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를 빼앗기는 시대에
브런치북을 12시에는 써야지 생각했는데, 벌써 오후 2시 14분이네요.
저도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어요.
사실 오늘 하는 일에 굉장히 설레거든요.
다음 주 대학생 기자단에게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주제로 강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거의 매년 하는 일이었기에 그동안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엔 평소와 다르게 설레더라고요.
그래서 기존 강의안에 AI를 추가하자는 당초의 계획과 다르게,
강의 기획을 새롭게 하는데 몰입했던 것이죠.
깊이 파고들거나 빠짐
살다 보면 시간이 도망간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잠깐 무언가를 시작했을 뿐인데,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 경험.
저는 오늘 4시간이 훌쩍 지났어요.
밥 먹는 것도 잊고, 휴대폰 알림도 무심히 지나친 채, 눈앞의 일에만 몰두했던 순간.
우리는 그것을 ‘몰입’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몰입은 단순한 집중과는 다릅니다.
억지로 붙들고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에 빠져든다고 해서 다 몰입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몰입은 무엇이고, 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주제가 되었을까요?
몰입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선물 같은 순간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붙들고 있을 때는 오히려 시간이 참 느리게 가죠.
하지만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점점 커져서,
그 안에 푹 빠져들 때 몰입은 일어납니다.
글 한 줄 쓰다가 다음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몇 시간을 써 내려가는 순간.
선 하나 그리다가 색을 칠하고, 다시 그림을 고치다 보니 밤이 깊어진 순간.
그때의 느끼는 건 ‘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에너지입니다.
몰입은 자신의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모이고, 그 흐름이 나를 이끄는 경험이라 할 수 있죠.
몰입의 특징은 ‘시간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시계를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데, 지루함이나 고통이 없지요.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가 정의한 ‘Flow(몰입 경험)’의 핵심이기도 하고요.
나와 세계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순간, 일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이 됩니다.
그런데 요새 시간의 흐름을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이 또 있어요.
조금만 봐야지~ 하고 SNS를 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12시, 1시, 2시...
나도 모르게 점점 늦춰지는 취침시간, 이것도 몰입일까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저에게 두 가지는 본질이 달라요.
SNS는 주의를 산만하게 빼앗는 흡인력에 가깝습니다.
핸드폰을 덮을 때, 재미있었다는 느낌보다는 좀 허무해요.
내가 또 알고리즘에 이렇게 지배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크죠.
반대로 오늘 같은 진짜 몰입은 결과물뿐 아니라 만족감, 때로는 작은 성취감도 줍니다.
그래서 SNS의 ‘시간 도둑’과 몰입의 ‘시간 선물’은 같은 시간을 지배하는 자라도 수식어가 다를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내가 진짜 몰입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몰입의 순간에는 몇 가지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 첫째, 시간을 잊습니다.
'벌써 이렇게 됐어?' 하고 놀랄 만큼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요.
- 둘째, 주변 자극이 차단됩니다.
카톡이 온 줄도 모르고 커피의 얼음은 다 녹아있죠
- 셋째, 강제성이 사라집니다.
억지로 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 마지막으로, 끝나고 나면 상쾌합니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뿌듯하고 뭐 하나 해냈다는 좋은 기분이 들죠.
근데 몰입하면 왜 좋을까요? 성취감이 들어서? 일을 잘해서?
네. 몰입은 성과를 내는 엔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지켜주는 비타민이기도 해요.
몰입은 생산성을 높여줍니다.
집중하는 동안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평소보다 높은 퀄리티의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도 강화해요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각은 자신감을 불러옵니다.
또 정신적인 회복도 돕죠.
복잡한 생각과 불필요한 잡음이 사라지는데요.
애인과 헤어진 친구가 일로 치유를 했다는 그런 웃지 못할 긍정적인 효과가 있더라고요.
결국 몰입은 단순한 성취를 넘어, '나의 쓸모와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왜 지금, 몰입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꺼내야 할까요?
우리는 어텐션 이코노미(attention economy, 주의 경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 달라고 하는 무수한 콘텐츠 속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는 알림,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 피드가 하루를 지배합니다.
SNS 잠깐만 봐야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제 우리의 시간은 쓰는 것이 아니라, 빼앗기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몰입은 생존 기술이 된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시간을 쓰고 있는가?”
“내가 소비한 시간이 나를 채우는가, 아니면 소진시키는가?”
몰입을 돌아본다는 것은 곧 내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한 자기 점검이기도 합니다.
몰입의 순간은 단순히 결과물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각, 오롯이 살아 있다는 감각.
몰입은 성취를 넘어 존재감을 회복하는 길이 됩니다.
그래서 질문이 남습니다.
지금, 어떤 일에 몰입하고 있나요?