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뿍: 단어에 엄마가 담겼다

오늘의 단어 채집과 문해력 리추얼

by 손찻잔

명절이 언제였나 싶을 만큼

긴 연휴가 지나고 남은 건 다시 열심히 일해야 하는 현실이네요.


다들 명절 잘 보내셨나요?

저는 생에 처음으로 캐스퍼를 운전해 땅끝 마을과 가까운 시골 본가에 다녀왔습니다.

연휴가 길어서 차가 분산될 거라고 했는데, 눈치게임에는 실패했어요.

왕복으로 무려 16시간이 걸렸죠.

그나마 갈 때는 막히지 않는 도로에서 액셀을 밟으면 차가 쭉쭉 나갔는데

올 때는 밟아도 속도가 안 나오는 거예요.

갈 때와 다르게 차가 훨씬 무거워졌기 때문이죠.


이건 우리 차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잠시 들른 휴게소,

옆에 앉은 조카가 말했습니다.

"이모, 저 차도 트렁크가 꽉 찼네요"


그러게. 앞차도, 그 옆차도, 모두의 트렁크가 담뿍 담겨 있더라고요.

오늘의 채집 단어는 명절과 본가에 어울리는 말, '담뿍'입니다.



IMG_5413.jpg 엄마의 반찬


단어의 결

사전은 '담뿍'을 이렇게 풉니다.

넘칠 정도로 가득하거나 소복한 모양.
많거나 넉넉한 모양.
어떤 감정 따위가 풍부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

비슷한 말로

가득하다, 넉넉하다, 수북하다가 있습니다.


그런데 느낌이 참 달라요.

담뿍하다보다 건조하게 느껴진달까요.


마음이라는 양념

가득하다, 넉넉하다, 수북하다의 예문을 찾아볼게요.

- 물이 가득하다

- 양이 넉넉하다

- 낙엽이 수북하다

세 문장 모두 현재의 상태나 모양을 나타내는 표현처럼 들립니다.


AI는 가득하다는 상태의 충만,

넉넉하다는 여유의 지속,

수북하다는 모양의 풍성함을 드러낸다고 하네요.

하지만 세 문장 어디에서 마음이 담긴 것 같지는 않아요.


반면 담뿍하다는 이렇게 쓸 수 있죠.

- 밥을 담뿍 퍼담았다.

- 국을 담뿍 떠서 그릇에 부었다.

- 트렁크에 김치를 담뿍 실었다.

위 문장에서 느껴지듯,

이 단어는 주는 사람의 따뜻함과 정성이 들어있습니다.

행위 속에 마음이라는 양념이 들어 있는 것이죠.




글을 쓰다가 차에 다녀왔습니다.

트렁크에서 짐을 다 빼지 못했거든요.

"겨울에 감기 조심해야지"라며 실은 '배즙'

"요리는 잘 안 해도 그릇은 있어야 해" 라며 실은 '냄비세트'

"너는 작은 게 오히려 좋지?"라며 실은 '양념세트'를 꺼내왔어요.


담뿍 담긴 트렁크가 텅 비자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네요.

담뿍은 이렇게 엄마의 정성을 가득 담은 단어가 아닐까요.


올해 명절의 풍경은,

트렁크보다 마음이 더 포근하게 채워진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 정성 덕분에, 오늘도 조금은 힘을 내봅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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