의시간에 큰 목소리로 좌중을 휘어잡는 사람이 있으면 좀 불편했던 게 어쩌면 동경의 일부분이었을지도 몰라요. 나도 저렇게 하고 싶은데... 에서 오는 질투(?)였달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사회가 변해서 인지 저도 점점 변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카리스마보다,
해치지 않음에서 오는 안도감이 더 매력적으로 읽히는 것 같아요.
특히 요즘 SNS를 보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이 주목받아요.
자극적인 발언, 뚜렷한 입장, 강렬한 자기표현.
그런데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쓴 글이나, 댓글들을 보면
피로감이 느껴져 SNS를 끄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무해한 글'이라는 댓글도 보이더라고요.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고, 특정 집단을 공격하지 않고,
그저 담백하게 경험을 나누는 글.
이런 콘텐츠에 사람들이 ‘무해하다’는 반응을 달며 호감을 표시하곤 합니다.
무해함이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도 하나의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죠.
제가 무해한 사람이 좋은 건,
시대의 피로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자기표현과 과잉 소통이 일상이 된 사회.
더 크고 빠르고 강한 목소리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
그 속에서 해치지 않는 존재,
그저 곁에 있어도 긴장되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귀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무해하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관계를 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언어인 것 같아요.
나를 해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무해한 사람이 자꾸 보고 싶은 이유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한 가지 바람도 남죠.
나도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결국 무해함이란 사랑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당신이 무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