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득하다: 가을 아침의 공기를 담는 말

문해력 리추얼

by 손찻잔

눈 뜬 아침,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오늘 날이 선득하네."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단어였는데, 저도 순간 놀랐어요.

정확한 뜻을 아는 것도 아니면서, 그날 아침 공기에는 왠지 착 붙는 말 같았거든요.


창문을 열자 공기가 확연히 달라져 있더군요.

어제까지만 해도 남아 있던 여름의 잔열은 사라지고, 피부에 가볍게 차가운 기운이 스쳤습니다.

옷깃을 여밀 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계절이 바뀌고 있더라고요.

그 느낌을 한 단어로 붙잡아 둡니다.

오늘의 단어, ‘선득하다’입니다.


다시쓰는 국어사전.jpg

단어의 결


사전은 ‘선득하다’를 이렇게 풉니다.

갑자기 가볍게 서늘한 느낌이 드는 모양.


비슷한 표현에는 ‘차갑다’, ‘서늘하다’, ‘쌀쌀하다’가 있죠.

‘차갑다’는 성질 그 자체가 차가운 상태,

‘서늘하다’는 기운이 한결 차분해지는 느낌입니다.

‘쌀쌀하다’는 주로 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날선 공기라 옷을 여며야 할 것 같고요.


그에 비해 ‘선득하다’는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감각 같습니다.

스치듯 지나가지만 확실히 새겨지는 공기.

그 찰나에 계절이 기록되고,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합니다.



일상에서 마주한 선득함

이 단어는 아침 창문 앞에서만 살아 있지 않았습니다.

운동 후에 식은 땀에 바람이 훅 불 때,

한참 여행을 하다가 문득 밤이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퇴근길 골목을 돌다 바람이 목덜미를 스칠때,

나도 모르게 경험하게 되는 어떤 순간에

“아, 계절이 움직이고 있구나”라는 환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음의 결과 맞닿은 감각

공기의 감각이 마음의 결을 닮을 때도 있습니다.

불안할 때 선득한 바람은 심장을 움찔하게 하고,

지친 오후에는 같은 바람이 오히려 긴장을 풀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득하다’는 단순한 날씨의 말이 아니라, 마음을 비추는 언어로 다가옵니다.

누군가에게는 쓸쓸함,

또 다른 이에게는 상쾌함,

또는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단어.

삶의 순간마다 다른 색으로 다가오는 언어입니다.



문해력 리추얼의 기록

이 글을 쓰면서 '선득하다'라는 단어로 문장을 써 보았어요.


“선득한 바람에 커피 향이 더 깊어졌다.”

“회의실을 나서자, 선득한 공기가 마음을 식혔다.”

“낙엽 위를 걸을 때, 발끝에서 선득한 계절이 바스락거렸다.”

"모녀 사이엔 가끔 선득한 바람이 분다."

"그와 그녀의 사이가 선득해졌다."


단어 하나를 붙잡자 문장이 달라지는 걸 분명히 느꼈습니다.

‘시원했다’나 ‘차가웠다’로는 닿지 않던 결이 ‘선득하다’에서 살아났습니다.

문해력은 이렇게 작은 오늘의 기록에서 자란다고 믿어요.




가을을 말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하늘, 낙엽, 바람….

그러나 어떤 때는 단어 하나가 계절 전체를 불러옵니다.


‘선득하다’는 바로 그런 단어입니다.

스치는 공기를 붙잡아 두고, 마음의 떨림까지 기록하는 말.


오늘은 ‘선득하다’에 기대어 입구에 들어온 가을이 성큼 들어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곧 금요일 오후 5시가 되네요.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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