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실수와 실패를 용인하는 소리

오늘의 단어 채집과 문해력 리추얼

by 손찻잔

요즘 새로운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사무실을 마련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아직 거기까진 아니고....

동네에 새로운 스터디카페가 생겼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소리 하나만 나도 예민하게 사람들이 쳐다보는 그런 곳 아니고요.

노트북도 자유롭게 하고, 심지어 너무 크지 않은 대화도 가능한 그런 곳이에요.

한 사람이 쓰는 테이블도 넓직한 편이라 이틀에 한 번씩 도장찍고 있어요.


눈을 떠 씻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이곳에 오면..

몰입이 확! 되지는 않아요.

어느 정도 일을 시작하는데, 예열이 필요합니다.

전에는 메일을 확인하고 업계 기사를 찾아봤는데,

요샌 구독을 시작한 종이 신문을 꺼냅니다.

그리고 마음을 평안하게 만드는 비장의 무기, 연필을 꺼내요.


어떤 기사는 잘 읽히지만 어떤 건 글이 눈을 스쳐갈 뿐입니다.

그럼 연필을 들고 서서히 줄을 그어요. 사각사각

좋은 문장,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생겨도 연필을 들어요. 사각사각

다 읽은 기사는 과감히 대각선으로 줄을 쫙! 그어요. 사아칵!


오늘의 단어 채집은 사각사각입니다.



사각사각2.jpg

단어의 결

사전은 '사각사각'을 이렇게 풉니다.


벼, 보리, 밀 따위를 잇따라 벨 때 나는 소리
눈이 내리거나 눈 따위를 밟을 때 잇따라 나는 소리
연한 과자나 배, 사과 따위를 자꾸 씹을 때 나는 소리


그리고 '사각사각하다'에서 글씨에 대한 내용이 나와요.

종이 위에 글씨를 소리가 자꾸 나다


일상에서 마주한 사각사각

사람은 자신의 경험으로 단어를 보고 세상이 확장됩니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벼, 보리, 밀 따위를 벨 일이 없었기에 이때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는 건 예상하지 못했어요.

매일 아침 사과를 먹지만 이때도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는 건 인지하지 못했어요.

아마 사과가 오늘은 다네, 새콤하네, 작네, 곧 상할 것 같네 등

사과의 상태에 집중했지, 그걸 먹는 행위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실수해도 괜찮아의 의성어


어떤 것은 자생하지 못합니다.

이 단어도 그런 것 같아요.

자체적으로 낼 수 없는 소리인거죠.

낫이 벼를 만나야 나는 소리

사람이 사과를 먹어야 나는 소리

종이와 연필이 만나야 나는 소리


물론 만년필이나 다른 필기구도 가능하지만,

유독 사각사각은 연필과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이걸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흑연이 점토와 섞여 종이를 긁으며 미세한 입자가 떨어져 나가고

그때 나는 건조한 마찰음이 사각사각으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연필은 지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한번 쓰면 지우기 어려운 만년필이나 볼펜은 왠지 어른의 도구 같거든요.


그와 반대로 글을 배울 때 처음으로 잡는 필기구인 연필은

실수가 용인되는 필기구로, 소리도 매우 귀엽게 사각사각 하는 것만 같더라고요.


일하는 공간을 비~~~잉 둘러봅니다.

12명 정도 있는 공간에서 펜을 든 건 세명.

모두 애플펜슬이네요.

조금은 아쉬우면서도 혹시 종이 필름을 붙이건 아닐까?

연필 느낌의 펜촉을 쓰는 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옆에 가서 슬쩍 들어볼까요?

소리가 나는지,

사각사각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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