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채집과 문해력 리추얼
명절이 언제였나 싶을 만큼
긴 연휴가 지나고 남은 건 다시 열심히 일해야 하는 현실이네요.
다들 명절 잘 보내셨나요?
저는 생에 처음으로 캐스퍼를 운전해 땅끝 마을과 가까운 시골 본가에 다녀왔습니다.
연휴가 길어서 차가 분산될 거라고 했는데, 눈치게임에는 실패했어요.
왕복으로 무려 16시간이 걸렸죠.
그나마 갈 때는 막히지 않는 도로에서 액셀을 밟으면 차가 쭉쭉 나갔는데
올 때는 밟아도 속도가 안 나오는 거예요.
갈 때와 다르게 차가 훨씬 무거워졌기 때문이죠.
이건 우리 차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잠시 들른 휴게소,
옆에 앉은 조카가 말했습니다.
"이모, 저 차도 트렁크가 꽉 찼네요"
그러게. 앞차도, 그 옆차도, 모두의 트렁크가 담뿍 담겨 있더라고요.
오늘의 채집 단어는 명절과 본가에 어울리는 말, '담뿍'입니다.
사전은 '담뿍'을 이렇게 풉니다.
넘칠 정도로 가득하거나 소복한 모양.
많거나 넉넉한 모양.
어떤 감정 따위가 풍부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
비슷한 말로
가득하다, 넉넉하다, 수북하다가 있습니다.
그런데 느낌이 참 달라요.
담뿍하다보다 건조하게 느껴진달까요.
가득하다, 넉넉하다, 수북하다의 예문을 찾아볼게요.
- 물이 가득하다
- 양이 넉넉하다
- 낙엽이 수북하다
세 문장 모두 현재의 상태나 모양을 나타내는 표현처럼 들립니다.
AI는 가득하다는 상태의 충만,
넉넉하다는 여유의 지속,
수북하다는 모양의 풍성함을 드러낸다고 하네요.
하지만 세 문장 어디에서 마음이 담긴 것 같지는 않아요.
반면 담뿍하다는 이렇게 쓸 수 있죠.
- 밥을 담뿍 퍼담았다.
- 국을 담뿍 떠서 그릇에 부었다.
- 트렁크에 김치를 담뿍 실었다.
위 문장에서 느껴지듯,
이 단어는 주는 사람의 따뜻함과 정성이 들어있습니다.
행위 속에 마음이라는 양념이 들어 있는 것이죠.
글을 쓰다가 차에 다녀왔습니다.
트렁크에서 짐을 다 빼지 못했거든요.
"겨울에 감기 조심해야지"라며 실은 '배즙'
"요리는 잘 안 해도 그릇은 있어야 해" 라며 실은 '냄비세트'
"너는 작은 게 오히려 좋지?"라며 실은 '양념세트'를 꺼내왔어요.
담뿍 담긴 트렁크가 텅 비자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네요.
담뿍은 이렇게 엄마의 정성을 가득 담은 단어가 아닐까요.
올해 명절의 풍경은,
트렁크보다 마음이 더 포근하게 채워진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 정성 덕분에, 오늘도 조금은 힘을 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